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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9.04. 새벽예배 - 그대로 말마임아 안전하고(창세기 45)


창1210to20 -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창45).pdf


20130904D (#01).mp3.zip




  문 : 창세기 12장 10-20절



 어제 우리가 살펴본 말씀의 마지막 절인 9절을 보면 가나안에 도착한 아브람이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남방으로 옮겨가던 아브람은 심한 흉년을 만나게 되고, 애굽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흉년이 끝날 때가지 애굽에 머물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애굽으로 향해 가던 아브람은 한 가지 커다란 걱정이 생겼습니다. 사래는 매우 미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바로가 사래를 보게 되면, 자기를 죽이고 사래를 빼앗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민하던 끝에 그는 한가지 묘안을 생각해 냅니다. 그것은 아내 사래를 자기의 누이동생이라고 속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의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 방법을 사래에게 말해 주었고 누구 묻거든 그렇게 대답하라고 말했습니다. 애굽에 도착하자 예상하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로의 신하들이 사래에게 미모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것을 바로에게 말해서 사래를 궁으로 들였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사래의 오빠라고 속인 아브람에게 재물을 주고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아브람은 요즘말로 하면 아내를 팔아넘긴 대가로 부자가 된 것입니다. 이런 행동은 시대와 나라를 막론하고 용서받을 수 없을만큼 비겁하고 비열한 행동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이상한 방법으로 처리하셨습니다. 이런 아브람에게 벌을 주시는 대신에 아무런 잘못도 없는 바로의 집을 큰 재앙으로 치셨습니다. 이런 일이 있자 바로는 그 원인을 찾았습니다. 알고 보니 사래는 아브람의 아내였고, 바로가 아브람의 아내를 취한 일로 그런 재앙이 내렸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허겁 지겁 아브람을 불러들였고, 그를 문책하였습니다. 아브람은 그런 바로 앞에서 아무런 말도 못했습니다. 너무나도 부끄럽고 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더 이상 자기의 가문과 자기의 나라에 재앙이 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곧 아브람과 그 아내 사래를 허겁지겁 자기 나라에서 내보냈습니다. 


분명, 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아브람과 사래였습니다. 아브람은 악한 거짓말을 계획적으로 생각해 내었고, 사래는 그 거짓말에 동조하였습니다. 그렇게 바로를 속였습니다. 확실치도 않은 위험 때문에 양심을 팔고, 도덕을 팔아서 목숨을 구걸했던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길을 떠나면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어서 이름을 창대케 할 것이며,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은 그 약속을 믿고 길을 떠났고, 가나안 땅에 가서는 그 땅이 자신과 자신의 자손들의 땅이 될 것이라는 확실한 약속도 받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람의 행동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도무지 앞에서 그런 믿음의 결단을 내린 아브람이 곧바로 이런 비겁하고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다는 생각하기 힘드니까요. 그러나, 그게 사람입니다. 사람은 바로 직전까지 온 세상을 이길 것같은 믿음을 보였어도 당장 눈 앞의 위협과 어려움이 닥치면 그 앞에서 무릎을 꿇기도 합니다. 항상 그럴 수 있는 가능성과 연약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믿음이 성장할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 믿음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자신의 믿음에 자신하지 말고 자신의 믿음을 겸손하게 생각해야 하며 또 잘 살펴야 합니다. 


아무튼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브람이었고, 그래서 벌을 받아야 한다면 아브람이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상하게도 아브람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오히려 바로를 징벌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가해자는 내버려 두고 피해자를 처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행동을 올바르다고 생각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 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아직 아브람의 믿음이 그런 커다란 시험을 이겨낼만큼 견고하지 않다고 여기셨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벌 주시는 대신 다른 교육방법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 당시 애굽이라면, 지금의 미국보다 더 더 큰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왕인 바로는 왕일 뿐 아니라 태양신의 아들로 숭배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거대한 강대국의 왕, 그것도 신의 아들로 숭배받는 바로가 벌벌 떨면서 자신의 잘못을 따지지도 못한 채 허겁 지겁 한 미천 덧붙여서 자신을 등 떠밀어 보내는 일을 경험하면서 아브람이 얻은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첫번째는 아브람은 지금 자신을 부르시고 자신과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가를 몸으로 배우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생각하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위대하시고 능력많으신 분이시라는 것을 직접 경험했으니까요. 아브람의 하나님은 온 애굽을 뒤흔들고 파라오를 벌벌 떨게하시는 그런 놀라우신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두번째는 그런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으면서도 너무나 믿음없이, 가장 파렴치한 죄를 저질렀던 자신이 부끄러웠고, 그래서 그 하나님에게 어울리는 믿음을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브람은 이 일로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사람은 죄를 짓습니다. 연약하기도 하고 또 악하기도 해서 위험에 처하게 되면,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적인 방법에 의지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언약을 취소하시거나 혹은 바꾸시지 않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지연될 수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한 번 하신 약속은 꼭 지키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때때로 불신앙에서 나오는 죄를 짓게 될 때는 빨리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실패가 하나님의 실패는 아니라는 것을 빨리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자리로 되돌아 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아브람이 흉년 때문에 애굽으로 가야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애굽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자기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하고, 그렇게 그 아내를 바로의 아내로 내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 아브람은 애굽으로 가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아브람의 생각은 가능성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측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 때문에 그런 악하고 파렴치한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행한다는 정말 정상참작이 어려운 일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발적인 죄와 계획적인 죄는 죄의 질에 있어서 아얘 다른 것이니까요. 그런 상황이 예상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 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신뢰하고서 정직하게 대처하면 안될까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지켜주시지 않으셨을까요? 


아브람이 사래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 그는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라고 말했는데, 이 말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왜 아브람이 그런 계획을 세우고 또 그런 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는지가 드러납니다. 이 말 속에는 ‘나’라는 말이 엄청나게 많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여전히 아브람의 관심사는 자기 자신 밖에 없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한 가지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라고 말하는데,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거기까지 왔지만 아직도 자신의 안전과 목숨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래에게,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중심이 되고, 또 나의 안전이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믿을 때, 우리는 결코 믿음을 위한 모험을 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아니라 죄악 쪽으로 기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애굽에서의 아브람의 경험은 오늘 하나님을 의지하여 믿음의 여행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나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될 때, 그리고 나의 안전과 보호를 하나님 아니라 사람에게 의지하게 될 때,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하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우리 삶과 신앙의 무게중심을 빨리 나와 다른 사람에게서 하나님께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를 공격해 오는 사탄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불신앙의 죄를 저지르게 된다면, 그 때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께로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며 또 항상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우리가 되어서 시험과 실패에도 넘어져 포기하지 않으며 더 나은 믿음을 향해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