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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3.05.19.주일오전 - 성도의 가정(2)


엡0522to0604 - 성도의 가정(2).pdf


20130519SM (#1).mp3.zip




   본문 : 에베소서 5장 22-6장 4절


세상에는 참 다양하고 많은 인간관계가 존재합니다. 그 인간관계들이 너무 많고 다양해서 그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법칙을 찾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에베소서의 마지막 두 장은 성도인 우리에게는 커다란 유익을 줍니다. 에베소서 5장은 우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교훈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5장을 시작하시면서 우리에게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가능한 대원칙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으니, 그 사랑에 설득되고 감동되어서 다른 이들을 사랑이라는 원리를 기준으로 대하는 것. 이것이 모든 인간관계를 바람직한 모양으로 만들어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대원칙입니다. 

가정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남편이든 아내이든, 부모이든 혹은 자녀이든간에 우리는 각자가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사랑은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사랑,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서 행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관계 안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가 가정 속에서 가족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은 결국 일반적이고 본능적인 사랑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델로 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자신의 가족을 사랑해야하되 하나님의 사랑을 모델로 한, 그 분의 사랑을 닮은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사랑이란 어떤 사랑을 말할까요? 짧게 말씀드리면, 나 중심이 아니라 받는 사람 중심이어야 하며, 그것도 그 사람의 참된 유익을 구하는 사랑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의 자기 중심성은 사랑하는 일조차도 자기 중심적인 일로 만들어 버리기 쉬운데 이것을 피하고 또 그 사람에게 진짜로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 대한 말씀을 듣는 내내 여러분의 마음과 머리속에 있어야 할 생각이 바로 이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과 6장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내 가족을 단순히 인간적으고 본능적으로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러니까 구원받은 성도로서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도 그 방법을 계속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남편이요 가장으로서의 성도가 어떻게 가족들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면, 오늘은 아내들과 자녀들이 믿는 자로서 어떻게 가족들을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주일이 남편들에게 부담스러운 시간이었다면, 오늘은 아내들과 자녀들에게 부담되는 시간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말씀들이 들려질 때마다 그 당사자가 되는 사람들이 불편해지고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원래의 모습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부담과 불편함을 극복하고 성경의 교훈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성경이 틀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틀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곡된 것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의 가정질서이지 그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참된 기준으로 돌아가야지 기준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아니겠습니까? 만약 기준으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기준 자체를 바꾸거나 약화시킨다면 그 누구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시듯이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정의 리더십, 특히 아내에 대한 리더십은 남편에게 있습니다. 믿는 아내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전제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오늘 우리가 아내에 대해서 나누는 모든 말씀들은 아무 소용이 없어질 것입니다. 남편이 가정과 아내의 머리되는 것은 주님께서 정해 주신 가정의 질서입니다. 일단 가정에 대한 모든 논의는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아내로서 아내의 참된 자리를 찾는 일도 여기서 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또 여기서 부터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이 남편과의 관계 안에서 아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복종과 존경입니다. 처음부터 아멘하기가 그렇게 쉽지가 않죠? ‘남편에게 복종하고 존경하라니 주님이 내 남편에 대해서 알고 저러시나?‘하는 분들이나 ‘그랬다가 집구석이 뭐가 되게?’ 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아내들에게 그걸 요구하십니다. 혹시 조금 부아가 치미시더라도 일단은 좀 눌러 놓으시고 잘 따라와 보시기 바랍니다. 

    두 가지 중에서 먼저 복종하라는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복종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이미지 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것이 사실입니다. 누군가에게 ‘너 나에게 복종해!’라고 하면 아주 기분 나빠하고 또 아주 자존심 상해 합니다. 우리가 이 말에 대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무런 기준 없이,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하라는 대로 따라가는 것을 복종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이 아내들을 향해 남편들에게 복종하라고 할 때, 복종의 의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점이 많습니다. 

