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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7.08. 새벽예배 -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창세기 14)


창0301to0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창14).pdf


20130708D (#01).mp3.zip




  문 : 창세기 3장 1-7절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뱀은 똑같은 나무의 열매에 대해서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들으시기에 둘 중에서 어떤 이야기가 듣기 좋으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뱀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둘 중의 어느 것이 진리였고, 그래서 아담과 하와에게 유익한 것이었으며 두 사람을 위한 이야기였습니까? 뱀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듣는 이야기들에 대한 일반적인 원리를 한 가지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당장 듣기 아무런 거슬리는 것이 없는 것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진리에서 멀고, 그래서 결국에는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은 것이 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향해서 항상 젖만 먹는 어린아이로 남아있지 말고 단단한 음식도 멀을 수 있을만큼 성숙해야 한다고 말씀했는데,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진리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실은 듣기 어려운, 당장 들어서 기분좋지 않은 말씀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유혹은 부드럽습니다. 달콤합니다. 유혹치고 귀에 거슬리거나 우리의 본능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들이 없습니다. 하와에게도 그랬습니다. 아직은 죄가 없는 하와에게도 뱀의 유혹은 부드럽고 달콤했으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귀에 거슬리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이미 죄인이 된 우리에게는 더더욱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부드러울수록, 귀에 달콤한 것들일수록, 우리의 본능에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일수록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만 조심해도 우리 삶을 공격하는 뱀의 유혹을 많이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와는 뱀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아담은 하와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저는 하와가 넘어간 유혹이나 아담이 넘어간 유혹이 똑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는 유혹 또한 본질적으로 보면 그 때와 똑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적인 싸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영적인 싸움에서 백전백성은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려면 우리는 그 유혹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공격하는지를 모르면 결국 공격당하는지도 모르고 공격을 당하게 되고, 그러면 이길래야 이길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뱀은 하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바로 이 말에 하와가 무너진 것이죠. 하와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악이라고 여기고 선이라고 하시는 것을 선으로 여기며 악은 피하고 선은 행하는 그런 삶이 아니라 아얘 자기 삶에 있어서 하나님이 되어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며 살아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과연 무엇을 먹고 무엇을 가진들 인간에게 그런 능력이 생겨날 수 있을까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이라는 뜻은 결코 절대적인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적이라는 말의 뜻은 자신이 기준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뱀의 이야기를 들은 하와에게는 그런 충동이 생겨났습니다. 자신의 상대성을 벗어나 절대성을 가지고 싶어졌습니다. 그것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런 충동을 가지고 선악과를 보니, 선악과는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였습니다. 전혀 눈에 띠지도 않던 그 열매가 갑자기 먹고 싶기도 하고, 보기도 좋고, 정말 저걸 먹으면 선악을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는 절대적인 지혜가 생겨날만큼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죄의 유혹이 들어오면 그 유혹에 넘어가기 시작하면 생겨나는 현상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까지는 별 것 아니었던 것이 갑자기 너무 좋게 여겨지고, 정말 거부하지 못할 정도로 매력적으로 와닿습니다. 그것만 가지면 다 될 것처럼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여겨지는 것일수록 위험한 것입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는 영적인 실패를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 커다란 죄를 범하게 됩니다. 


뱀의 유혹은 이것만 먹으면 너 다 가지게 된다. 네가 정말 가지고 싶어하던 그것 얻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탄의 유혹이 가지는 본질입니다. 굳이 선악을 아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탄의 유혹은 항상 이것만 가지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형식으로 다가옵니다. 돈, 권력, 방탕함, 지식 등. 그래서 유혹은 항상 우리에게 우리의 힘을 키우라는 방식으로 주어지게 됩니다. 겉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그것만 가지면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고 또 내가 원하는 모양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탐스럽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유혹이 되지 않겠지요. 


사탄의 유혹이 그럴 듯하게 들리기 시작하면 게임은 거의 끝난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그 유혹 앞에 무너지게 됩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가 그렇게 맛있어 보입니다. 먹기만 하면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말이 안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 안에 피조물이 가지면 하나님이 되는 그런 능력을 넣어놓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이라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것도 조그만 과일 하나 속에 말입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라고 해서 특별히 맛이 있거나 특별히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그 안에 죄가 들어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것을 통해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지닌 피조물로 남아있으면서 하나님을 섬기거나 아니면 하나님을 거역한 반역자의 자리로 가거나 둘 중의 하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매개물이 되는 것, 그것이 선악과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삶은 사실 크고 작은 선악과들로 가득 차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 삶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리로 갈 수도 있고,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죄를 짓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성경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결과를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이에 그들이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사탄의 야기 대로 선악과를 먹었더니 눈이 밝아지기는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진짜로 선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결과 깨닫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금하신 선을 넘어가 버린, 스스로 하나님의 형상이기를 포기해 버린 그런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신들이 서로 서로를 바라보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수치스러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는 일시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게 해 주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힘도 주고, 편리함도 주고, 만족도 가져다 줍니다. 만약 죄가 이런 것을 주지 않는다면 세상에 죄를 지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주는 이런 것들은 일시적인 것이고 또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삶을 망가뜨리며, 우리를 수치스럽게 합니다. 죄란 얼마나 악한 것입니까? 처음에 아담은 하와를 보며 ‘내 살 중의 살이고 뼈 중의 뼈’라고 고백하게 했는데, 이제는 그런 하와 앞에서 자신을 가려야만 살아갈 수 있게 만드니 말입니다. 


죄의 유혹은 언제나 그럴 듯하고 또 언제나 달콤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과 비슷한 것들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끝이 좋질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망가뜨리며 부끄럽게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눈앞에 있는 모든 그럴 듯한 것들은 다 선악과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며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우리에게 안겨줄만큼 탐스러운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한다면 우리는 수많은 선악과들을 통해서 오히려 더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되어져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탐스러운 것일수록 더 주의 깊게 살피시고, 그런 것들을 통해서 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므로 언제나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으로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