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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12.20.새벽예배 - 칠 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창세기 101)



창2916to30 - 칠 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창102).pdf


20131220D (#01).mp3.zip




본   문 : 창세기 29장 16-30절


‘쓰레기 통에서 장미꽃이 피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저히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이 생겼을 때, 도저히 그런 아름다운 열매가 맺혀지지 않을 것 같은 환경인데 기대치 못했던 열매가 맺혔을 때, 우리는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었다’라고 말합니다. 원래 자기 몫으로 되어 있던 복을 자기 힘으로 얻기 위해서 억지를 부렸을 때,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고 하셨지만 계속 자기 힘을 의지해서 살아가려고 했을 때, 야곱의 삶은 마치 쓰레기통처럼 헝크러지고 어지럽혀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가장 아름답고 순수해야 할 가정사가 가장 심각하게 죄로 물들여졌습니다. 삼촌에게 속아서 사랑하지도 않는 여인, 그것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언니를 아내로 맞아 들여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7년을 일한 대가로 말입니다. 7일만에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아 들이기는 했어도 그 여인을 완전히 아내로 만들기 위해서 또다시 7년을 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14년 동안의 어려움은 오히려 야곱의 라헬을 향한 사랑의 뜨거움과 순수함을 증명해 내기에 충분했고, 14년의 세월동안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야곱의 사랑은 바로 그러한 쓰레기통처럼 엉크러진 삶 속에서 피어오른 장미꽃처럼 아름답게 빛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야곱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 되어주신다는데도 하나님이 이런 저런 복을 주시면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여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거래를 하려고 했을 정도로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는 사람이며, 원하는 것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 가지고야 마는 그런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가 한 여인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스스로 나서서 그 여인의 아버지에게 7년을 일해 줄 테니 딸을 자신에게 달라고 말합니다. 그 당시에는 결혼지참금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신랑이 신부를 얻기 위해서 신부의 집에 지불하는 값이었죠. 이게 당시의 기준으로 하면 3, 4년치 봉급이었는데, 야곱은 스스로 그 두 배의 값을 지불하겠다고 나섰던 것입니다. 그리고 7년을 다 채우고 난 후에 속고 나서도 또 다시 7년을 기다리며 수고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야곱이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힘이란 이렇게 대단합니다.  그렇게 계산에 빠르고 절대로 손해보지 않는 태생 장사꾼인 야곱이 정상적인 경우와 비교해 볼 때, 두 배의 기간을 더 일하고도 그 기간을 단지 며칠처럼 여겼다니 말입니다. 그리고서도 또 다시 그만큼을 더 수고하게 만들었다니 말입니다. 사랑은 세상없는 장사꾼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사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모든 계산을 스톱시키고 그저 사랑하는 사람에만 집중하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전부를 집어던져도 전혀 아까워하지 않게 만듭니다.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 이 구절이 아름다운 이유는 이 구절은 사랑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증명해 주는 구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은 우리의 신앙에 대한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비밀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연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의 신앙이 어떻게 될 때 우리의 믿음이 정말 가장 신앙다운 신앙이 될까요?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양쪽으로 오해합니다. 한 쪽에서는 그저 마음 속에 신심만 품으면 되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그저 마음 속에 믿음이 있다는 것만 스스로 확인하면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일만 교회에 나올 뿐, 평상시에는 전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신앙을 ‘실천’과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하고 하지 않고를 기준으로 신앙을 생각합니다. 자기 의지로 열심을 내는 것이 신앙인 양 생각합니다. 물론 신앙에는 우리의 의지가 필요하고 또 열심도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일을 할 때보다 더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에 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모두가 다 신앙에 대한 오해입니다. 신앙은 단순한 신심도 아니고, 실천이나 열심도 아닙니다. 신앙은 사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겁고 진지한 사랑, 기쁘고 풍성한 사랑이 바로 신앙입니다. 


신앙이 사랑이 되지 못하면 그 신앙은 진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을 단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쏟아붓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는 억지가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거래도 사라지게 되고, 그것 때문에 생겨나는 형식적이고 비인격적인 것들도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해야 하는데 잘 안돼요.”라고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자기 신앙에 대한 좌절감을 말합니다. 또 반대편에서는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했다”고 자랑하기에 급급합니다. 둘 다 건강하지 못한 신앙입니다. 그렇다면 왜 신앙이 이런 좌절감이나 혹은 교만함을 벗어나지 못할까요? 그것은 신앙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같은 사람이 칠 년을 일하겠다고 스스로 나서게 만들고 그 칠년을 며칠처럼 여기도록 만든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사람은 자발적이 됩니다. 요구받기까지 기다리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할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찾아서 그리고 기뻐하면서 행합니다. 또 사랑하면 사람은 그 무엇도 아까워하지 않게 됩니다. 주고 주고 또 주어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사랑으로 한 일에 대해서는 “무엇을 했다”고 말하지 않게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쏟아붓게 만들어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하게 하고 또 나는 한 것이 없다고 말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되어야 자발적이 됩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여도 그것이 아까운 줄 모릅니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위해서 기쁘게 인내하게 됩니다. 칠년을 며칠같이 여길 수 있는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인내하며 섬길 수 있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우리에게 그런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사람을 향한 사랑이 만들어 내는 변화는 야곱의 경우처럼 본질적인 변화가 되지 못하고 그 변화가 지속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마치 군대에 가면 많이 변하는 것 같아도 6개월이 흐르기 전에 다 이전상태로 돌아오는 것처럼 그런 변화로 끝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엄밀하게 말해서 사람을 향한 사랑은 자기만족을 위한, 자기중심적인 사랑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짜로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은 우리를 온전히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우리에게 그 어떤 일보다 큰 만족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자기 중심적인 자기 만족과는 전혀 다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만들어 내는 온전하고 근본적이며 또 속깊은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우리에게 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되 아직은 충분히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무엇을 하면 무엇을 했다고 티를 내고 싶고 하나님 앞에서 인색한 마음이 생기며 하나님을 섬길 때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지 않은 이유는 야곱이 라헬을 사랑한 만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칠 년을 며칠처럼 여기게 할 만큼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우리 안에 아직 충분히 자리 잡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신앙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신앙 자체가 기쁨이 되며, 또 하나님을 섬기는 것 자체가 영광이 되고 만족이 되는 그런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칠 년을 며칠처럼 여기게 만들만큼 크고 깊어져서 그 사랑의 능력과 기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