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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10.15.새벽예배 -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창세기 64)


창1915to22 -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창64).pdf


20131015D (#01).mp3.zip




  문 : 창세기 19장 15-22절


‘상황판단이 안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그리고 지금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어떤지를 잘 모를 때, 사람은 누구나 상황판단을 제대로 내리지 못합니다. 요즘 저는 한국교회를 보면서 자주 자주 이 말을 떠올리게 되곤 합니다. 매년 수십만명씩 개신교 인구가 줄고 있다고 하는데, 내부적으로 계속 갈등하며 자기 몫 챙기기에 정신이 없는 교계 지도자들, 그리고 엄청난 잘못을 하면서도 잘못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는 교회 지도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 때가 어느 땐데...’라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게 됩니다. 가장 위험한 영적인 질병이 무감각함인데, 이미 한국교회는 이 질병의 병세가 상당히 심각해 진 것이 분명합니다. 현재 한국기독교의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교회 밖의 사람들이 교회의 위기에 대해서  느끼는 위기감이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우리를 향해 우려의 눈길을 보내며 교회가 이래서는 안된다고 말하는데, 정작 교회 안에 있는 우리들은 그것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다 옳고 그래서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럴 수도 없구요. 그렇지만 그들이 우리를 향해서 이야기하는 것 중에서 입이 몇개가 있어도 변명하거나 합리화할 수 없는 것들을 굉장히 많습니다. 사실 우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들이 다 안다면, 아얘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의 무관심의 대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별로 심각하지 않으니 이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롯은 천사들의 전해 준 소돔과 고모라 소식을 듣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렸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 중에는 롯의 사위가 될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들은 롯의 이야기를 그저 농담으로만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롯도 어쩔 수가 없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동이 텄습니다. 이 날 떠오른 태양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날의 시작을 알리는 희망의 태양이었지만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태양이고 다시는 보지 못할 태양이었습니다. 이제 곧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고 그래서 날이 밝자마자 천사들은 롯을 재촉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롯이 어떻게 해야할까요? 당연히 허겁지겁 일어나 자고 있는 가족들을 깨워서 성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이미 그렇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또 스스로도 사위가 될 사람들에게 경고까지 한 마당이니까요. 


그런데 성경은 롯의 반응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롯이 천사들의 재촉에 대해서 뭉기적 거리는 것으로 반응을 하다니 말입니다. 참 앞 뒤가 맞지 않지 않습니까? 뭔가 잘못된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실은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습이 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대대로 기독교는 이 세상의 죄에 대해 수없이 소리를 높이고 심판을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거의 매번 깨닫지 못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죄와 그 죄로 인한 자신들의 영적인 위기입니다. 남의 목 앞의 칼날은 보면서도 자기 목에 닿아있는 칼날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향해서는 죄를 지적하고 긴급한 경고를  쏟아내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태평하기만 했습니다. 롯 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롯과 롯의 아내와 딸들의 손을 잡아서 정말로 끌어내듯이 소돔 성 밖으로 끌어 냈습니다. 그것은 정말 하나님께서 롯의 가족들에게 베풀어 주신 자비였고 긍휼이었습니다. 이것은 물론 현실적인 위험으로부터의 구원이기는 했지만 롯과 롯의 가족들은 자신들의 의지나 결단과는 상관없이 구원을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모든 사람들의 구원이 다 롯의 구원과 똑같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스스로의 의지로 구원받기를 원했고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이 세상 누가 스스로 그런 선택과 결단을 내렸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저 구원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없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시고 또 믿음을 주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리를 향한 은혜와 긍휼로 여기까지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롯의 구원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억지로 롯의 가족들을 소돔성 밖으로 피신시킨 천사들은 롯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이 말 속에는 천사들이 롯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가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돌아보지 말라고 합니다. 들에 머물지 말라고 합니다, 그냥 산으로 도망치는 일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경고하지 않으면 롯은 분명히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거나 하다가 멸망을 자초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렇게 긴급한 상황 속에서도 롯은 천사들의 말에 이렇게 토를 답니다.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데 이런 장황한 제안을 합니까? 겉으로 보면 핑계가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천사가 산으로 도망치라고 했는데, 중간에 혹은 산에서 재앙을 만날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더 가까운 들에 있는 성읍으로 가겠다고 하고 있는데, 더 먼 산으로 도망하는 것은 더 위험하고 소돔에 가까이 붙어있는 그 성읍은 안전하다고 할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그 성이 작기 때문에 자기 생명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니 이것 또한 앞뒤가 맞지가 않는 이야기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이것은 실은 이런 이야기입니다. 내가 저 작은 성읍으로 도망칠테니 그 성읍은 이번 심판에서 면제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산이 아니라 계속해서 들판에 있는 성읍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 와서야 왜 롯이 소돔성에서 뭉기적 거렸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 그가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여유를 부렸는지 말입니다. 롯은 ‘성읍’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요단들에 있는 죄로 가득찬 성읍들이 주는 즐거움과 편리함, 그리고 화려함에 온통 마음이 빼앗겨 있었던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중독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자극적인 모든 것, 그리고 매력적인 모든 것들은 중독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중독이 마찬가지이지만 이런 것들에 중독되면 그것이 최고가 되고 그것이 전부가 됩니다. 그러면 심지어는 그것을 얻고 누리기 위해서 모든 것을 걸게 됩니다. 마치 불로 뛰어드는 여름날의 날벌래들처럼 말입니다. 


성경은 성도들을 일컬어서 항상 이 세상의 ‘나그네’며 ‘임시 거주자’이라고 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모든 결론을 보아야 하는 사람처럼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나그네는 아무 좋은 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다음날이면 또다시 목적지를 향해 여행을 계속해 갑니다. 임시거주자들은 자기가 지금 머무는 집이 아무리 좋아도 그 집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그 주인이 ‘방 빼!’라고 말하면 두말 없이 그 집을 떠나야 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롯의 실패는 그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에 도달할 수 밖에 없었던 결론입니다. 그는 나그네이면서 임시 거주자이면서 마치 이 세상을 자기 집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 집을 포기하지 못해서 일촉즉발의 위기 앞에서도 그렇게 고집을 부리며 작은 성읍이라도 다시 집으로 삼아서 살아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이 우리의 여행지이며 또 임시거주지인 줄 알지 못하면 우리들 또한 롯처럼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영적으로 얼마나 급한 상황인지도 알지 못하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리면 자신을 커다란 영적인 위기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롯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을 여행하는 순례자들입니다. 항상 그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고 이 세상을 읽으며 분별력있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