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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10.02.새벽예배 -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창세기 58)



창1715to27 -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창5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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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 창세기 17장 15-27절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것은 17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면서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바꿔 주셨고, 99세나 된 아브라함에게 다시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를 수많은 나라의 조상으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이것은 17장 15절에서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보인 아브라함의 반응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2장에서 처음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부터 믿음이 있었고, 15장 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겨주실만큼의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수차례 경험하면서 점점 믿음이 성장했고 또 든든한 믿음으로 세워져 갔습니다. 그렇지만 17장에서 자신이 99세가 되어 이제는 스스로 자녀를 낳을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예전과 똑같은 약속을 주시며 이름까지 바꿔 주셨을 때는 그는 엎드려 있었지만 속으로는 킥킥 대며 웃었고 속으로는 ‘하나님이 도대체 제 정신이신가 100살이나 된 내가 아들을 낳다니! 지나가던 소가 웃겠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별로 깊지 않거나 혹은 믿음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할 때에는 진짜 믿음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잘 모릅니다. 자신의 믿음이 아주 스무스하게 잘 성장해 가는 것처럼 느껴지죠. 그렇지만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직 진짜로 하나님을 믿으라는,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믿는 믿음을 가지라는 하나님의 도전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도전을 받으면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의 원래 크기가 이 정도였던가 하고 정말 말 그대로 하나님의 요구 앞에 압도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믿으려면 하나님의 그 거친 도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제서야 확실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하나님 답게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믿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나타나셔서 네가 자녀를 낳고 수많은 나라들의 조상이 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제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함께 묵상했습니다. 다시 한 번 설명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전능한 하나님이니 네가 나를 믿는다면 너는 나를 전능한 하나님으로 정말로 믿고 신뢰하고 살아가야 한다. 내가 너에게 그 어떤 황당하고 말도 안되는 약속을 하더라도 내가 그 약속을 이룰 것이라고 확신해야 한다.”라고 요구하신 것입니다. 이렇게만 말씀하시고 그 약속의 내용을 다시 말씀하시지 않으셨다면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훨씬 쉬웠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나의 상황과는 상관이 없는 그저 하나님께서 그런 분이시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약속의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하셨을 때, 정말 말도 안되는 코메디같은 하나님의 약속에 아브라함은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웃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교리를 믿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상황을 앞에 놓고서 그 교리의 내용을 정말로 인정하고 그 교리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심을 믿으시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선하게 인도하실 것을 믿으시죠? 그런데, 만약에 하루 아침에 우리가 하던 사업이 망하고 또 그것 때문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 때도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며, 우리의 삶을 선하게 인도하시는 분으로 신뢰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그렇게 하기가 굉장히 어려울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상황이 없을 때, 믿음에 대한 질문을 받고 거기에 대해서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막상 긍정적인 대답을 크게 방해하는 장애물을 눈 앞에 놓고서 믿음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그 때는 문제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아무리 하나님이시라고 하더라도 말도 안되는 말씀을 하실 때는 웃음 밖에 나오질 않기가 쉽습니다. 


피식 웃고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스마엘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새로운 아들에 대한 약속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말도 안되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말씀드린 것입니다. “에이. 하나님. 그런 농담마시구요. 그냥 그 약속을 이스마엘을 통해서나 이루어 주십시오.” 그런데, 아브라함의 요구에 하나님께서는 정색을 하시고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믿지 못하는 아브라함에게 태어날 아들의 이름까지 붙여주셨습니다. 이삭이라고, 웃음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태어나지도 않은 이삭과 언약을 맺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는 말도 안되는 일이었지만 하나님께는 하나님께서 이미 만들어 가고 계시는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웃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지만 하나님께는 이미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이루어 가시는 현실이었습니다. 성경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옛 언약과 새 언약, 그리고 이루어 주시겠다던 약속과 성취된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러한 두 종류의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움직여 가시는 역사란 바로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을 성취해 주시는 과정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만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뺀다면 성경은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약속의 하나님이며 또 약속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으로 믿지 못한다면 우리가 성경을 믿는다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야기가 되고 말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를 위한 약속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 약속들 중에는 우리의 구원에 대한 약속도 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약속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 현실적인 약속들은 실은 너무 현실적인 약속이기 때문에 믿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서 현실적인 약속이 아니라 현실과 완전히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약속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생각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믿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대표적인 약속 한 가지만 생각해 보면,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는 약속이 있습니다. 이 약속은 말 그대로 ‘현실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 우리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챙겨주신다는 약속이니까요. 그렇지만 그래서 믿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현실적인 약속들을 믿는 믿음까지를 포함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단호한 말씀을 남기시고서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돌아가서 자기 집에 있는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때로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우리 생각에 가능한 것만 믿고,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믿지 못하는 그런 부족한 믿음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참 믿음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설득되어야 하며 마음의 할례를 받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자리로 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록 우리 자신은 무능하지만 하나님 덕분에 모든 것이 가능한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진실로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신뢰함으로써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기적과 일하심을 볼 수 있는 복을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