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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3.11.01. 금요기도회 -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사도행전 36)



행0709to16 -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사도행전3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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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 7장 09-16절


사람이 가지는 가장 큰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생각할 때, 그저 자기 한 사람만 생각한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개인적인 일로, 나쁜 일이 있어도 개인적인 일로 생각합니다. 행복도 개인적인 것이고 불행도 개인적인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의 삶이 한 사람에게 제공하는 경험은 일차적으로는 개인적입니다. 부모도, 혹은 부부도 개인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에 집착하게 되고, 또 우리 자신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 대한 이런 시각이 바로 우리의 삶을 불안정하게 하고 쉽게 흔들리게 만드는 주범입니다. 너무 쉽게 기뻐하다가 또 너무 쉽게 낙심하고 오늘은 천국에 사는 것같지만 내일은 지옥에 사는 것같은 그런 삶을 살게 되는 커다란 원인이 우리 삶을 그저 개인적인 일로만 바라보는 시각 때문이죠. 이런 시각에 붙들려 있는 것은 성도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는데 항상 자기 인생을 자기 손에 붙들고 살아가려고 하고, 또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처럼 휘청거리며 불평하며 또 쉽게 낙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살아가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서 하나님께서 감당하고 계시는 결정적인 역할을 인정하며 또 자기 개인의 인생이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역사의 일부분이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인생을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역사를 위한 재료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큰 시각에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기 때문에 자기 인생에 찾아오는 하나 하나의 사건에 대한 반응을 다르게 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자신의 인생을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절수로 하면 9절부터 16절까지 여덟 절 밖에 안되지만 이 속에는 창세기 37장에서 50장 까지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져 있습니다. 요약하면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야곱이 죽어 장사 되는 장면 까지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래도 순조롭게 진행되어져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고 이삭이 태어났으며 이삭에게서 태어난 야곱은 이스라엘의 열 두 조상을 낳았으니까요. 드디어 약속의 땅에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나라가 세워져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밝은 역사 속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요셉이 다른 형제들의 시기 때문에 애굽으로 팔려가게 된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오늘 본문의 이야기 속에는 요셉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야곱 가족의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먼저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가 종이 됩니다. 잠시 사랑을 받는 듯했지만 이내 모함을 받아서 옥에 갇히게 됩니다. 다행히 거기서 만난 왕의 신하의 꿈을 해석해 주고는 풀려날 것을 기대했지만 옥에서 나간 신하가 요셉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요셉은 소망 없는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건져 올리시고 그에게 놀라운 지혜를 주셔서 그는 졸지에 잊혀진 죄수에서 한 나라의 국무총리가 됩니다. 국무총리가 된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사용해서 앞으로 닥쳐올 긴 흉년을 준비하게 됩니다. 이것이 한 쪽에서 진행되었던 요셉 개인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이야기는 야곱 가정 전체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드디어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심한 흉년에 야곱 가정에는 식량이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들어보니 애굽에는 양식이 있다고 합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식량을 구하러 애굽으로 향합니다. 형제들을 알아본 요셉은 형제들에게 자신들의 죄를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세 번씩이나 형제들을 다시 애굽으로 불러들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드디어 자신이 요셉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형제들과 화해합니다. 그렇게 해서 야곱을 비롯한 75명의 가족은 애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야곱과 자녀들은 애굽에서 모두 죽게 되고 아브라함이 하몰에게서 산 무덤에 장사됩니다. 


요셉의 교만, 형제들의 질투, 요셉의 투옥과 잊혀짐, 바로의 꿈, 요셉이 총리가 된 일, 가나안 지역과 온 애굽을 휩쓴 긴 흉년, 그리고 야곱 가족의 애굽으로의 이주… 이 모든 것은 사실 서로 전혀 관계가 없는 별개의 사건들입니다. 그저 우연의 연속으로 밖에 보이지 않죠. 그렇지만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역사 속에는 서로 연결될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이 그 역사를 만들어 가시기 위해서 사용된 재료들이었습니다. 


먼저 이 사건의 발단이 된 요셉의 교만과 형제들의 질투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입니다. 열 두 형제들의 마음 속에서 생겨난 악한 마음이니까요. 그런데, 이 악한 마음들이 부딪혔을 때,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는 엄청나게 악하고 비극적인 일을 만들어 냅니다. 한 가족의 역사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악한 일을 오히려 하나님의 언약과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출발점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이제 무대는 애굽으로 옮겨집니다. 요셉은 인간적으로도 그렇고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지만 그런 요셉에게 돌아온 것은 모함과 감옥생활 밖에 없었습니다. 풀려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되지만 또 다시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해 줄 사람이 요셉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바람에 요셉의 소망은 다시 한 번 좌절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잊혀진 세월들을 바로가 악몽을 꿀 때까지 요셉을 조용히 하나님을 기다리게 하시는 세월로 사용하셨습니다. 저는 이 시간이 요셉에게 힘들기는 했어도 절대로 헛되고 좌절스럽기만한 세월이 아니었다고 믿습니다. 이 시간은 요셉에게서 아직도 남아있는 교만의 찌꺼기를 처리하시기 위해서 꼭 필요한 시간이었고, 그 절망의 시간 속에서 믿음을 담금질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믿습니다. 