    아내들이 남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말은 우선 아내들은 남편의 가정에서의 리더십을 방해하는 방향이 아니라, 그 리더십을 도와주고 세워주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다 남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어서 잘 알지만 남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항상 나 자신이나 듣는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게 마련입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 사람을 더 미워하고 무시하게 되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 사람은 자신이 직접 겪은 일도 아니지만, 그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인 마음과 생각을 갖게 됩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서 보면 아내들이 남편에 대한 불만이나, 남편의 잘못을 자녀들에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그 답답하고 상처받은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해서는 결코 남편들이 가정의 리더로 세워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결국 자신도 남편을 더 미워하고 무시하게 되고, 자녀들도 아버지를 미워하고 무시하게 됩니다. 결국은 가정에서의 가장이 설 자리를 뺏는 일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한다면 남편도 좋아질리가 없습니다. 더 어긋난 방향, 비뚤어진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그 고통과 불편함은 고스란히 가족 구성원 모두의 몫이구 말이죠. 아내가 자녀들에게, 혹은 자녀들 앞에서 남편을 무시하고 욕하는 것, 이것은 남편의 리더십을 세워주기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가끔은 가정에서도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저마다 의견이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남편과 아내의 의견이 많이 다를 때가 있습니다. 자녀들 앞에서 말이죠. 그럴 때, 아내되시는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시고, 그 일이 이래도 좋고 저래도 크게 나쁠 것이 없는 그런 것이라면 일단은 남편의 의견을 따라 주십시오. 닭고기를 먹든 돼지고기를 먹든, 된장국을 먹든 된장찌게를 먹든 그런 일들 가지고 싸울 일은 없습니다. 자녀들 앞에서 남편의 의견과 결정을 따라 주는 것. 그것이 남편의 리더십을 세워주는 방법입니다. 만약 그 자리에서 아내가 이겨버리면,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 자녀들의 생각 속에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가 가정의 리더로, 어머니가 아버지의 머리로 인식됩니다. 더 큰 문제는 그 가정의 자녀들이 가정을 이룬 후에는 자기가 살아왔던 가정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것입니다. 딸들은 결혼해서 자신이 가정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자기 남편과 다투게 될 것이고, 아들들은 며느리에게 잡혀살게 되기 쉽습니다. 이것이 바로 학습의 힘입니다. 아내되시는 성도 여러분, 의견이 다를 때는 일단은 남편을 존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중에 자녀들이 없는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대화를 나누어 보십시오. 그렇게 해서 의견을 조정하시고, 합의점에 이르시고, 만약 바꾸어야 할 것이 있다면, 남편의 입을 통해서 가정에 다시 공포되게 하십시오. 그것이 가장 지혜로운 일이고, 그것이 그 누구도 지지 않고 모두가 이기는 방법입니다. 

      아내되시는 성도들께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가정에서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남편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고 계십니까? 남편의 리더십을 세워주고 도와주는 방향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그 반대입니까? 아뭏든 다시 한 번 권면합니다. 첫째, 자녀들 앞에서 남편의 흉을 보지 마십시오. 둘째, 자녀들 앞에서 최대한으로 남편의 의견에 따라 주십시오. 그래서, 남편의 가정에서의 리더십이 세워지는데 도움을 주십시오. 무슨 일이나 그렇듯이 이 일에도 예외는 물론 있습니다. 실은 이 예외가 우리가 이런 이야기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주범이가도 합니다. 이 부분은 뒤에 가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두번째는 존경 혹은 존중의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내들이 남편들을 존중하고 존경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존경과 존중은 복종보다는 적극적인 것입니다. 복종은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수동적으로 할 수 있지만, 존경과 존중은 그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내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남편을 존중하십니까? 딸들에게도 남편을 존경하라고 가르치고 계십니까? 혹시 딸들에게 미래의 남편을 이기는 비법을 전수하거나 출가한 딸들에게 남편을 이길 수 있는 필살기를 가르치고 계시지는 않습니다. 딸들로부터 승전보가 들려오기를 기다리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분명히 남편을 존경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믿는 아내들까지도 남편을 존중하고 존경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의 질서에 대한 신앙적인 동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우리사회를 보면서 가장 안타깝게 여기는 것들 중의 하나는 우리 사회에는 권위에 대한 기본적인 인정과 존중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자리는 그 자리가 가지는 권위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 권위는 그 자리가 가지는 고유의 권위이기 때문에 당연히 어느 정도는 인정되고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생각과 다르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런 기본적인 권위마저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비판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 자리가 가지는 권위마저 인정해 주지 않고, 존중해 주지 않는다면 사회의 모든 질서는 무너지고 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백인 백색인데, 내 생각이나 이익과 상충된다고 해서 저마다 그 권위를 무시한다면, 사회가 뭐가 되겠습니까?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도가 넘어서는 정도의 무례함이나 무시는 그 사람에 대한 무시가 아니라, 사회의 전체 시스템에 대한 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불안함과 피해는 그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감당해야 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이라는, 그리고 아버지라는 가정 질서 내에서의 위치가 가지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권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그 가정이 뭐가 되겠습니까? 물론 가장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에 따라서 이 권위를 인정하기가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렵고 쉽고를 떠나서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입니다. 그래서, 아내들은 아무튼 가정에서 남편을 존경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에 질서가 생깁니다. 그 가장 중요한 키를 아내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내들은 가정에서 가정의 질서를 바로 잡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내 되시는 여러분, 남편의 가정 리더십을 세워주고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남편을 주님께서 주신 권위에 맞게 대접하십시오. 최소한 그러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십시오. 그것이 아내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이며,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맡기신 아내들의 역할입니다. 

