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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오후

2013.07.28.전교인 기도회 - 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전교인 기도회 4)



계0208to11 - 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1).pdf


20130728SE (#01).mp3.zip



      본문 : 요한계시록 2장 8-11절



신대원 시절에 교수님께서 목회신학 수업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회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하면 다 성공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성공하게 해 주신다. 그러니, 두려워할 것 없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맞는 것 같은데도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알고 있는 현실과는 맞지 않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시절에 시골교회들로 농촌봉사활동을 많이 다녔습니다. 농촌으로 다니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정말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리고 진실되게 목회를 하고 계셨지만, 그 곳에 계신 목사님들은 정말 힘겹게 목회하고 계셨습니다. 수년씩 목회하고 열심히 전도해도 교인들이 늘지 않습니다. 주민들은 여전히 복음에 냉담합니다. 그 중에는 끼니걱정을 해야만 하는 목회자들도 많았습니다. 


사람이 가장 힘들 때가 언제일까요? 그것은 옳은 길을 정직하게 가고 있는 데도 계속 고난과 힘든 일이 계속될 때일 것입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진실되게 살아가는데도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그럴 때가 가장 힘들 때일 것입니다. 현실적인 어려움만이 어려움의 전부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겪게되는 정신과 마음의 갈등이 더 어렵습니다. 옳을 길, 바른 길이라고 믿고 가고 있지만, 고난과 역경만 계속 될 때, 사람은 지금 자신이 가고 있는 그 길이 옳은 길이라고 믿었던 그 확신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 동안은 그 길이 옳은 길이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버텨왔는데, 그 믿음, 그 확신이 흔들리게 되니 무엇보다도 그것이 힘겨운 것입니다. 그러한 정신과 마음의 갈등을 이겨내지 못하면 그 동안 목숨처럼 지켜왔던 것들도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말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들 중에서 두 번째의 편지입니다. 첫번째 편지는 에베소 교회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던 대로, 현대로 친다면 역대로 훌륭한 목사님들이 목회를 했으며, 성도들은 올바른 지식과 진리위에 든든히 서 있는 훌륭한 전통을 가진 아주 잘 알려진 유명한 대형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서머나 교회는 에베소 교회와는 정반대의 교회였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오늘 본문을 제외하면 성경 어느 곳에서도 그 이름조차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에도 서머나 교회는 나오지 않습니다. 현대의 교회로 비유한다면, 주목받지 못하는 지방소도시의 이름 없는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교회가 성공한 교회입니까? 우리는 이 두 교회를 바라보면서 어느 교회를 더 좋은 교회라고 말하겠습니까? 말할 필요도 없이 에베소 교회가 성공한 교회, 더 좋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평가하지 않으셨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주님께서 편지를 보내신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서 주님의 책망을 받지 않은 두 교회 중의 한 교회입니다. 주님의 눈에는 서머나 교회만큼 성공적인 교회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서머나 교회는 어떤 교회였을까요? 본문의 기록으로 서머나 교회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이 교회의 어떤 점이 주님을 그렇게 기쁘게 했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정은 말할 수 없이 열악했습니다. 주님은 9절에서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환란을 당하고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도 굉장히 가난했습니다. 사실 서머나는 못 사는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무척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의 경제권은 모두 유대인들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반대하는 예수를 믿는 신앙을 갖는다는 것, 그래서 그들의 미움을 산다는 것은 이 도시에서는 거의 장사를 하거나 무엇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다른 어느 곳보다도 심한 유대인들의 핍박과 반대를 경험하고 있는 곳이었고, 그래서 겉모습으로만 본다면 초라하고 부끄러운 모습의 교회였습니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고통과 환란 중에 있는 서머나의 성도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큰 힘이 되는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은 먼저 자신을 처음이요 나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속한 것 중에는 처음 것이 없습니다. 또한 마지막 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오래가는 것이라 할지라도 세상에 속한 것들은 시간이라는 한계 속에서 처음과 나중의 그 중간에 존재하는 것들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처음이시고 동시에 마지막이신 분이십니다. 이 말씀은 주님은 변함이 없는 분이신 동시에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의 운명을 결정하실 수 있는 영원하신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서머나의 성도들을 향해서 그런 내가 너희와 함께 하고 있다. 그런 내가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또 주님은 자신을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정복하셨다는 것이며, 또한 성도들을 다시 살리실 분이라는 뜻입니다. 흔히들 최악의 상태에 부딛히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뭐 죽기 밖에 더하겠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없는 일도 최악의 경우 죽으면 끝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는 죽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다시 삽니다. 생명의 주, 부활의 주이신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 주십니다.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영광스러운 부활이 성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믿습니까?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까짓거 눈 한 번 감고 주님을 위해 살다가 주님을 위해서 죽어볼 만 하지 않습니까?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이 만난 하나님은 바로 이런 하나님이셨습니다. 영원히 변함없이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붙드시는 하나님, 그리고, 부활을 약속하시는 하나님, 죽어도 안 죽게 하시는 하나님, 그렇게 죽음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 예수님께서는 서머나 교회를 향해 나는 너희에게 이런 하나님이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하나님이 되어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의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승리하게 하는 믿음은 어디에서 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믿음에서 옵니다. 내가 모시고 있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떤 하나님이신가를 확실히 알고 믿는 믿음에서 옵니다. 우리가 자주 흔들리게 되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떤 하나님이신지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또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0절에 보시면 주님은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두려움에서 파생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세상없는 어려운 일을 당해도 두려움만 없다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버리고 세상을 택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거짓을 행하고, 변법을 쓰는 것도 두려움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이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충분히 두려움을 이길 수 있기 때문에 주신 명령입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가 행하기에 불가능한 것을 하라고 하시면서 왜 그렇게 못하느냐고 우리를 괴롭히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할 수있기 때문에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두려움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바로 하나님께 대한 확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습니까?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까? 그 분이 결코 나를 떠나지 아니하실 것을 믿습니까? 설혹 내가 죽임을 당하더라도 주님은 나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다시 살리실 것을 확신하십니까? 만약 우리가 이런 사실들을 진실로 확신한다면, 그리고 이 믿음으로 무장한다면 우리는 우리 삶을 얽어매고 있는 두려움들을 넉넉히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이런 저런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바로 주님께 대한 이런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믿기는 믿어도 그 믿음이 머리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남들 가진 것 다 가져야 마음이 편하고, 남들 가진 것 보다 더 가져야 비로소 평안을 누릴 수 있다면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도데체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겠습니까? 제가 믿음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지론 중의 하나는 믿음은 사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 예수 믿은 다음 바로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시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우리의 믿음이 하늘나라에 가는데에만 사용하는 것이라면 주님은 분명히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괜히 힘든데 여기 남겨놓지 않으시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 믿고 나서도 우리를 여기 남겨 놓으셨을까요? 그것은 믿음으로 살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라고 믿음을 주시고 여기 살게 하신 것입니다. 


