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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3.11. 새벽예배 -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요한복음94)


요1412to24 -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요한9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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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요한복음 14장 12-24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었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준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제자들은 예수님이 떠나신다고 해서 걱정했지만, 실은 예수님은 반드시 떠나셔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예수님께서 떠나셔야만 제자들이 영원히 주님과 함께 거할 하늘거처가 준비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떠나시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근심하기 보다는 기뻐하고 반겨야 마땅했던 것입니다. 헤어지는 것은 잠깐이지만 그 헤어짐 때문에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된다면, 그리고 결국 거기서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산다면 그것보다 기쁘고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부재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또한 이 상황을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지금 주님은 저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위한 우리 집을 마련하고 계시니까요. 우리의 영원한 거처가 생긴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지금 예수님과 더불어 살지 않는 일이 가져다 주는 첫번째 엄청난 복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예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나머지의 엄청난 복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줍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엄청난 복들 중 두 번째 복은 바로 기도응답의 복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행하셨던 일들보다 더 큰 일들을 하게 될 것인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떠나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만 보면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라는 부분까지 읽어보면 그것이 기도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는 일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보다 더 큰 일을 하도록 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예수님께서 옆에 계시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셔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릴 수 있고, 그래야 예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제자들이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행하도록 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릴 수 있고, 그 기도가 응답될 것을 믿으며, 또 기도의 응답을 얻는 복을 누리고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우리의 기도를 위해서 중보하실 뿐만 아니라 오늘 말씀에 의하면 그 기도에 직접 응답해 주십니다. 그 기도대로 시행해 주십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를 떠나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만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 더 큰 복일까요? 주님 없이 살아가는 것이 더 큰 복일까요? 주님 없이 사는 것이 더 큰 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계시지 않을 때만 누릴 수 있는 이 복을 지금 될 수 있는대로 많이 누려야 합니다. 마구 마구 누려야 합니다. 기도하고 그 기도의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그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 하셨던 일들과 그 일들보다 더 큰 일들이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제자들과 계시지 않으셔야만 주실 수 있는 엄청난 복들 중 세번째 복은 바로 성령님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보혜사, 그러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 둘이실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한 분은 사람이시고 한 분은 영이십니다. 그렇다면 둘 중에서 어떤 분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더 유익할까요? 우리는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래도 한 명의 ‘사람’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동시에 두 곳에 계실 수도 없고, 게다가 마음이나 존재 속에 깃들이실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시간적으로도 항상 영원히 함께 계실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볼 때, 예수님이 보혜사이신 것보다 성령님께서 보혜사이신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성령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심지어는 마음 속에도 함께 계실 수가 있으니까요. 


게다가 우리는 우리 속에 계신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통해 항상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또 그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아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항상 예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일. 이 일은 얼마나 얼마나 은혜로운 일입니까?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도 예수님을 만나려면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서야 겨우 겨우 볼 수 있었던 그 분을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서 언제 어디서나 항상 볼 수 있다니 이것은 또 얼마나 큰 은혜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예수님을 보는 것은 단순히 인간이셨던 그 분의 겉모습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을 보는 것이란 우리의 심령이 예수님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을 통해 우리 속사람을 꽉 채워주시는 그런 충만한 경험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눈을 감으면 그 사람이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질 못합니다. 눈으로 본다고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눈으로 본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이 경험되거나 그 사람의 참된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을 보는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을 통해 영적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눈을 감아도 예수님을 느낍니다. 그 분의 성품과 영광을 체험하게 되며 그 분의 참된 아름다움을 마음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도 보게 됩니다. 그 예수님이야 말로 하나님의 본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복은 첫번 보혜사셨던 예수님께서 가시고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보내주셨기 때문에만 누리게 된 기가 막히는 복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셔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가장 좋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성령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이야기를 이상하게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둘러 싸놓으셨습니다.


16절에서는 갑자기 성령님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라고 하셨고, 성령님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는 21절에서도 뜬금없이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라고 하셨고, 22절에서 유다가 엉뚱한 질문을 했을 때도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성령님에 대한 이야기를 사랑에 대한 말씀으로 둘러 싸놓으신 것은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성령충만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보고, 그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어 있고, 그러면 그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사랑에 대한 말씀으로 둘러싸놓으신 것입니다. 사랑이 성령님이 편하게 거하시는 환경인 동시에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서 맺게 하시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시대에 예수님을 믿는 것은 큰 복입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정말 큰 복입니다. 이 시대는 기도응답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는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으로 충만한 시대입니다. 모두 다 예수님께서 떠나 계시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그야 말로 어마어마한 복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또 사랑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이 두 가지 복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떠나 계시면서 주시는 이 두 가지 복, 기도응답과 성령님과 함께 거하며 예수님을 보는 이 두 가지 복을 주님 오실 때까지 놓치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