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10.04.새벽예배 - 내 주요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창세기 59)


창1801to09 -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창59).pdf


20131004D (#01).mp3.zip




  문 : 창세기 18장 01-08절



신앙이 성장한다는 말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영적인 일에 대한 열정이 커져가고 뜨거워져 가는 것,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는 것, 믿음과 삶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 인격이 주님을 더 닮아가는 것, 마음이 넓어지고 생각이 성경의 교훈과 가까워지는 것 등. 정말 신앙이 성장해 간다는 말 속에는 수많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적인 분별력이 더 예민해지고 정확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런 분별력이 있어야 어떤 일을 바라 볼 때, 그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고, 어떤 일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분별력이야 말로 우리 삶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 분별력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래서 섭리를 섭리로 깨달으며 은혜를 은혜로 누리는 일을 현저하게 방해받을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본다면 이런 분별력의 부재가 가져오는 손해란 정말 어마어마할 수 있습니다. 가까이 계시고 찾아오시며 또 항상 일하시는 하나님을 놓치고서 아주 특별한 사건들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벤트성 신앙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날씨가 엄청나게 더운 날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마므레의 상수리 나무 아래에 앉아 더위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문득 먼 곳을 보게 되었는데, 그 더위에 그 흙먼지 날리는 길을 걸어서 세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아이구, 이 더위에 왠 나그네람. 힘들겠네.”하고 그냥 지나칠 수 있었지만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선 발로 손님들을 향해 달려 갔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을 영접하며 그들을 위해 가장 귀한 음식들을 만들어 대접했습니다. 손님들을 그 나무  아래에 앉히고는 급하게 집으로 달려가 사래에게는 떡을 굽게 하고, 요구르트와 우유를 준비하고, 하인에게는 당시로서는 최고급 요리인 송아지 요리를 만들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브라함은 마치 종처럼 그 세 사람이 충분히 식사를 할 때까지 그 옆에서 시중을 들며 기다렸습니다. 


흔히들 이 이야기는 아브라함이 지나가는 길손들을 대접했다가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과 천사들을 대접하고 또 하나님으로부터 뜻 밖의 계시를 듣게 되는 이야기로 읽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손님을 잘 대접하자는 결론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그 세 사람이 하나님과 천사들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알고서 대접한 것입니다. 2절에서 보여주는 아브라함의 지나치게 겸손해 보이는 태도나 그 셋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종처럼 시중을 들면서 서 있었다는 것도 그 증거이지만, 가장 확실한 증거는 3절입니다. 거기서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세 사람 앞에 서 있지만 이상하게도 아브라함은 ‘내 주님들이여!’이라고 하지 않고 ‘내 주여!’라고 한 사람만 주인이라고 부릅니다. 게다가 구약성경에서 ‘내 주여!’라는 부름말은 항상 하나님을 향해서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셋 중의 한 명이 바로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아보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자신을 ‘종’으로 표현합니다. 그냥 사람으로 생각했다면 지나가는 나그네들에게 이렇게까지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왜 제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알아보았다는 것을 이렇게 길게 설명드리는가 하면 때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하나님의 역사나 일하심이 우리들을 이런 식으로 찾아오기도 하는데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분별력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그들이 하나님과 천사들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영적인 감각이 없었다면 하나님과 천사들은 그냥 아브라함을 지나쳤을 것이고, 그 이후에 기록되어 있는 사라가 이삭을 낳을 것이라는 약속, 그리고 아담이 소돔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이야기는 기록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앙이란 어쩌면 우연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일하심을 알아차리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 드리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자신의 일상에 무딘 사람치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저 보여지는 모든 것들, 그저 경험되는 모든 일들 속에서도 여전히 움직여 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 있을 때만 하나님을 생각하고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신앙이 능력이 없고 생명이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만약 교회 안에 있을 때만 하나님을 생각하고 생활 속에서는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실제로는 대부분의 시간을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일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분별력은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래야 스쳐 지나치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제안을 받은 하나님과 천사들은 아브라함의 융숭한 대접을 그대로 받습니다. 이상할 것 없어 보이지만 이것은 굉장히 이상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천사들이 시람들이 먹는 음식을, 그것도 실제로 배부르게 먹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음식을 드실 필요가 있을까요? 또 드실 수 있을까요? 상식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을 만난 하나님께서는 기쁘고 흔쾌하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 모든 음식들을 맛있게, 그리고 배부르게 드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요? 왜 음식을 드실 필요도 없고, 어떻게 생각하면 드실 수도 없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을까요? 저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 좋아합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혼자로도 충분한 분이십니다. 이 세상을 만드신다거나, 우리들을 만드신다거나, 우리와 교제를 나누신다거나 혹은 죄를 지은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들을 보내신다거나, 또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셔야만 하는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선하신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것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연약함을 경험하여 아는 분이시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시니 굳이 인간이 되셔서 인간들의 연약함을 경험해 보아야만 우리의 아픔을 아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전혀 필요없는 행동을 하셨습니다. 저는 감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내가 너희를 안다”라고 하실 때, 우리가 그 말씀과 진리의 풍성하고 구체적인 은혜를 제대로 알게 하시려고 그러셨다고 말입니다. 


기쁘게 섬기는 아브라함 곁에 앉아 아브라함이 가져다 주는 이런 저런 음식을 아주 맛있게, 그리고 배부르게 드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을 지켜보는 아브라함의 표정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 교제야 말로 인간과 하나님이 나눌 수 있는 가장 친밀하고 온전한 교제가 아닐까요? 사실 음식은 우리에게는 아주 중요한 것이어도 하나님께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브라함과의 교제를 위한 가장 의미있는 매개체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섬김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섬김이 하나님께도 그렇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섬김과 헌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보다는 혼자서 일하시는 것이 훨씬 더 편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것은 부족한 섬김일지라도 그 섬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으로 섬기며 또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싶어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마련한 음식도 기쁘고 맛있게 드시는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일상 속에서 찾아오시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놓치지 마시고 항상 항상 이 좋은 은혜의 하나님, 그렇게 우리의 작은 섬김을 기쁘게 여기시는 하나님과 동행하시며 또 교제하시는 복되고 기쁜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