때가 되어 바로는 꿈을 꿉니다. 정말 불길한 악몽을 꿉니다. 그 꿈을 그 누구도 맞추지 못하고 또 해석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요셉이 등장할 또 다른 무대를 꾸미고 계셨습니다. 그 때 바로의 주류담당 관리가 문득 잊고 있었던 요셉을 기억해 냅니다. 그리고 요셉을 추천합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알아맞히고 해석해 주었을 뿐 아니라 닥쳐올 긴 흉년을 대비하는 방법까지 일러줍니다. 바로는 요셉이 지혜를 높이 사서 요셉을 국무총리로 세워 흉년을 넘어갈 준비를 시킵니다. 하나님께서 그야 말로 요셉을 ‘모든 환란’에서 건져내셔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려놓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7년의 풍년이 지나고 곧이어 7년의 극심한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이미 흉년을 대비한 애굽은 전혀 걱정할 것이 없었지만, 흉년이 찾아올 줄 모르고 있었던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양식을 구하러 애굽으로 찾아올 수 밖에 없었고, 그들 중에는 야곱의 다른 아들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해서 야곱의 온 가족은 애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흉년은 나쁜 것입니다. 그러나 흉년이 없었다면 야곱의 가족은 애굽으로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흉년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가족을 이집트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사용하셨던 도두였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을 야곱 가족 75명을 큰 민족으로 기르기 위한 최고의 인큐베이터로 사용하려고 하셨고, 그것을 위해서 지금껏 준비해 오셨던 것입니다. 사실 야곱의 가족이 그냥 가나안 땅에 남아있었더라면 애굽에 있었던 것처럼 빠르게 큰 민족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애굽으로 온 야곱의 가족들은 요셉 덕분에 특별대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정해 준 지역에 따로 안전하게 머물면서 75명이 큰 민족이 되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이 그 흉년을 미리 준비하게 하셨던 이유는 야곱의 가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야곱 가족을 양육하기 위해서 그 큰 나라를 살려주셨던 것입니다. 또 야곱 가족의 입장에서는 이런 모든 일을 통해서 이런 일들이 없었다면 결코 얻을 수 없었을 아주 귀중한 선물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가족이 가족다운 가족으로 거듭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은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세겜으로 옮겨져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주고 산 무덤이 장사된지라”라고 야곱 가족의 마지막 역사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렇다고 해도 요셉과 형제들이 세겜의 가족 묘에 묻힌 것은 출애굽 이후의 일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구절은 이제 이스라엘이 큰 민족을 이루어 다시 가나안으로 되돌아온 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해 주셨던 약속이 성취된 것을 미리 이야기 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요셉의 교만과 형제들의 질투가 만들어 낸 그 악한 일을 통해서도 한 사람이 큰 민족이 되게 하시겠다던 약속을 완벽하게 이루어 가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은 그저 개인의 인생이 아닙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 인생을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그렇게 보고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인의 인생도 소중히 여기시며 그 개인의 인생도 완전하게 인도해 가십니다. 그러나, 우리 개인의 인생은 우리 개인의 인생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 역사의 일부분이기도 합니다. 위에서 우리는 야곱 가족의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 보았습니다. 야곱 가족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그 가족의 역사 전체를 가장 선하게 인도해 가시는 동시에 그 가족의 역사를 하나님 나라의 역사라는 큰 틀에서 조율해 가고 계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족사 속에서 각자가 하나님께 보인 반응은 무척 다릅니다. 요셉이 팔려간 종이 되어서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억울하게 옥에 갇혀서도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잃지 않았던 것, 자신의 권력을 자신을 팔아넘긴 형제들에 앙갚음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요셉이 희미하게 나마 자신의 삶은 그저 개인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형제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들 개인의 삶 속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생각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말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모든 결정과 행동은 모두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악한 결정이나 선하지 않은 행동까지도 하나님께서 정해주시고 시키신 것이라고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면서 그 모든 것들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큰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최선의 도구로 바꾸신다는 뜻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우리가 하는 선택은 철저히 우리가 하는 선택이며, 그래서 우리의 책임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라는 큰 틀에서 그 열매들 또한 우리가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최선의 삶이 되게 하려면 우리는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려야 하며, 그것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요셉이 어디서든지 형통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요셉은 되는 대로 막 살았는데,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을 원망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또 부정직하고 불성실한 삶을 살았는데도 그가 보디발 집의 집사가 되었고, 죄인의 신분으로 감옥의 총무가 되었고, 나중에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도구요 재료가 된다는 것을 잊지 않고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모양의 삶을 살아가려고 애쓸 때, 그 위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더해지면, 나를 향해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여 지고 그래서 그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하나님의 뜻은 순풍에 돛을 단 듯 이루어져 가게 되고요. 최선을 다했지만 사람들의 오해를 받아본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결정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아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떤 상황 속에 계십니까? 평안하시기만 하실 수도 있겠고, 또 고통스럽고 견디기 어려운 상황 속에 계신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삶이 어떤 모양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순히 여러분 개인의 삶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경험하고 있는 삶은 여러분 인생의 일부분이듯이 하나님 나라 역사의 일부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라는 틀 속에서 여러분의 인생이 최선의 인생이 되도록 움직여 가고 계십니다. 일시적으로 보면 우리의 인생은 이런 모양이 될 수도 있고, 또 저런 모양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선택이나 주변 사람들의 잘못 때문에 생겨난 결과일수도 있고, 또 그저 하나님이 뜻하신 바가 계셔서 허락하시는 것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이라도 하나님의 손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 어떤 사람의 삶도 하나님 나라의 역사라는 큰 틀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가장 지혜롭고 복된 삶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놓여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그 뜻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그러한 순종을 통해서 이 세상에 이루어져 갈 것이고, 여러분의 삶도 그 안에서 그만큼 더 순적하게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그 어떤 순간,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요셉과 함께 하셨고,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듯이 신실하신 하나님은 변함 없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역사이니까요. 


항상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셔서 하나님 나라 역사의 한 부분을 아름답게 장식하시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하심을 목격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