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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7.05.새벽예배 - 죽을까 하노라(창세기 13)


창0301to07- 죽을까 하노라(창13).pdf


20130705D (#01).mp3.zip




본   문 : 창세기 3장 1-7절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세상은 정말 더할나위 없이 온전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피조물 하나 하나의 온전함, 그리고 그러한 피조물들 사이의 조화와 질서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 무엇보다도 그러한 세상을 대신 다스리고 돌보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신 인간이 있음으로 해서 세상은 정말 나무랄데 없이 풍성하고 멋진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서 가장 간교하니라” 갑자기 그런 아름다운 세상의 풍경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우리는 이 뱀이 도대체 구체적으로 어떤 짐승이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성경은 이 뱀을 그저 평범한 뱀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장 1절이 이 뱀이 들짐승들 중에서 가장 간교했다고 말하지만, 여기 사용된 간교하다는 말은 그저 ‘영민함‘이라는 정도의 의미를 지닌 말입니다. 잠언을 보면 지혜로운 자는 이것을 얻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민함은 잘 사용하면 좋지만 잘못 사용하면 굉장히 좋지 못한 것, 그러니까 간교함이 됩니다.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고 다른 이들을 곤경에 빠뜨리게 됩니다. 뱀의 간교함도 그렇게 사용되었습니다.


하와가 혼자 있을 때, 이 뱀이 말을 걸어옵니다. 어떤 분들은 이 때 뱀은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서 특별하게 지음받은 동물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사람과 동물들이 서로 충분히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 동물들을 완전하게 돌보고 다스리려면 그래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생겨난 인간과 다른 피조물들 사이의 갈라짐은 결국 인간과 다른 피조물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끊어놓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아무튼 본문에서 뱀은 사탄의 하수인 역할을 합니다. 하와를 꼬셔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게 만드는 장본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인류의 역사 속에 일어난 비극을 다시 들추어서 누구의 책임인지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합니다. 지난 역사는 교훈만 얻으면 됩니다. 인류 타락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기록을 보면서 뱀이 잘못했느니, 하와가 잘못했느니, 관리를 잘못한 아담의 잘못이니 하고 따져 본들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찾아낼 것만 찾아서 우리를 위한 타산지석으로 삼기만 하면 됩니다. 


첫번째로 우리는 뱀의 말 속에서 오늘날 우리를 향한 유혹들이 어떠한 형태로 우리를 찾아오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뱀은 하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진짜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든?” 이 질문은 굉장히 말도 안되는 얼마나 교묘한지 모릅니다. 뱀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너희에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느냐?”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와는 단정적으로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탄이 우리를 죄악으로 넘어가게 할 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처음부터 금지된 것 자체를 들고서 우리를 찾아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우리가 처음부터 그것은 금지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그만큼 유혹에 넘어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자기 입으로 금지된 것을 직접 말하는 대신에 우리 스스로가 금지된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듭니다. 또 한 가지 사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수많은 것들 대신에 금지하신 소수의 것들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일단은 하나님께 대해서 오해를 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불신자들 중에서 하나님은 하지 말라는 것이 너무 많아서 못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은 바로 이러한 사탄의 계략에 자기도 모르게 넘어가 있는 것입니다. 


뱀의 이야기는 맞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와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야. 하나님은 우리가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어. 그러면 죽을지도 모르니까.” 하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굉장히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하와의 이야기는 한쪽은 굉장히 과장되어 있지만 다른 한쪽은 굉장히 완화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그런데, 하와는 ‘먹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는 말로 굉장히 과장해서 말합니다. 좋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저 있는 그대로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먹지 말라”고 하셨으면 그거 “먹지 말라”고 하셨다고만 생각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맞는 것은 맞다고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만 하면 된다고 하시며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다 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 특히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에 대해서 객관성을 잃고 너무 과민하거나 또 과장된 반응을 한다면 사실은 그것이 더 위험합니다. 거기에는 이미 감정이 개입되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앞 쪽에는 과민하게 과장을 한 반면에 하와는 정작 진짜로 중요한 것에는 ‘물타기’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러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어.” 하나님은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는데, 하와는 그 말씀을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씀으로 바꿔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각한 경고를 듣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또 하기 힘든 요구를 해 오실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때 우리가 하기 쉬운 것이 바로 물타기입니다. 농도 100퍼센트의 말씀에 물을 잔뜩 타서 50퍼센트짜리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듣고 ‘아, 그렇구나. 그러면 이제 순종해야 하겠구나’ 하고 그 길로 가는 대신에 많은 사람들이 ‘정말 그렬려구. 그저 행위와 순종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씀이겠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씀에 물을 타면 어떻게 될까요? 말씀이 진짜로 말하는 것과 정반대 방향으로 가게 되기가 쉽습니다. 하와의 경우를 보면 하와가 그 말을 한 순간 이미 하와는 반쯤은 뱀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와는 ‘죽을 수도 있지만 죽지 않을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설마 저 열매 하나 따먹는다고 나를 죽이실까?’하는 생각에 빠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저 있는 그대로 생각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합니다. 너무 필요이상으로 강조한다거나 혹은 물을 탄다거나 하는 것은 둘 다 말씀에서 벗어나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뱀이 그 틈을 놓칠리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그걸 노리고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뱀은 곧바로 말합니다. “아냐. 저거 하나 따 먹는다고 절대로 죽지 않아. 그건 하나님께서 너희가 저걸 따먹고서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같이 되고 또 선악을 알게될까봐 두려우셔서 거짓말 하신 거야.” 우리가 바로 서 있어야 할 곳에서 이탈하게 될 때, 사탄은 절대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때 하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시는 것, 또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다 우리들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유익과 선을 위해서 어떤 것은 하라고 하시고 또 어떤 것은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그렇게 금지되어 있거나 혹은 행하라고 하는 것들만을 들고 와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힘든 것을 왜 하라고 하시지? 이렇게 좋은 것을 왜 못하게 하시지? 정말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 맞니?”하고 말입니다. 현실 속에서는 이런 질문이 우리 생각 속에 저절로 생겨나지만 실상 그것은 사탄이 우리 영혼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 또한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성은 흔들리게 되고 그러면 우리는 불순종이라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오늘은 선악과 사건을 통해서 사탄은 우리를 어떤 식으로 속이고 유혹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또 어떻게 그 유혹에 넘어가게 되는지 하는 것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죄란 사실 별 것이 아닙니다. 죄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이 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을 개입시켜서 과장하거나 물을 탈 때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말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둘째,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될 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도 믿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말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사탄은 이것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항상 이것을 통해서 우리들을 유혹하고 범죄하게 합니다. 


항상 말씀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정직함을 유지하시고, 항상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믿음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머물 수 있습니다.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에서 그 순종이 가져다 주는 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항상 이 두 가지를 잊지 마셔서 사탄의 유혹을 확실하게 분별하시고 또 믿음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