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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3.10.06.주일오전 -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마가복음 46)



막1013to16 -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마가46).pdf


20131006 SM (#01).mp3.zip




설교본문 : 마가복음 10장 13-16절



전에 섬기던 한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종종 있었던 일입니다. 교회가 작지 않다보니 교회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오고 또 그렇게 해서 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런 분들 중에서는 알콜에 중독이 되어서 외로움과 빈 마음으로 교회에 나오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이런 분들은 종종 술을 드시고서 예배실에 들어오시곤 했습니다. 그러면 부교역자들은 그런 분들을 밖으로 안내해서 옆에서 지켜보며 로비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물론 저희의 판단이 아니라 그렇게 하라는 지시에 따른 것이었지만 그렇게 할 때, 옳고 그름을 떠나서 참 마음이 좋지 않았던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예배실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공공장소이고 그래서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의 예배를 방해해서는 안되며, 또 다른 사람들의 예배를 방해할 권리가 없다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방지하려고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이 발생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진한 술냄새를 풍기는 것만으로도 다른 성도들이 충분히 힘들어 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누군가가 그런 분들 때문에 예배드리는 일에 실제로 큰 어려움을 겪은 것도 아닌데, 그런 식으로 어렵게 그것도 아픈 마음으로 찾아온 그런 분들에게 또다른 상처를 드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또 한 가지 참으로 혼란스러웠던 것은 과연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어떻게 바라보실지 그것에 대한 판단이 확실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술을 먹었다는 이유 만으로 예배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금하는 것을 기뻐하실까? 또 그런 사람들을 품지 못하는 속좁은 교회와 성도들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실까?’라는 질문이 생겨났는데, 솔직히 거기에 대해서 확실한 대답을 얻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 판단으로는 교회는 그런 분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또 성도들은 그런 분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오는 곳이고, 문제있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지 완전한 의인과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요.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또 그런 생각들도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튼 저는 그 때 그런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또 혼란스럽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그런 경우에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저 문으로 술에 잔뜩 취한 분이 걸어들어와 여기 한 중간에 앉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때로 당연히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되는 어떤 곳이나 혹은 어떤 사람들이 원래 가지고 있어야 할 모습과 가장 많이 다른 모습, 심지어는 정반대가 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런 사람들이 나오고,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들 때문에 굉장히 크게 화를 내셨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자녀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당시에는 랍비들이 회당에서 어린아이들을 안아주고 손을 얹어 축복해 주는 관습이 있어서, 사람들은 당시 훌륭한 랍비로 여겨졌던 예수님께 그것을 기대하면서 자기 자녀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렇게 하는 부모들을 꾸짖었고 또 아이들이 예수님께로 다가가는 것을 막아섰습니다. 제자들이 그러지 않아도 바쁘고 피곤한 예수님을 보호하려고 그렇게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크게 화를 내셨던 것을 보면 제자들이 그런 마음이 아니라 다른 좋지 못한 마음으로 그런 일을 했고, 예수님은 제자들의 그런 마음을 훤히 보고 계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제자들이 그렇게 했던 것은 이들이 아직 어린아이들 자체를 업신 여기는 그 당시의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자신들과 예수님으로 만들어진 가장 안쪽의 원에 어린아이들처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오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여기까지 들어와!’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따라다니며 예수님이 사시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또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자세하게 들었던 그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모르고, 예수님의 생각을 모른다니 말입니다. 그러나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 사람이고 그래서 제자들 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이럴 수 있는 위험성은 항상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생각을 헤아려서 거기에 우리들의 마음과 생각을 맞춰가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 노력과 과정이 없으면 우리는 몸은 예수님 곁에 있지만 마음과 생각은 예수님과 아주 멀리 떨어진 그런 상태로 남아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하늘나라를 전하러 오셨습니다. 그 분이 외치셨던 회개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였고, 그 분의 다른 가르침들은 하늘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알려주는 가르침들이었으며, 낮은 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사역은 사실 누가 하늘나라 백성이 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하늘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하늘나라를 이 세상의 나라들처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늘나라를 힘과 능력의 원리가 움직이는 나라, 그래서 그런 것들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는 나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이 전혀 없는 어린아이는 예수님 가까이로 오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이 그런 식으로 드러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의 행동에 예수님은 굉장히 크게 화를 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제자들은 하늘나라를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늘나라를 이 세상에서 능력있고 가치있으며, 또 일정한 자격이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그것과는 정반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니며 배우고 또 내가 했던 일들을 보아왔으면서도 아직도 그것 하나 모르고 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짧은 한 마디였지만 이 말씀 한 마디 속에는 그런 메세지와 안타까움과 책망이 모두 들어 있었습니다. 