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7.30.새벽예배 - 이름을 노아라 하여(창세기 27)



창0525to32 - 이름을 노아라 하여(창27).pdf


20130730D (#01).mp3.zip




  문 : 창세기 5장 25-32절


만약 사람이 현재의 자신의 선택과 또 삶의 모습이 죽은 후의 영원한 세월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확실히 알 수 있다면, 그리고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자신의 후손과 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남길지 알 수 있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굉장히 달라질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함부로 살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과 세상에 해로운 선택을 하는 것은 사람이 악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애석하게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런 능력을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창세기 5장은 아담의 족보입니다. 가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다시 허락하신 아들인 셋에서 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인류의 족보입니다. 이 족보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아담에서 시작해서 아담의 9대손인 노아까지 이어지는 족보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에녹과 노아를 제외하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다 “몇 살 때 누구를 낳았고 그 다음에 몇 년을 더 살았다”는 기록이 전부입니다. 정말 간략하고 무미건조한 이름과 숫자의 나열에 불과합니다. 그 이름 하나 하나에 다른 사람들이 대신 들어간다고 한들, 그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고, 또 별로 문제삼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은 이것이 죄를 지은 후의 모든 인간들의 삶을 요약해 주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죄인이기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업적이 있다면 자신의 뒤를 이어서 이 세상의 역사를 이어갈 2세들과 후손들을 남기는 것일테니까요. 그렇게 후손을 낳고 그 후손을 키우고, 그리고 그 후손이 자라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자신은 그 자리를 내어주고 떠나는 것. 이것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고 또 거부할 수 없는 반복되는 현실입니다. 그가 50년을 살던 500년을 살던 그런 점에서는 전혀 다른 것을 선택할 수가 없지요. 


그런데, 이러한 무미건조한 것처럼 보이는 일을 반복하는 사람의 삶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의 삶이 똑같은 무게와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지나온 가인의 족보를 보면 그 족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다 영웅입니다. 한 분야에서 이름과 재능을 떨쳤고 힘도 굉장히 셌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이름은 하나님의 저울로 재면 깃털 하나의 무게도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셋의 후손들... 비록 대부분의 자손들이 이름과 자손과 살았던 세월에 대한 기록 밖에 남기지 못했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저울에 달면 묵직하게 무게가 나갑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요? 그것은 조상이요 아버지로써 그들이 자신들의 자녀와 후손들에게 했던 역할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가인의 자손들이 왜 대를 이어가면 이어갈수록 더 악해졌을까요? 그것은 아버지들이, 그리고 조상들이 보여준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자꾸 악한 방향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가인이 시속 100킬로미터였다면 에녹은 110킬로미터로 달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어지다가 마지막 라멕에 이르러서는 브레이크 조차 듣지 않는 채로 무한질주를 하는 자동차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에녹은 가장 짧게 살았습니다. 다들 800년을 넘게 살았는데, 에녹은 365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에녹의 아들은 성경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았던 므두셀라입니다. 므두셀라는 969년을 살았는데, 이 므두셀라가 바로 노아의 할아버지였습니다. 계산해 보면 므두셀라는 홍수가 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아가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을까요? 에녹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요?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할아버지의 아버지인 에녹이 정말 특별한 것 없지만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다가 하늘로 들려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듣고 또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에녹은 노아의 마음 속에 닮고 싶은 조상이자 영웅으로 자리잡게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에노스와 에녹 사이에 태어났던 사람들의 역사를 우리는 함부로 추측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에녹과 므두셀라, 그리고 노아의 아버지 라멕의 삶을 통해서 셋 자손들의 역사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신앙을 지켜가고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애쓴 역사였다고 판단할 수 있고, 이것이 크게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적어도 장남을 통해 이어진 가문은 말입니다. 


노아는 결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조상의 믿음의 유산을 물려받아 그 유산 위에서 찬란한 믿음의 빛을 발한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허무한 인생, 한 번 왔다가 갈 수 밖에 없는 인생이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자녀에게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일 말입니다. 


자신의 신앙을 잘 지키는 일, 그리고 그것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일은 그것 자체로만 보면 별로 크게 특별한 일도 아니고, 또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미래의 하나님의 역사를 위한 씨앗이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가 전 세대와 다음 세대, 조금 길게 보면 그 다음 세대까지를 연결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앞선 세대는 우리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연결고리로서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잘 지키고 또 거룩한 삶을 살면 우리 다음 세대의 모습과 의미는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인의 계보와 셋의 계보는 우리에게 그것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가인의 계보에서는 7대가 지나자 라멕이 나왔습니다. 자신의 잔인함과 무자비함을 자랑하는 악인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셋의 계보에서는 9대가 지나서 인류의 역사,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새로 시작하는 역할을 한 노아가 나왔습니다. 가인이 자신의 삶과 선택의 결과를 생각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노아의 조상들, 특히 에녹이나 므두셀라는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마도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달랐던 것이고, 그런 모습들이 씨앗이 되어 하나는 라멕이라는 열매로, 다른 씨앗은 노아라는 열매로 맺혀지게 된 것입니다. 희망이 없는 이 세상을 위한 위로가 되었고, 그래도 믿음 없이 악하기만 한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님께 위로가 되는 그런 열매로 맺혀지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의 선택,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은 씨앗입니다. 우리가 가인의 씨앗을 닮은 씨앗을 뿌리면 그 열매는 라멕이 됩니다. 그렇지만 셋의 씨앗을 닮은 씨앗을 뿌리면 그 열매는 노아가 됩니다. 이것이 나고 살고 자녀를 낳고 죽는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우리의 삶이 가지는 영원한 의미이고 또 가치입니다. 


오늘도 좋은 씨앗을 많이 뿌리시기 바랍니다. 그 모든 씨앗이 가치없다 여기지 마시고, 의미없다 생각하지 마시고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것을 뿌리려고 애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언젠가 먼 훗날 우리가 뿌린 씨앗에서도 의로운 열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중요하게 쓰일 열매들이 맺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삶과 선택을 좋은 씨앗을 뿌리는 지혜로운 농부들이 되어서 하늘나라에서 우리가 뿌린 씨앗에서 열린 영광스러운 열매를 따먹고 사는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