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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10.31. 새벽예배 -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세기 74)


창2201to04 -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7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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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창세기 22장 01-04절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성경이 시험이라는 단어를 써서 표현하는 것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시험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처럼 우리 신앙의 현주소를 알아보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테스트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유혹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넘어뜨릴 목적으로 주어지는 시험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시험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꼭 기억해야 할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테스트 하시기는 하지만 절대로 유혹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시험과 유혹은 한 가지 일을 통해서 동시에 우리를 찾아옵니다. 똑같은 일로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고 사탄은 그것을 악용해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 삶을 찾아오는 일들은 그것이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모두가 다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에 맞는 반응을 보이면 그것은 우리 신앙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뜻에 거스르는 반응을 하면 그것은 우리를 영적으로 실패하게 만들고 우리 삶에 악한 것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시험에 대해서 생각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시험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다 아시면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다 아시면서 시험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믿음을 스스로 확인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학교 시험하고 똑같습니다. 학교 시험도 선생님을 위해서 치르지 않습니다. 학생 스스로가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고 또 무엇은 모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치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의 결과는 우리의 미래를 위한 재료가 됩니다. 믿음의 시험을 잘 통과하면 스스로도 자신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고, 또 그 일을 통해서 믿음의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만약에 시험에 실패했다고 해도 거기서 주저앉을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할 것은 회개해야 하겠지만, 그 실패는 마치 좋지 않게 나온 시험 점수처럼 우리를 절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기 자신의 영적인 현주소를 냉정하게 판단하고 다시 한 번 영적으로 분발해서 믿음을 더 온전하게 만드는 계시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록 하나님의 뜻에 맞는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거기 묶이지 않고 오히려 더 나은 믿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시험은 시험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것이 시험에 대해서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사항입니다. 내가 욕심과 순간적인 욕망 때문에 유혹을 당해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시험은 시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 번 틀린 문제 다시 틀리지 않으면 되는 것처럼 신앙의 시험도 한 번 실패한 후에 다시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 실패의 횟수를 줄여나가면 됩니다. 그 실패를 발판 삼아서 더 나은 신앙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어떻게 보면 아브라함의 인생은 커다란 믿음의 시험의 연속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지금까지의 내용만 보면 아브라함은 거의 모든 시험 앞에서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더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다듬어져 가고 성장해 갔습니다. 성경을 기준으로 하면, 아브라함은 창세기 20장까지는 비록 그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지만 항상 불안하고 온전치 못한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1장부터 우리가 만나게 되는 아브라함은 그 이전과는 굉장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낸 일, 그리고 아비멜렉과 조약을 맺으면서 아브라함이 보여주는 것은 그 이전과는 굉장히 많이 달라진 담대하고 너그러운 믿음의 조상의 면모입니다. 그러나 어찌보면 아브라함에게는 마지막 시험이 남아 있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그것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시험이심을 잘 몰랐지만 말입니다. 


적어도 10년이 넘게 가만히 계시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찾아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게 무슨 청천벽력같은 요구입니까? 정말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100세가 되어서 얻은 아들, 그것도 이제 조금 사람 노릇할 정도로 키워 놨더니 겨우 하신다는 말씀이 자신이 말해주는 산으로 가서 그를 번제로 바치라니 아무리 하나님이시라도 그렇지 이게 말이 됩니까?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 그냥 이삭이라고 하시면 못 알아듣습니까? 굳이 ‘네 아들 사랑하는 독자’라고 구구절절히 말씀해 주시고 상기시켜 주실 필요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도 그렇지만 표현도 정말 잔인하기 그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요구 자체 뿐만 아니라 그 표현으로도 아브라함을 시험하고 계신 것입니다. 

시험이라는 것, 특히 어려운 시험은 항상 이것과 닮아 있습니다. 한 가지의 단순한 시험이 아니라, 그 시험 속에 또 다른 시험이 포함되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상황은 자체로도 힘들어 죽을 지경입니다. 그런데 위로한답시고 찾아온 사람은 오히려 마음을 뒤집어 놓습니다. 더 큰 상처만 주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중요한 시험이 가지는 특징입니다. 엎친데 덮친다고 그런 모양으로 우리를 찾아올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그런 말씀에 아니, 이게 말이 되느냐고,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이렇게 빼앗아 가다니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지지 않습니다. 토하나 달지 않습니다. 그저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종과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까지 챙겨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일러주신 모리아 땅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요? 물론 아버지로서 그 여행이 마음 편하기만한 그런 여행이 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저 묵묵히 하라는 대로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자신의 아들 자신이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3일길을 걸어서 여행합니다. 


이것도 가혹한 것입니다. 그냥 내일 아침 당장 너희 집 근처 뒷동산에서 너희 둘만 올라가서 제물로 바치라고 해도 되지 않습니까? 왜 굳이 사흘길이나 되는 거리를 제물로 바쳐야 할 아들과 함께 걸어가게 하셨을까요? 정말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은 참 얄궂은 분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중요한 시험의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시험은 믿음을 달아보는 것이며 믿음은 인내를 통해서만 증명됩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중요한 시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사흘간의 시간은 스스로의 의지로 이전의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시간으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순간적인 믿음 뿐만 아니라 인내까지도 증명해 보이도록 말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시험의 정답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 안에서 내린 결정을 그 고통스러운 사흘 동안 번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장소가 저 멀리 내다보이는 곳까지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그 시험이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그 시험을 치러내야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더욱 더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시험이 우리의 참 믿음을 이끌어 내고 또 인내로 그 믿음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그런 모양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때로 그런 시험들 앞에서 힘겹고 견디기 어려워 질 때, 그렇기 때문에 그 시험이 더 중요한 시험이라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시험은 그 누구도 아닌 결국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시는 것임을 생각하시고 또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우리에게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아직 없을지라도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시험을 통해 얻게되는 이런 교훈들은 우리가 그 시험을 이기고 통과하는데 커다란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시험은 항상 우리를 흔드는 역할을 하게 되어 있지만 시험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확신이 계속 흔들리게 놓아두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시험은 언제든지 사탄의 유혹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아니라 불신앙의 재료로 돌변해 버릴 수 있습니다. 


크고 작은 시험 속에 빠질 때, 그 때는 시험을 보지 마시고 그 시험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모든 믿음의 시험을 더 큰 믿음으로 넉넉히 통과해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