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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8.01.새벽예배 - 그러나 노아는(창세기 29)



창0605to12 - 그러나 노아는(창29).pdf


20130801D (#01).mp3.zip




  문 : 창세기 6장 5-12절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는 구원이라는 은혜는 사람에게서 그 어떤 이유와 조건을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 은혜가 아직 영적으로 그리고 하나님께 대해서 살리시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제외한 다른 은혜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어떤 조건이 만족 될 때 그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그렇지만 조건이 만족될 때 주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은혜가 은혜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 조건 자체가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저희집 아이에게 시험을 잘 보면 선물을 사주기로 한다면, 사실 시험을 잘 보면 반드시 선물을 사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험을 잘 보는 것이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공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은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은혜를 주시는 조건들을 가지고 계시고, 또 너희가 이렇게 하면 내가 이렇게 하겠다고 하는 약속을 해 주시기도 하시지만 그런 것들이 모두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하늘에서 떨어지는 감같은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계속 기다리기만 합니다. 그러는 중에 영혼은 배가 고프고 궁핍해 집니다.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기가막힌 은혜들을 놓치게 됩니다. 


우리가 지난 번에 살펴보았듯이 노아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새로운 역사의 시작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조상, 셋의 후손들이 늘어나기만 하는 악인들 틈에서 약한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위한 조건일 수도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가 노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조상들을 잘 만난 탓만은 아닙니다. 당시에 수많은 셋의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었고,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의 딸들과 결혼해서 성령을 잃어버린 육신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그 틈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믿음을 잘 지켜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점점 더 악해져서 마음에 품은 생각과 계획이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 때문에 너무 심각하게 더럽혀진 이 세상과 그 위에서 살아가는 다른 피조물들 까지 모두 다 물로 씻어버리시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셨을까요? 또 얼마나 참담하셨을까요? 이 세상과 다른 피조물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서 사랑하기 위해서 만드신 사람들을 손수 모두 수장시켜야만 하셨을 때, 그 마음은 얼마나 슬프셨을까요? 이 사람들이 나중에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셔서 구원하실만큼 하나님께는 귀하고 또 소중한 존재라면 우리는 이런 결정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을 때, 우리 자신의 죄만 생각합니다만,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죄를 범하는 것은 하나님께는 하나님에게 그렇게 소중하고 귀한 존재가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될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께는 분명히 고통스럽고 굉장히 힘겨운 광경이 될 것입니다. 물론 이런 저의 설명 때문에 하나님을 나약한 분으로 여겨서는 안되겠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그런 아프고 힘든 마음이 되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어둡기만 한 하나님의 마음에 한줄기 빛이 되었고, 또 위로가 되었던 사람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노아입니다. 그런 죄많고 어두운 시대를 살아갔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노아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얻지 못하는 얻는 은혜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는 분명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의 이름대로 그가 하나님께 위로가 되어드릴만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기대하고 그것을 받기 위해서 그런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닙니다. 노아는 그저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마땅하고 또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마음과 확신대로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그를 향해서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는 평가를 내려주셨고, 이 평가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절대로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노아가 하나님의 기준을 만족시킨 의인이었고 또 그 행실에 있어서 건강하고 온전한 사람이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에게 줄 수 없을만큼 후한 점수를 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죄악이 온 땅을 가든 채운 시대, 그리고 사람들이 마음에 품는 모든 생각과 계획이 악하기만 했던 그의 당대에 말입니다. 그러니 노아가 하나님께 얼마나 큰 기쁨이 되었겠고, 또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가 그 역할을 맡아야만 했던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런 영광을 주셨습니다. 그의 가족에서 그런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도 점점 노아의 시대를 닮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에는 죄악이 점점 늘어가고 있고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계획 속에서는 하나님이 사라지고 욕심과 이기심만이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시대야 말로 성도가 성도답게 살아가는 일이 더 가치있고 빛나는 일이 되는 그런 시대입니다. 우리의 작은 의와 온전함이 하나님을 더욱 더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시대를 탓하면서 시대와 함께 가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또 하나님께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고 어려워도 이 시대가 그런 시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의롭고 온전한 자로 살아가려는 노력을 더 많이 기울이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특별한 은혜는 하나님께서 주실만한 사람을 찾으시고 또 그런 사람에게 주시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런 특별한 은혜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점점 더 참된 성도가 줄어드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드리고 또 하나님께 위로가 되어드리는 그런 사람들로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부족하고 완전하지 않아도 우리 세대의 의인과 완전한 자로 평가받는 영광을 누리며, 우리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그 일의 시작점이 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