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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9.10.새벽예배 -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창세기 48)


창1401to16 -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창48).pdf


20130910D (#01).mp3.zip




  문 : 창세기 14장 01-16절


롯이 요단들을 택하고 삼촌 아브람을 떠난 후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이미 등기이전이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려주시고 또 직접 그 땅을 발로 밟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녀를 티끌같이 많게 해 주시겠다고 거듭 확인해 주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멀리 남쪽 헤브론에 내려가서 거기서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스스로도 확인했습니다. 아마도 아브람은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을 것입니다. 새로 이사한 지역에서 자리도 잡혀가고 있었구요. 그런데, 그런 아브람에게 갑자기 비보가 전해집니다. 롯이 살던 소돔을 포함한 5개국이 그 동안 자신들이 섬기던 엘람왕국 동맹에 대항해서 전쟁을 벌였다가 패배하게 되었는데, 그 통에 소돔까지 밀어닥쳤던 엘람왕국 동맹군이 포로를 잡고 재산을 약탈할 때, 롯의 가족들을 모두 사로잡았고 그 동안 모아놓았던 모든 재산들을 전리품으로 삼아서 돌아갔던 것입니다. 아마도 이 소식은 롯의 가솔 중 하나가 도망쳐 나와서 아브람에게 전해준 것 같습니다. 아브람은 자기 집안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집에서 키우고 훈련시킨 318명의 병사들을 데리고 조카 롯을 잡아간 네 왕을 단까지 추격합니다. 그리고는 밤에 기습작전을 펴서 그들을 처부수고 조카 롯을 구하고 빼앗겼던 재산까지 다 찾아옵니다. 추측해 보건데 이 가신들이 일당백의 용사였기도 했겠지만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도운 전쟁이었음에 분명합니다. 아니면 318명만을 가지고 아무리 승리에 도취되어 방심해 있었다고는 하지만 네 나라의 연합군을 상대로 그런 승리를 거둘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이전과는 정말 많이 달라져 있는 아브람을 발견합니다. 애굽에 내려갔다가 돌아온 이후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생겨났던 아브람은 롯을 떠나보낼 때도 굉장히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 있었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람은 그 너그러움에 더해서 엄청난 담대함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용맹하다고 하더라도 조카를 구하기 위해서 318명 밖에 안되는 사병들을 데리고 네 왕의 정규군으로 이루어진 연합군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려고 그들을 추격해 갔으니까요. 아브람의 승리는 그런 아브람의 담대함이 전혀 근거없는 무모함이 아니라 진짜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고 그래서 하나님도 거기에 응답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브람도 완전한 것은 아니었고, 또한 시험에 들어 실수를 할 때도 있었지만, 우리가 본문에서 발견하는 아브람의 모습은 우리 믿음이 나아가야 할 바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람은 처음에는 자기 아내를 팔아서 목숨을 부지하고 또 현실적인 필요를 채우려고 할 정도로 겁도 많고 또 교활하기까지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일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후, 그에게는 복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고 그래서 조카이기는 했지만 롯에게 엄청난 너그러움을 보입니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더 큰 믿음이 생겼을 때는 무모하리만치 커다란 용기까지도 보입니다. 이것은 아브람이 또 흘러간 세월 속에서 자신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정당하게만 행동한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해 주시고 또 이기게 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자라나면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워지고 또 옳은 일에 대해서 담대함을 지니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가장 커다란 차이점입니다. 참 믿음의 사람이라면 작은 손해에 연연해 하지 않을 수 있고, 남에게 더 좋은 것을 양보할만큼 너그러운 마음이 생겨야 합니다. 그리고 옳은 일을 위해서는 남들에게는 어리석게 여겨질 수도 있는 용기도 생겨야 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너그러움과 용기가 커져가야 합니다. 이런 변화야 말로 그 사람이 자신의 뒤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진실로 믿는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가장 분명한 증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조차도 믿는 사람들의 덕스럽고 가치있는 행동들이 자기 희생과 실천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원래 신앙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덕스럽고 가치있는 행동을 하게 해 주는 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닙니다. 의지가 강하면 도움은 되겠지만 진짜로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감동시켜서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흉내내게 만듭니다. 바로 여기서 다른 사람들을 향한 너그러움이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내 삶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게 해 주기 때문에 우리가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지 않을 수 있게 만들어 주어서 우리가 올바른 일에 대해서 용기있는 행동을 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진짜로 신앙 안에서 희생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절대로 ‘나’라는 주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꼭 ‘나’라는 주어를 사용할 때는 ‘나’는 하지 않았다고 말할 때만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런 모습들이 삶에 덧붙여진 선행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삶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서 사는 사람에게 그 사랑을 흉내내는 일은 자녀가 부모를 닮아가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고,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이기심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은 물고기가 물 속에서 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의지는 필요합니다. 하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의지와 노력은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한 의지와 노력이기 때문에 결코 고통스럽거나 힘들지 않습니다. 절대로 불만을 가지고 화를 내면서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독교 신앙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다른 종교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독교 신앙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하나님의 은혜가 만들어 내는 변화라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고행을 해야 합니다, 도를 닦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 안에서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변화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인 은혜로 우리를 찾아오시며 또 필요이상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그런 은혜 속에서, 그 은혜를 알아가게 되면서 우리 안에 있는 속 사람이 저절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물론 은혜를 알기 전의 비뚤어진 삶의 방향과 습관들을 고치는 일에는 의식적이고 의지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이미 자신의 소원이 되어 있기 때문에 결코 자신의 공로나 억지춘향이 되지 않습니다. 


신앙이 주는 기쁨 중에서 가장 큰 기쁨은 자신이 변화되는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기쁨, 내 속에서 점점 더 진해지고 명확해 지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는 기쁨입니다. 그렇게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스스로 확인해 가는 기쁨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사랑과 또 하나님을 향한 믿음 가운데서 자신의 속사람을 영광스럽고 온전하게 가꿔가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를 구하시고, 그 변화를 향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그 무엇으로도 얻을 수 없는 이런 하나님의 자녀됨의 특권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