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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10.23. 새벽예배 -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니(창세기 69)



창2014to18 -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니(창69).pdf


20131023 (#01).mp3.zip




본   문 : 창세기 20장 14-18절


이제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속인 사건의 결론 부분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이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일을 자신이 죄를 저지른 후가 아니라 좋은 상황 속에서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분명히 이 상황 속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식이어서는 절대로 빛이 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도 그렇게 하나님께도 그렇고 전혀 영광스럽지 못한 일이 됩니다. 우리가 가만히 살펴보면 이 사건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히 아브라함이지만 오히려 아브라함보다 아비멜렉의 태도가 훨씬 더 바람직합니다. 


아브라함은 거짓을 지어냈고  거짓말로 아비멜렉을 속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방인이었던 아비멜렉은 오히려 아주 정당하게 사라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그 일에 대한 자신의 의로움과 무고함을 항변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실 정도로 그에게는 적어도 그 일에 관한 한 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왜 자신에게 이런 짓을 했느냐고 묻는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자시을 합리화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계속해서 아브라함을 선하게 대했습니다. 많은 가축을 아브라함에게 선물로 주었고, 아브라함과 그의 식솔들이 거할 충분한 장소도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비멜렉은 왕으로서의 자신의 위신을 망가뜨릴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공개적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은 1000세겔을 사라에게 주면서 사라가 자신과의 사이에 아무런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함으로써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라의 명예까지 회복시켜 준 후에 집으로 되돌려 보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아브라함이 끝내도록 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니라 아비멜렉과 그의 집안사람들에게 벌을 내리시고, 아비멜렉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그를 위해서 기도하게 하심으로써 그 일이 모두 마무리되게 하셨습니다. 


사실 이 일이 이렇게 마무리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할 것은 하나님께서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지 않으셨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먼저 아브라함은 그 일이 별로 큰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넘어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라는 결국 버젓이 남편이 있는 여인이며서도 아비멜렉과 결혼을 한 여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과정에서 이삭의 탄생에 관한 약속은 좌절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일에 이런 식으로 개입하셨기 때문에 결국 모두가 다 유익할 수 있었습니다. 아비멜렉은 하나님이라는 분을 알 수 있게 되었고, 죄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사라는 정말 부도덕한 죄를 저지르기 일보직전에 멈춰설 수 있었고, 아브라함 또한 마찬가지 였습니다. 게다가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집을 위해서 기도해서 그 집안이 망하지 않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아브라함은 이 과정에서 스스로가 굉장히 부끄러웠을 것이고 기도로 아비멜렉 집안의 닫힌 태를 열었을 때는 이 세상을 위한 복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다시 한 번 절감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하나님이 자신을 얼마나 이해할 수 없는 은혜로 대하고 계시는지를 배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태도를 이리저리 너무도 쉽게 빠꾸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오래참고 기다리십니다. 아브라함이 정말 아브라함이라는 이름답게 큰 사람이 될 때까지, 자신이 이 세상을 위한 복으로 부르심 받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배우고, 그 부르심에 자신을 맞추어 갈 때까지 계속 기다리시고 또 그 부르심에 맞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서 말입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행동한 것만을 기준으로 그에 걸맞는 대우만 하신다면 하나님은 아브라함보다는 아비멜렉을 더 귀하게 여기셨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반대로 행동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시는 것이 모두를 유익하게 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상황 속에서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 것은 아브라함을 아브라함답게 만드는 일, 그에게 세상의 복으로 살아가는 일을 가르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상황 속에 놓여집니다.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 속에 놓여집니다. 그렇다면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은 무엇일까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게 가장 큰 목적이고 그 일에 있어서는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이것과 더불어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 속에 있는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들, 그러니까 우리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십니다. 우리가 그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으로 완성되어져 가는 것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의 상식을 깨는 방식으로 움직이십니다. 나무라셔야 하는데 더 선하게 대해주실 때도 있고, 또 그런 우리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기시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변함없는 은혜 가운데 놓아두십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 보면서 “나의 나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는데, 우리 모두도 이런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혜, 때로는 인간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이 풍성하고 오래참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계속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져 갈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또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으로 다듬어져 가도록 필요한 모든 일들을 행하십니다. 때로는 내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때라도 그렇게 일하십니다. 아브라함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악한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서도 계속해서 그 일을 진행해 가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든 우리가 이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훨씬 더 빨리, 그리고 훨씬 더 아름답게 변화되어져 갈 것입니다. 우리 안에 두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면서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두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을 잊지 않고, 그것이 우리의 소원과 목적이 되게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그 뜻을 영광스럽게 이루어가며 이 세상의 복다운 복으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뜻을 이루어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