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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10.16.새벽예배 -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창세기 65)



창1923to29 -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창65).pdf


20131016D (#01).mp3.zip




  문 : 창세기 19장 23-29절


머뭇거림, 미련, 집착... 이것이 무언가에 붙잡혀 버린 사람들이 보이는 공통적인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사람들이 중요한 시기를 놓치게 만들어서 그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며 낭패를 보게 만듭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 중에서 이런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좋은 것이든지 나쁜 것이든지 말입니다. 결국 우리를 사로잡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빼앗고 그래서 우리가 정상적인 판단과 결단을 내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그 무엇이라도 과도하게 우리를 사로잡지 못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를 사로잡아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예수님이시고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 나라입니다. 물론 이 두 가지에 사로 잡히는 일도 건전하게 그렇게 해야하지만, 건전하기만 하다면 이 두 가지에 사로잡히는 일은 과도할수록 좋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믿음 안에서의 참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이 땅 위에서도 아름답고 의미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롯은 요단들, 정확하게는 요단들의 성읍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 성읍이 누리게 해 주었던 부와 명예는 그가 땅에 묶여 있으면서 그 땅 사람들을 닮아가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천사들을 맞아들일 때 보인 모습과 이제 소돔성의 멸망 앞에서 보인 머뭇거림과 집착은 그러한 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있는 그대로만 한다면 롯은 소돔성과 똑같은 운명을 맞이해야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끝까지 은혜를 베푸셨고 그래서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뭉기적 거리는 롯의 가족을 억지로 성 밖으로 이끌어 내셨고 말도 안되는 요청까지 받아들이시면서 롯을 멸망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롯이 소알성으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심판을 행하셨고, 소돔과 고모라 성 사이의 모든 것들을 불과 유황비로 완전히 뒤집어 엎으셨지만 소알성만큼은 손을 대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그 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이렇게 증거해 줍니다.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사람과 성읍만 멸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소알을 제외한 소돔과 고모라 사이의 모든 성읍과 들과 심지어는 그 들에난 풀들까지 모두 엎어버리셨습니다. 원래 롯은 요단들의 푸르름에 이끌려서 요단들로 왔고,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만을 쫓다가 소돔에 들어갔으며 그래서 그의 인생은 전쟁과 심판으로 얼룩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런 것들을 택하면 그런 것들이 주는 유익을 영원히, 적어도 평생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모든 것들을 불로 없애버리십니다. 그 들판의 푸르름과 풍요로움, 그리고 성읍들의 견고함과 화려함을 모두 사라지게 만드십니다. 이것은 물론 그 땅과 성읍에 사는 사람들의 죄에 대한 심판이었지만 롯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사건은 그에게 눈에 보이는 것들을 붙들고 거기 기대서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 또 두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해 주는 사건이 되었을 것입니다. 


인간이 세우고 지키고 또 그것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그래도 건재하고 또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그것 자체가 영원하고 믿을만하며 그래서 그것에 기대어 살아가도 안전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 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대시면 그 풍요로움과 화려함, 그리고 든든함도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영원히 의지하며 살아갈만큼 충분히 든든하지 못하다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롯의 가족이 구출을 받는 도중에 아주 슬픈 일 하나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으로 변해버린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본인에게도 비극이었지만 다른 가족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극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소금기둥으로 변해버린 아내와 어머니를 그냥 내버려 둔 채로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그냥 피난을 가야 했으니까요. 하나님께서 롯과 롯의 가족들을 구하시기로 작정하시고 롯이 뭉기적거리는 것과 또 그가 하는 말도 안되는 요구까지 들어주시면서 그 가족을 구원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롯의 아내를 소금기둥으로 만드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해하기가 힘든 일이죠.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순종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은혜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고, 끝까지 인내하시면서 은혜를 거두지 않으셨지만 처음 천사를 통해서 전달하셨던 금지사항을 어겼을 때는, 그 어긴 사람을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그 경고의 말씀을 무시한데 대한 형벌을 면제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구원의 기회는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그 기회를 무시하고 불순종한 사람까지 구원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모세가 놋으로 만든 불뱀을 들었던 일을 기억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으로 다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높이들린 놋뱀을 바라보면 살려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극악한 죄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무튼 쳐다본 사람은 고침을 받고 살게 되었지만, 무슨 이유로건 그 놋뱀을 쳐다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십자가라고 그렇지 않을까요?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는 아무에게나 구원을 주지 않습니다. 그 십자가를 구원의 도로 받아들이며 바라보는 사람들, 놋뱀을 바라보듯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줍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십자가를 그렇게 바라보는 것이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덧붙여 놓으신 요구조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순종은 모두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좋은 것의 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불순종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좋은 것들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며, 나아가서 하나님의 징계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불순종은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나쁜 것을 택하지 말고 좋은 것을 택하라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충고입니다. 항상 순종을 향해 방향을 잡으셔서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에게 허락하시는 좋은 것들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멀찍이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자기가 위험해 질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그 성읍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는데 결국 그 성읍들이 불에 타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아브라함과 같은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그러니까 이 세상을 위한 복으로 부름받은 사람들로써 항상 이 세상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간에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그러한 노력이 항상 응답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때로는 아침부터 그렇게 기도하며 애썼던 곳으로 부터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아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역할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멸망해야 마땅한 땅이라고 해도, 또 망해버려야 할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끝까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죄인들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시고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마땅한 마음이며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이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비록 그의 기도가 그 성읍 전체를 구하지는 못했지만 롯과 그의 가족들은 구할 수 있었습니다. 29절은 그것을 이렇게 말해줍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롯은 롯 자신의 의로움으로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보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의 역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누군가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 때문에 누군가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신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위한 복으로 부름받은 우리의 소명을 이루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항상 이 세상과 그 안의 사람들을 위한 복으로 부름받았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은혜를 베푸시도록 잊지 말고 기도하시며, 그들을 향한 선한 마음을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누군가가 나 때문에 믿음의 길로 오게 될 것이고, 누군가가 죄악의 길에서 돌이킬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런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일에 사용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