만약 제자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예수님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그들은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로 다가오는 것을 막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기뻐하며 아이들을 환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이런 자’는 분명히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늘나라가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나라가 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어린아이 같지 않은 사람들일까요? 바로 제자들같은 사람들, 하늘나라를 제자들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늘나라를 일정한 자격이나 조건을 만족시켜야 들어갈 수 있는 나라로, 아니면 자기들처럼 무언가 특권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그런 나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들이야 말로 하늘나라에 적합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정반대로 하나님 나라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순간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찟어졌던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휘장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몸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가로 막고 있던 마지막 장벽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그것이 찟어졌다는 것은 그 장벽을 하나님께서 스스로 허무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해서 누구에게나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또 하늘나라로 가는 문이 열렸던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은혜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 일을 위해서 해야할 일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늘나라는 그런 나라입니다. 아무도 열 수 없었던 문을 하나님께서 직접 은혜로 열어놓으시고 진실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들어가게 해 놓으신 은혜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일에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도, 그리고 해야하는 일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문을 여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지금 그 나라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사람들에게 주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렇게 은혜로 열려지고 있는 하늘나라의 문 앞에 다시 벽을 쌓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자격과 조건을 가져다 놓고서 그것을 넘을 수 있는 사람들만 그리고 들여보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틀린 사람들이 힘을 얻으면 언제나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일반 사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리더십을 가진 사람들이 올바른 생각과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 못한 채로 교회를 움직이려고 하고 있으니 그렇게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몸살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리더들이나 리더가 되어야 할 사람, 특히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상식과 자기 생각만으로 안됩니다. 최소한 하나님 나라와 교회, 그리고 신앙에 대한 성경적으로 바른 사고방식과 가치관으로 자신을 먼저 무장시켜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배우고 또 공부해야 하며, 그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배가 산으로 가지 않습니다. 그 배에 탄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힘들어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하늘나라를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나라로 만들려고 하는 제자들을 향해 화를 내셨습니다. 그 온유하신 분이 화를 내셨다는 것은 이 일이 그만큼 중대한 잘못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들을 막아서는 제자들을 향해서 “착각하지 말아라. 하늘나라의 백성은 너희들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니라 저런 어린아이들이다. 저런 어린아이같은 사람들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지 받들지 아니하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러분이 성경을 보실 때,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이 나오면 이 말이 굉장히 중요한 말이라는 것을 먼저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 말은 원래 ‘아멘 아멘’이라는 말인데, 이 말 속에는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이 틀림없이 그렇다는 의미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직접 이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보장하신다는 의미도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이 붙어있는 말을 읽을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고 특히 그 말씀은 절대로 놓쳐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 빨간 줄을 두 줄 그어주신 말씀이라고 생각하고서 우리는 거기에 별표와 동그라미까지 쳐 놓아야 합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고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저 위에 있는 나라이건 아니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의미하건 간에 아무튼 예수믿는다는 사람들은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어야 하고 꼭 그 나라에 들어가야 합니다. 뭐니 뭐니해도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하늘나라의 참 백성이 되어야 하겠죠? 그리고 그 나라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겠죠? 그러니 오늘 주님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까? 우리가 얼마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제대로 이해하고 또 받아들이며 순종해야 할 말씀입니까? 