     다음으로 자녀들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자녀들을 향해 6장 1절에서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또 2절과 3절에서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녀들의 부모들에 대한 태도는 ‘순종’과 ‘공경’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가져야할 태도와 기본적으로 같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순종으로 되어 있지만, 원어로 보면 이 말이 복종이라는 말보다도 훨씬 더 느낌이 강한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아내는 남편과 동반자의 관계이지만,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부모를 통하여 얻은, 부모가 없었다면 자신도 없는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은 자녀들이라면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이것이 옳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옳다는 말은 상식적으로만 보아도 그게 당연하다는 뜻이고, 2절과 3절에서 이야기하듯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고 바람직하다는 뜻입니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나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미덕으로 여겨집니다. 그것은 아마 인간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부모에게 손중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만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도 그러십니다. 하나님도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을 무척 당연하고도 중요한 것으로 보십니다. 굉장히 비중있는 것으로 보십니다. 율법은 부모의 말을 계속 거역하는 자녀를 돌로 치라고 명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순종 뿐만 아니라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것 뿐만 아니라, 마음 속으로부터 부모를 존경하고 그러한 태도로 대하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이런 생각을 더 강하게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부모를 공경하는 일에 엄청난 복을 상으로 걸어놓고 계십니다. 그 복이란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라는 복입니다. 형통과 장수의 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지금은 “애걔, 겨우?”할지 모르지만 율법이 주어질 당시의 상황에서 보면 이 약속은 정말 대단한 약속입니다. 당시는 아직 가나안 정복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기이고, 이제 막 전쟁을 시작해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방에 수많은 적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에 대한 의무를 다하면 이런 전쟁에서 살아남는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또 가나안에 들어가면 땅만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농사가 전부였으니까요. 게다가 수확한 것들을 빼앗으로려는 외적의 침입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오래 오래 살고 농사가 잘 되어 형통케 되는 복은 사실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당시의 상황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준수하는 자에게는 이런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부모는 실제로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대리자 역할을 하게하기 위해서 이 땅에 보내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모를 대하는 태도를 그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와 같은 것으로 보십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존중하면 엄청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엄중처벌하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신앙을 가진 자녀라면 그가 하나님을 대하는 바로 그러한 마음과 태도로 부모님을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 두 가지를 별개의 문제로 생각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자녀된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부모님께 순종하시고 부모님을 공경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것이 상식적으로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도 마땅하고 아름다운 성도의 모습입니다. 그럴 때 나도, 내 가정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된 복으로 충만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도, 부모님에 대한 자녀들의 의무도 ‘순종과 존경’입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이 두 가지는 절대로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기준에서 가정을 바라보면 절대로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해주신 것임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고백하며 겸손하게 순종할 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아내되시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자녀되시는 성도 여러분, 남편에게 그리고 부모님께 순종하시고 그들을 존경하십시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복된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과 존중은 이론도 아니고 이상도 아닙니다. 순종과 존중은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입니다. 구체적인 현실이라는 이야기는 이것이 그만큼 단순하지 않고 그만큼 복잡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정상적인 경우에야 부모와 남편에게 당연히 순종해야 하고 또 순종하는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정이나 요구가 항상 비윤리적이고, 신앙양심에 위배되며, 하나님의 명령과 배치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도 다 따라가야 하겠습니까? 순종하라고 하셨으니까 그냥 그대로 하면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들은 예외입니다. 왜냐하면 남편이라는 권위, 부모라는 권위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그 권위들 위에 있는 가장 최종적인 권위가 바로 하나님의 권위이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인 도덕이나 윤리, 법에 위배되거나 신앙인으로서의 양심과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리라는 요구가 주어질 때는 남편이나 부모의 권위가 아니라 그들에게 그 권를 주신 가장 위에 있는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할 때라도 그런 부모와 남편을 쉽게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최선을 다해서 겸손하고 간곡한 태도로 설득하려고 애써야 하고, 만약 그래도 설득이 되지 않는 경우라면 그 요구를 거역해야 하고, 거역 때문에 생겨나는 어려움은 감내하고서라도 바른 길을 가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부모되고 또 남편된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모로서, 또 남편으로서 아내와 자녀들에게 순종과 복종을 바라고 요구할 수 있는 경우는, 우리의 요구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고, 그 분의 마음에 합당할 경우로 한정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를 이용해서 사랑하는 자녀들과 아내에게 부당하고 불법한 요구를 해서는 안됩니다. 가족들을 신앙양심에 위배되는 방향으로 가게 하거나, 그들의 잘못된 욕심을 지지하고 부축이는 역할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가족들을 망치는 일이기 이전에 나에게 부모요 남편이라는 아름다운 이름과 권위를 주신 하나님의 권위를 거스르는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멀어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가족관계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아내와 자녀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내되시는 성도 여러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머리는, 그리고 가정의 머리는 남편입니다. 못 마땅해도 부족해도 일단은 그 사실을 인정하시고 신앙으로 고백하고 일단은 받아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출발해야 합니다. 남편이 부족하다면, 세워주고 도와주어야지 내가 머리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순종은 아래에 놓는다, 아래로 보낸다는 뜻이 있습니다. 순종은 내가 아래로 갈 때, 나를 아래로 보낼 때에만 가능해 집니다. 가정에서는 남편이 아니라 내가 이차적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남편의 머리됨을 인정하시고 남편에게 순종하시고, 머리인 남편을 존경하시고 존중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된 성도 여러분, 옳은 길을 가십시오. 부모님께 순종하고 부모님을 존경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세상의 상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믿고 힘씀으로써 여러분의 가정을 사람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하나님의 뜻 위에 든든히 세워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