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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8.29. 새벽예배 -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창세기 42)


창1201to04 -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창42).pdf


20130829D (#01).mp3.zip




  문 : 창세기 12장 01-04절



누군가에게 ‘선택을 받는다는 것’은 굉장히 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적어도 그 사람에게는 특별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나를 선택한 사람이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고 또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 선택은 더욱 더 영광스럽고 대단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선택한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어떨까요? 전지하시고 전능하시며, 모든 것의 주인되시고, 모든 것을 하고 싶으신 대로 할 수 있으신 하나님이 나를 선택했다면 그 선택은 얼마나 어마어마한 선택이 되겠습니까? 


어느날 갑자기 하나님이 아직은 아브라함이 되기 전인 아브람을 찾아오셨습니다. 그 때 아브람은 아직 갈대아 지역과 가나안 지역의 경계인 하란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곳이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죠. 그렇게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대뜸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란은 아브람이 평생 자라난 곳입니다. 거기에 아버지 집이 있습니다. 아버지 집이 거기 있다는 말은 모든 삶의 기반이 바로 거기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자기가 살던 지역을 떠난다는 것은 자신을 보호해 줄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것이 씨족 단위나 부족단위로 이루어지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심지어는 아버지 집, 그러니까 직계가족까지 모두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실제로 계산해 보면 아버지 데라가 아직 살아있을 때, 하란을 떠난 것이 분명합니다. 26절을 보면 아버지 데라가 70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고 되어 있고, 32절을 보면 205세에 죽은 것을 되어 있는데, 성경이 나중에 100세가 된 아브라함이 자녀를 낳을 수 없는 나이였다고 말하는 것을 감안해 볼 때, 데라가 아브라함을 낳은 것은 100세 이전일 수 밖에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란을 떠나라고 하셨을 때는 데라가 아직 살아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람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노령의 아버지를 내버려 두고 가야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내가 네게 보여준 땅”이 아니라 “내가 네게 보여줄 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그렇게 떠나면 얻게될 엄청난 복을 약속해 주셨지만 사실 그 모든 복들은 현재 누리는 복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미래형의 복이고 그것도 언제 얻을지 모르는 복입니다. 뭐하나 지금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먼저 땅을 보여주시고 손에 엄청난 재물을 쥐어주시면서 ‘이것 가지고 여기를 향해 가라’라고 하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뭐 계약금조로 절반이라도 먼저 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말 밖에 없었습니다. 그저 말 한 마디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 때 아브람의 나이가 75세였습니다. 젊었으면 모릅니다. 아무래도 아무리 대단한 약속이 주어지더라도 모험을 떠나기에는 적당한 나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에 대한 아브람의 반응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 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대로 따랐습니다. 떠났습니다. 고향을 버리고, 노령의 아버지를 남겨두고, 친척들고 헤어져서 그냥 갔습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이것에 대하여 더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데요. 히브리서 11장 8절은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고 말합니다. 말 그대로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하시니 정처없이 떠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택과 복주심,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선택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분명히 우리를 엄청난 복에 이르게 하는 선택입니다. 현실적인 복이든 아니면 영적인 복이든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하시면 주실 것이니 우리 편에서는 이렇게 저렇게 구분할 필요가 없지만 어쨋든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를 복으로 인도하는 선택입니다. 그렇다면  부름받은 모든 사람이 다 이런 복을 얻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르심을 받았다고 해서 그 모든 사람이 전부 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게 될까요? 우리는 아브라함에게서 그 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이것이 답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 또한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입니다. 그래서 복된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람들이 그 부르심 안에서 복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복,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만 받을 수 있는 진짜 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은 그 비율이 굉장히 적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복 주시는 타이밍이라는 문제를 제외하고 생각해 본다면,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얼마나 신뢰하면서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지금 당장 손에 쥐고 있는 것들보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을 더 확실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가야할 땅도 몰랐고, 복은 맛도 보지 못했지만 단지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그 약속만을 붙들고 75세나 되는 나이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저는 예수를 믿으면서 하나님께서는 항상 이런 요구를 하고 계신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물론 아브람에게처럼 나타나셔서 그렇게 하시지는 않지만 성경을 통해서,“너는 나의 이 약속을 믿고 나를 따라올 수 있겠느냐?”고 묻기도 하시고 상황을 통해서 “너 이래도 나의 약속을 신뢰하면서 나에게 순종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사실 그런 물음들 중에서 단 하나라도 대답드리기 쉬운 질문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끙끙거리고 기도하면서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제가 망했을까요? 고통당하고 손해본 적이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장은 그게 힘들어도 그렇게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을 따랐을 때, 결국에는 모두가 다 말할 수 없는 유익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에 대해서 한 번 한 번 긍정적인 답변을 드릴 수록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견고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제 마음은 담대해 지고 평강해 졌습니다. 


믿음은 그저 내가 바라는 대로 꽉꽉 믿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더 구체적으로는 그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 약속을 지금 눈에 보이는 것보다, 내 손 안에 있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분명한 것으로 믿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은 결국에는 눈 앞의 현실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이 있으면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일도 그렇게 힘겹지 않습니다. 제 경험으로 보면 일단 확실하게 생겨난 믿음은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 않고 아얘 예전의 믿음 없던 상태로 돌아가는 법은 거의 없으니까요. 하나님의 약속은 그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자를 위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은 현실과 똑같습니다. 그리고 결국 현실이 됩니다. 우리 모두가 다 이 믿음을 가지고 또 이 믿음이 주는 능력과 유익 누리며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부터는 아브람과 함께 그가 떠났던 믿음의 여행에 동행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람의 여행에 동행할 때, 우리가 아브람에게 배우게 하시고 또 아브람의 하나님께 배우게 하셔서 우리 조상 아브람이 가졌던 마지막 믿음으로 가까이 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