주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말로 ‘받들지’라고 번역되어 있는 말은 왜 그렇게 번역했는지 모르지만 오역입니다. 원래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에는 그런 의미가 전혀 없습니다. 그저 ‘받다’라는 뜻 밖에 없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받들지’라는 말은 ‘받지’라고 번역해야 정확한 번역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인데, 그 이유는 하늘나라는 어린아이들이 하늘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렇게 하늘나라를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나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열려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늘나라가 누군가에게 닫혀 있는 이유는 사실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그 문을 닫으신다기 보다는 그 사람 스스로가 그 나라의 문을 닫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는 은혜로 열려진 나라이며, 그래서 은혜로만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거기 들어가는 티켓이 너무나 값싸서 은혜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그 누구도 자기 힘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은혜로 열려진 나라입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이런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굳이 자기 힘으로 정당한 값을 치른 다음에 들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이런 사람이 과연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들어갈 수 없겠습니까?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힘으로 치를 수 없는 값을 치르겠다고 고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태도가 상당히 괜챦은 태도같지만 실은 성경은 이것을 일컬어 교만이라고 부릅니다. 은혜로만 되는 일을 자꾸 자기의 의와 능력으로 하려고 하고, 은혜에 무언가를 덧붙여야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는 태도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슨 일을 한들, 또 무슨 조건을 갖춘들 그것은 은혜를 받은 이후의 일입니다. 그런 것들은 절대로 은혜의 이유가 되지 않고, 은혜받기 위한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전혀 남에게 자랑하거나 또는 남 앞에 내세울 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나와 다른 사람을 가르고 나눌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어린아이란 단순히 어른과 대비되는 나이가 적은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가진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고, 의지할 것도 부족해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기 쉬운 그런 사람을 말합니다. 당시에는 그런 사람들의 대표격이 되는 것이 바로 어린아이였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눈 앞에서 어린아이들을 쫓아내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은 어린아이를 예로 들어주신 것입니다. 만약 이런 의미에서의 ‘어린아이같은’ 사람들에게 하늘나라를 이야기 해준다면, 다른 것 필요없이 은혜로 들어가는 나라를 소개해 주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하늘나라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전폭적으로 수용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내세울 것이 없고, 의지할 것이 없기 때문에 은혜로 주어지는 하늘나라를 통째로 허겁지겁 받아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이런 식으로 기뻐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만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의지할 것이 있고,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아얘 하늘나라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뜻일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지금 있는 것을 다 내려놓고 포기하고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는 상태가 되어야 할까요? 그래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래야 한다면 그것 또한 우리의 의가 되고 또 하나의 율법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나라는 은혜의 나라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일이 의지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유리한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왜 가난하고 내세울 것 없고, 의지할 것 없는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일에 더 유리할까요? 그것은 그들의 현실적인 ‘비어있음’이 그들의 마음을 비게하고 가난하게 만들어서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찾고, 목 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그렇게 하늘나라를 온전하게 소망하게 하고 또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가진 것이 있고, 의지할 것이 있으며, 내세울 것이 있다는 것 자체는 하늘나라를 위한 불리한 조건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의지하게 만들 때,  하늘보다 땅을 더 사랑하게 만들 때, 그래서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사라지게 만들 때, 그 때 그런 것들은 비로소 불리한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진 것이 많아도, 기댈 구석이 있어도, 또 내세울 것이 있어도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에만 기댈 수 있는 가난한 마음만 있다면, 하늘나라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일만큼 비어있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이런 것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전혀 불리한 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가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때,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과 간절함,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는 마음이 적어진다면, 그것은 아직은 하늘나라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가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나라라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는 은혜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은혜로만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이고, 은혜에 의지하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잊지 않고 붙들고 있다면 우리는 항상 은혜에 배고파 할 것입니다. 항상 자기 자신이나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만 의지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 될 것이고, 우리의 태도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저 은혜로 그 나라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 앞에서 정말 어린아이처럼 기뻐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의 은혜됨을 잊어버릴 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를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갖춘 사람으로 생각하며, 그렇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 담을 쌓을 수가 있습니다. 그들을 정죄하고 무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자신을 하나님 나라와 점점 더 상관이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 앞에 은혜로 열려진 하늘나라의 문을 스스로 닫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늘나라는 은혜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에는 그 은혜에 토를 달지 않는 사람들, 그저 그 은혜에 철저히 의지할 수 있는 무자격자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어린아이들을 안고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하늘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이 그 분의 백성들을 위해 그렇게 복을 빌어주셨던 것입니다. 왕이 그렇게 하셨으니 백성된 우리들 또한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 또한 어린아이들을 안고서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를 닮은 교회는 항상 작은 자들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처럼 그 누구도 존중해 주지 않고 귀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 열려 있어야 합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 문을 닫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의 백성들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의지할 것 없는 어린아이라는 것과 어린아이를 닮은 마음으로 사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나라는 은혜로만 들어가는 나라라는 것을 잊지 말고 눈에 보이는 것을 자랑하며 내세우려는 욕망을 다스리며 하나님의 은혜에만 의지해서 살아가는 빈 마음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소유도, 능력도 모든 것이 다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서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그 점에서는 모두가 어린아이들입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린아이가 모든 것을 아버지에게만 의존하듯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에만 의지하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늘나라의 왕되신 예수님께서 품에 안으시고 축복해 주시는 그 분의 나라의 백성으로 참된 은혜 가운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항상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에만 의지해서 살게 하시는 낮지만 가장 높은 은혜를 허락해 주셔서, 마지막 날 우리를 바라보시며 ‘하늘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시는 영광을 누리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ㅌ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