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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8.27. 새벽예배 -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창세기 40)



창1110to26 -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창40).pdf


20130827D (#01).mp3.zip





  문 : 창세기 11장 10-32절



시날 평야에 바벨탑을 세우려고 하기 전까지 하나님을 향한 모든 죄악은 모두 개인적인 죄들이었습니다. 물론 그 악영향이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이전까지의 죄는 그저 한 사람이 유혹에 넘어가거나 혹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해서 저지른 죄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바벨탑을 세운 일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죄였습니다. 그것은 집단적으로 저지른 죄일 뿐만 아니라, 서로 의논하고 힘을 합쳐서, 그것도 직접 하나님을 대항하여 저지른 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죄만큼 쉽게 번지고 또 빠르게 나쁜 방향으로만 치닫는 것이 없습니다. 죄는 언제나 하나에서 여럿으로 그리고 한 사람에게서 여러 사람으로, 개인적인 죄에서 집단적인 죄로 번져 나갑니다. 또 결국 하나님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죄를 가볍고 간단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죄의 질로 보아서 바벨탑을 세운 일은 그 이전의 어떤 죄보다도 크고  심각한 죄였습니다. 그래서 실은 이번에도 이 세상은 한 번 더 망해야 마땅했습니다. 창세기는 그렇게 바벨탑 사건으로 마무리 되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벌로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더 이상 함께 하나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드시는 안전조치를 취하시기는 하셨지만 그 이상의 심한 벌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바벨탑 이야기 뒤에 등장하는 셈 자손들의 족보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시 10장 21절부터 11장 마지막 절까지를 살펴보면 성경은 바벨탑 사건을 셈 자손의 족보의 가운데에 가져다 놓고 있습니다. 바벨탑 사건은 마치 두 개의 빵 사이에 들어있는 햄과 같습니다. 바벨탑 사건은 그것 자체로만 보면 아주 충격적이고 절망적입니다. 그렇지만 시날 평야에서 저질러진 죄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섭리와 은혜 가운데 놓여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삶 속에서 반복되는 죄를 볼 때,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저질러지는 엄청난 죄들을 볼 때, 우리는 좌절하게 되고 절망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나는 왜 이런가? 세상은 왜 이런가? 이런 나에게, 이런 세상에 과연 희망은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물론 나 자신만 보면, 그리고 이 세상만 보면 희망이란 것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원래 처음부터 소망은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죄를 짓기 전부터 그랬습니다. 소망은 항상 하나님께 있습니다. 나의 반복되는 죄, 그리고 사람들의 커져만 가는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과 신앙이 유지되고 이 세상이 그래도 아직 사람이 살만한 곳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감싸시고 또 그 놀라운 섭리 가운데 악을 선으로 바꾸어 오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나 이 세상에서 저질러 지는 악한 일들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개인적인 삶에서는 탐욕과 이기심이 만들어 내는 악한 일들을 최선을 다해서 막아야 하며, 또 교회 속에서나 가정과 내가 속해 있는 사회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의 삶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망가뜨리는 죄에 대해서 너무 심하게 절망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항상 그 죄를 은혜 가운데 두시고, 섭리 가운데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 계시니까요.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바벨탑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어둠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셈 자손들의 역사 속에서 다시 한 번 밝은 빛을 밝히셨습니다. 11장 26절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탄생을 알립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의인의 역사는 시작되고 또 이어져 갈 것을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역사는 해피엔딩일까요? 아니면 비극적인 결말이 될까요?  이 세상의 역사는 해피엔딩이 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심판과 종말을 생각하지만 실은 세상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모든 섭리와 역사하심의 완성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선하신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역사의 완성이기 때문에 그것은 결코 비극이 될 수 없습니다. 분명히 심판도 있고 멸망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하늘나라의 그림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고 영광이 온전해 지는 것이지 결코 그것 자체로 비극적이고 무시무시한 마지막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이 세상의 모습은 가볍게 말씀드리면 그저 과정에 불과합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또 마지막 모습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이 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곳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망가지고 악화되는 세상이 우리 눈 앞에 있더라도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개인의 삶을 위해서도 우리는 마찬가지의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노력하고 애써도 죄앞에 무너지는 모습을 완전히 없앨수는 없습니다. 노력하고 애쓰다가 실패하면 더 낙심되고 더 힘들어집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그러한 실패까지도 은혜 가운데 두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하며, 바로 거기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죄 때문에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지 말고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야 합니다. 실패 때문에 낙심할 것이 아니라 그 실패 때문에 더욱 더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믿음의 몸부림을 그만두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 모든 것들을 선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최선을 다한 후에,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은 하나님께 고백하며 또 맡기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은혜 가운데 용서해 주시고, 악을 선케 바꾸실 것입니다. 이 세상의 역사가 삐딱선을 타고 가지 말아야 할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볼 때 그 모든 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의 흐름은 영광스러운 하늘나라를 향해 도도하게 흐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소망을 가지고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힘을 회복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들을 선하신 섭리와 은혜 가운데 두시는 하나님께 소망과 믿음을 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셈의 자손으로 묵묵히 가야할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완전하신 역사를 계속해 가실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믿음과 소망 가운데 절망과 좌절을 이기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며, 마지막 날 온 세상을 가득 채울 하나님의 영광을 기대하며 사는 믿음의 자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