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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9.13.새벽예배 -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창세기51)



창1501to06 -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창51).pdf



20130913D (#01).mp3.zip





  문 : 창세기 15장 01-06절



사람만큼 연약하고 사람만큼 복잡한 피조물이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연약함과 복잡함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사람을 정말 이해하기 힘들게 만들지만, 실은 그 사람이 사람인 이유는 바로 그 연약함과 복잡함이 만들어 내는 결점들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신앙만 생각해 보아도, 이론적으로 보면 어느 정도 성장한 믿음이라면 흔들리거나 커다란 퇴보없이 계속해서 성장해 가야 하는데 이게 때로는 그렇게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신앙에 있어서 엄청난 부침을 겪습니다. 물론 우리로서는 그 굴곡을 작게 하거나 없애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우리의 신앙역사속에는 직전과 직후가 달라도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일 때도 있고, 또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우리들인 것 같습니다. 


목숨을 건 용감하고 영웅적인 전투끝에 조카 롯을 구해주고 집으로 돌아온 아브람, 돌아오는 길에 소돔 왕 앞에서 한층 성숙한 믿음의 모습을 보였던 아브람은 이상하게 갑자기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사실 상황은 그럴 수 밖에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자기가 엘람 연합군을 공격했던 것은 마치 자신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 놓아서 자기 뒤를 좇아오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전쟁에서 돌아온 아브람은 갑자기 그런 현실이 인식되었고 갑자기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거지?”라고 생각하며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의아해 합니다. 그러나,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한 순간에 그 믿음을 거의 잃어버릴 위기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우리 안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좋을 때는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서 자신의 시간이나 물질을 내어 놓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조금 약해지면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새롭게 헌신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는 것은 물론 예전에 하나님 앞에서 당연하다고 여겨 스스로 했던 서원 조차도 지키지 못합니다. 어떤 때는 불 같은 믿음을 가졌다가도 어떤 때는 냉냉하고 차갑기 그지없는 신앙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두고 영적인 침체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영적 침체는 굉장히 큰 은혜를 받은 후에 찾아오기도 하고 굉장히 영웅적인 믿음의 행위를 한 후에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적인 침체, 믿음의 침체에 빠질 수 있습니다. 아브람도 커다란 믿음을 발휘한 후에 일종의 영적인 침체, 믿음의 침체에 빠졌습니다. 이제는 그런 마음을 먹게 하시고 또 그렇게 전쟁에서 승리하게 만들어 주셨던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개입되어 있는 상황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는 이제 믿음이 아니라 두려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두려움에 빠져 있는 아브람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두려움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이러한 두려움을 단 한 마디도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생각 같아선 “너의 믿음이 어디 갔느냐? 그 나라들을 칠 때의 용기는 다 어디 갔느냐? 너는 왜 그리 믿음이 없고 또 믿음이 잘 흔들리느냐?”라고 나무라실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아브람을 위로하고 또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전쟁을 통해 보여준 믿음의 담력에 하나님께서 합격점을 주셨고 또 인간이란 그런 엄청난 일을 겪으면 갑자기 영적인 침체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아브람의 방패가 되어 주시고, 직접 아브람의 상급이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전의 약속과는 차원이 다른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이 말씀에도 시큰둥합니다. 자녀도 한 명 없는데, 도데체 뭘 주시겠느냐고, 나에게 주셔봤자 종에게 물려줄 수 밖에 없을 텐데,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불만 섞인 넋두리를 늘어놓았습니다. 현실을 보기 시작한 아브람은 계속 현실만 보고 하나님의 약속도 크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현실에 빠졌을 때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현실에 함몰되면 현실이 가장 크게 여겨져서 그 현실의 주인이며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의 약속조차도 시큰둥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다시 한 번 약속을 명확하게 해 주셨습니다. 엘리에셀이 아니라 반드시 아브람이 낳은 자식이 아브람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보여주시면서 너의 자손이 이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일의 결과를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람이 이번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또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이 때에 와서야 아브람을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성경은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정확한 표현은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람에게 “믿었다”는 표현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브람은 비록 굴곡은 있었지만 지금까지 믿음이 성장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것들은 전혀 모르는 것처럼 이제서야 아브람이 처음 믿은 것처럼 믿음이라는 말을 아브람에게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구절이 성경 전체에서 얼마나 중요한 구절인지 잘 압니다. 바울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근거로 제시했던 구절이 바로 이 구절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우리 신앙에 있어서 결정적인 구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 속에서 이 구절을 이해하는 것이 오늘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6절을 그냥 보면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을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다는 내용만 보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말에도 빨갛다와 불그레하다라는 말의 뜻이 다르듯이 구약이 기록된 히브리어로 보면 ‘믿으니’라는 말은 단순히 믿는다는 말이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누구를 신뢰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의로 여겼다는 말은 어떤 기준에 도달했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아브람은 하나님을 확신을 가지고 신뢰했으며 아브람의 그런 믿음이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어떤 기준에 만족할만큼 도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는 그 기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믿음도 공로라고 생각되기 쉽지만 분명히 믿음에는 이런 측면이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어떤 기준에 부합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아브람의 믿음은 단순히 순간적인 믿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 동안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물론 그 동안 아브람의 믿음은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10년 동안이나 이루어지지 않고 게다가 그 약속의 성취의 열쇠가 되는 아들 하나 없는 상태에서 아브람은 그래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켜 왔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 아브람의 믿음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어느 순간엔가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굳은 믿음으로 살아가다가도 일순간에 의심투성이, 두려움투성이로 변할 수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순간에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께 또 다시 믿음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러셨듯이 부족하나마 우리의 신실함을 하나님께 보여드려야 합니다. 어느 순간에라도 부족한 우리들의 연약함을 도우셔서 다시 믿음으로 이끄실 때, 우리는 불신앙이 아니라 믿음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신앙의 여정 전체 속에 나타난 신실한 신뢰를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 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흔들리고 연약해지더라도 또 다시 믿음으로 나아오고 또 더 나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일을 그만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아브람의 믿음을 닮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는 참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