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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3.14.새벽예배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한복음97)


요1509to17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2(요한9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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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 15장 09-17절


오늘은 포도나무 비유의 나머지 남은 부분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잠시 어제 살펴본 말씀을 정리하면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서 성령님 안에 거해야 하고 그렇게 해서 예수님 안에 거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 요점입니다. 그러면서 절대로 기도를 잊지 말야아 하구요. 열매는 우리 힘으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어제 우리가 남겨놓은 문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성령님 안에 거하게 해 주고, 또 그래서 예수님 안에 거하게 해 주며, 결국 풍성하게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되게 해 주는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를 알려 주십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이미 14장 15절과 21절에서 나왔던 이야기의 반복입니다. 그러니까 그 때 들려주신 말씀과 포도나무 비유로 들려주시는 말씀이 똑같은 맥락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주신 하늘나라에 대한 직접적인 말씀들을 제외한 모든 다른 교훈들을 주님께서 ‘새 계명’이라고 부르신 말씀으로 모두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새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그 새 계명에 대한 말씀을 해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예수님께는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마도 이것이 가지가 줄기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말씀의 참된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가 그 분의 사랑의 대상이 되고, 그 분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우리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느끼며 누리며 살아가는 일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계속해서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을까요? 그 풍성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알며 느끼며 누리며 살아서 열매맺는 삶을 살게 될까요? 주님은 그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흉내내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렀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을 지키며 살 때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예수님께서 맺으신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계명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 계명에 순종할 때,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지 않아도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들의 아킬레스건인데, 우리의 사랑이 주님의 사랑을 닮은 사랑이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정말 엄청난 부담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려면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 모든 인격적인 관계를 하나로 묶는 원리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하나님도 사랑으로 묶여 있고, 예수님과 우리들도 사랑으로 묶여 있으며, 결국 우리들 사이도 사랑으로 묶여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처음에 하나님에게서 예수님에게로, 예수님에게서 우리로 흘러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들 사이의 사랑은 당연히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닮을 수 밖에 없고 그 사랑을 닮아야만 합니다. 비록 우리의 사랑이 완전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셨던 그 사랑,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던 그 사랑을 흉내내려고 애쓸 때, 그 두 분과 우리들을 묶는 끈이 끊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란 결국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인데, 우리 속에 사랑이 없거나, 우리 주님의 사랑을 닮은 사랑이 아닌 다른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랑을 가지고 예수님 안에 머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전혀 다른 진액이 흐르는 가지가 가지에 붙어 있어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아무리 힘들다고 한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닮은 사랑은 그 보다 더욱 더 어렵게 여겨진다고 한들 우리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주님의 새 계명은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해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이 예수님처럼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지만,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때 우리가 놓치게 되는 정말 엄청난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사랑의 어두운 면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참된 사랑은 누구에게나 굉장히 어렵다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 어떤 것보다도 밝은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쁨’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치고 기분나빠하는 사람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사랑에 빠진 사람 중에서 매일 침울해 있고 어둡게 살아가는 사람을 보셨습니까? 아닙니다. 짝 사랑이나 불결한 사랑이 아니라면 사랑이란 사랑은 모두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왜 사랑에 빠지면 예뻐진다고 할까요? 바로 그 사람의 숨겨져 있고 가려져 있던 모든 기쁨이 그 사랑 때문에 그 사람의 얼굴로 흘러나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뻐지는 것이죠. 그저 남녀가 서로를 사랑하는 일도 이렇게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의 이유가 된다면, 만약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흉내내면서 서로 사랑한다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이 어떠하겠습니까? 그 기쁨은 누구의 기쁨과 같은 기쁨이 될까요? 예수님의 기쁨과 같은 기쁨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이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무한한 생명, 비교할 바 없이 값진 생명을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내어주신 것.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이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사랑이야 말로 최고의 사랑이며, 비할 바 없이 큰 사랑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 살았던 존재들 중에서 예수님보다 더 기뻐했던 사람이 있었을까요? 예수님은 최고의 기쁨, 가장 큰 기쁨, 그리고 무한하고 다함이 없는 기쁨을 누리셨던 분이십니다. 그것은 그 분이 최고의 사랑, 가장 큰 사랑, 무한하고 다함이 없는 사랑으로 그것도 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우리들을 사랑하신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기쁨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기쁨을 알려주고 그 기쁨을 누리게 해 주시려고, 그 기쁨으로 충만하게 해 주시려고 우리에게 주님의 사랑을 닮은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은 힘든 것입니다. 주님을 닮은 사랑은 정말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만큼 내 기쁨이 커진다고, 사랑하지 않으면 기뻐할 수 없다고, 주님의 사랑을 흉내내지 않으면 주님의 기쁨을 알지도 누리지도 못한다고 말입니다. 사랑이 힘든 이유는 우리가 사랑을 자꾸 다른 사람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이 사랑을 희생이요 의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우리가 사랑하는 일을 처음부터 방해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분명히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혜택은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기쁨으로, 사랑의 크기와 비례하는 큰 기쁨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흉내내는 사랑은 주님의 기쁨으로 우리에게 되돌아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사랑의 놀라운 점은 이 사랑이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물면서 살게하는 유일한 근거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사랑 자체가 하나님을 기뻐하시게 만드는 열매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사랑하면 그 열매가 계속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열매가 계속 있을 때, 기쁨 말고도 또 하나의 엄청난 복이 주어집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이 진짜로 진짜일까요? 믿어도 되는 말씀일까요? 그렇습니다. 믿어도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은 사랑으로 사랑하게 될 때,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닮은 사랑으로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랑을 흉내내려고 애쓰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엄청난 복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 성령님 안에 거하는 것, 말씀 안에 거하는 것,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그리고 열매를 맺는 것. 기도의 응답받는 것. 포도나무 비유에 의하면 이 모든 것은 단 한 가지를 통해 주어집니다. 이것은 그 한 가지를 놓치면 다 놓치게 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 한 가지는 바로 예수님의 사랑을 흉내내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사랑에 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하고 애씀이 필요합니다. 분명히 실패도 많이 할 것입니다. 그러나 100번 시도해서 한 번이라도 사랑할 수 있다면 결코 사랑하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사랑이 힘겨워 질 때, 사랑보다는 미움과 거친 마음이 앞설 때면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나의 기쁨을 위한 것이고, 열매를 위한 것이다. 이 사랑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이고 이 사랑을 통해서만 나는 예수님 안에 머물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항상 주님의 사랑을 흉내내며 살아서 우리 모두 주님의 기쁨과 열매가 충만하며, 기도의 응답이 넘치는 복된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