믿음은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서 주님께 내보이려고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하늘의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믿음입니다. 이 땅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믿음은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그런 믿음은 우리를 구원하기에도 역부족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가지 이유로 고난과 궁핍가운데 계십니까? 물론 우리는 그런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현실의 주인이시고 또 공급자이시기도 하니까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과 환란을 당할 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그 고난과 환란의 해결이 아닙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처음이요 나중이신 하나님 모든 주권을 가지고 계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그 분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신다는, 나는 죽어도 영광스럽게 다시 살 것이라는 그 믿음, 그 확신이 필요합니다. 이 확신이 있으면 환란을 이깁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참아낼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주님은 바로 이 능력있는 확신을 주시기 위해서 그와 같은 모습으로 환란을 당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머나 성도들 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서머나의 성도들은 얼마나 기쁘고 든든했을까요? 자신들이 가는 길에 대해 얼마나 큰 확신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다시 힘을 얻어 믿음의 길을 걸어갔을 것입니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를 향해서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은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든 사정을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르는채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 중에 믿음 때문에 환란을 당할 때, 믿음 때문에 불이익을 감수하고 손해를 봐야하는 상황을 당하게 될 때,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노여워하거나 슬퍼하는 대신에, 낙심하는 대신에 예수님이 다 알고 계시고 그래서 결국 예수님이 다 갚아 주실 것이라는 사실에 우리의 영혼을 묶어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이 땅에서가 아니면 저 위에서라도 다 갚아 주실 것입니다. 더 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이 땅에서 믿음으로 인해 당하는 고난과 불이익이 많을수록 하늘의 영광은 커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 예수님을 대면하여 만날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은 믿음 때문에 고난을 당한 성도들을 와락 품에 안으시면서 “너도 나처럼 살다 왔구나”라고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 그런 성도들을 주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 두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처음이요 나중이신 분이십니다. 변함없는 분이시며,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다시 사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실 분이십니다. 죽어도 안 죽게 해 주실 분이십니다. 영원한 영광 속에서 영생을 누리게 해 주실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우리의 하나님,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우리의 환란과 궁핍을 다 알고 계십니다. 교회나 성도 개인이나 환란과 궁핍 가운데서도 이런 하나님을 붙들 수 있다면 분명히 세상을 이기는 성도와 교회, 두려움을 넘어서서 담대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와 교회가 될 것이고, 하나님은 크고 훌륭한 교회보다도 이런 교회를 더 기뻐하시며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항상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끝까지 이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