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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6.13.새벽예배 -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요한삼서3)



요삼0103to04 - 진리 가운데서 행한다 하니(요삼3).pdf


20130613D (#1).mp3.zip



* 음성 파일 가운데 '형제들'을 성도들로 말씀드린 부분은 착오입니다.

    

      본   문 : 요한삼서 1장 3-4절


     저는 지난 번 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길 때, 심방을 하면서 부모로서 자신을 자책하는 성도들을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이 그렇게 자책했던 이유는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재산을 많이 물려주지 못했기 때문도 아니었고, 공부를 많이 시켜주지 못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분들이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자신도 교회에 다녔지만 신앙이 그다지 진지하고 깊지 못했고 그래서 자녀들의 양육을 학업중심으로 했습니다. 교회나 신앙은 우선순위에서 앞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죠. 그러다 세월이 흐릅니다. 그러는 중에 자신의 신앙이 진지해지고 깊어집니다. 그제서야 자녀들의 신앙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실수를 발견하게 되구요. 그렇지만 벌써 자녀들은 많이 세속적이 되어버린 이후고 이제는 말로 해서는 따르지 않는 나이가 됩니다. 이제는 부모로서 자녀가 어떻게 살든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됩니다. 또 자녀들이 신앙생활에서 멀어졌으니 고집과 자기 생각이 얼마나 강한지 부모말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신앙을 떠나지 않는다면 그 신앙은 점점 깊어지고 진지해 지기가 쉽습니다. 특히 노년기에 접어들면 신앙이 얼마나 절실한 문제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자녀들을 생각할 때, 가장 감사한 것도, 또 가장 안타까운 것도 바로 신앙이 됩니다. 물론 신앙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보면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부모로서 자녀들의 신앙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했다는 후회는 연세가 드실 수록 더 강해지시는 것 같습니다. 


    믿는 부모로서 자녀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신실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요한 사도 또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요한은 영적으로 볼 때는 마치 자녀를 멀리 떨어뜨려놓고 타지고 간 아버지와도 같았습니다. 게다가 그 아들이 목회를 하는 목회자였기 때문에 더 근심이 되었고, 또 궁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로부터 소식을 가지고 온 사람은 요한이 가장 듣고 싶어하던 소식을 들려주었습니다. 그것은 가이오가 건강하다고는 이야기도 아니었고, 목회에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소식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가이오가 요한이 전해준 진리를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으며 또 스스로도 그 진리에 신실하게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1절과 2절에서 가이오를 향한 사랑을 풍성하게 표현했던 요한은 이번에는 가이오에 대한 자신의 기쁨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요한의 기쁨은 아들에 대해서 가장 듣고 싶어하던 소식을 전해들은 아버지의 기쁨이었습니다. 영적인 아들이, 그리고 목회자인 자신의 제자가 가장 바람직한 모습으로 살며 또 목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게 그렇게 기뻤던 것입니다. 요한이 가이오에 대해서 느꼈던 사랑만 최고가 아니었고 기쁨도 최고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저도 그럴 것 같습니다. 목회자로서 성도들을 돌보고 섬기면서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진리에 순종하면서 능력있고 풍성하며, 또 영적으로도 든든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본다면 아마 저도 성도들에게 기뻐 죽겠다고 고백할 것 같습니다. 사실 모든 그것이 모든 정상적인 목회자들의 소원일 것입니다. 그런데, 목회자들이 이런 소원을 품는 것은 그것이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소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끼십니다. 


    우리는 어제 ‘영혼이 잘 되는 복’이야 말로 성도가 누려야 할 최고의 복이며, 그 복이 있어야 다른 복들도 참으로 유익한 것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영혼이 잘 될까요? 영혼이 잘 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우리 인생의 사용설명서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건강하고, 하는 일이 다 잘 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우리가 그런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실 때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영혼이 잘 될 때입니다. 우리가 이 복을 누리며 살아갈 때 가장 기뻐하시고 그럴 때 우리에게 나머지 복들을 흔쾌히 주시고 또 우리가 그런 것들을 누리며 사는 것들을 정말 즐거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이 잘 된 후에 누리는 다른 복들만이 의미있는 복들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영혼을 잘 되게 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진리 안에 머물며, 그 진리에 따라 살아갈 때, 우리의 영혼은 잘 되며,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쁨은 곧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해야할 기능을 하면서 존재할 때에만 생겨날 수 있는 것이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삶이 제 자리에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기뻐할 수 있는 삶이라면 이미 그러한 삶 자체로 가장 행복하고 훌륭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하나님께서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복들은 아마도 그저 ‘덧붙여진 부록과도 같은 복’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풍성하심을 더욱 더 온전하게 알고 또 누리며 살아가라고 덤으로 주시는 복 말입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 눈에 보이는 복들을 주시지 않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이 차례를 발견하고 제 자리로 돌아와 먼저 구할 것을 구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시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잘 될 때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영혼을 잘 되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 영혼이 잘 되고, 그래서 참된 의미에서 하는 일들이 잘 되며, 또 건강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우리 인생의 유일한 사용설명서인 성경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용설명서 대로 우리의 삶을 사용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고, 또 우리를 위한 최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기가 힘들 때마다 내가 그 말씀에 순종할 때 기뻐하실 하나님과 또 나에게 주어질 참된 복들을 생각하셔서 기꺼이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리 안에 머물며, 그 진리를 행함으로 영혼이 잘 되셔서 모든 복들을 풍성하게, 그리고 부작용 없이 누리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