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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4.01.17. 금요기도회 -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사도행전 46)


행0826to40 -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사도행전46).pdf


20140117FE (#1).mp3.zip





본문 : 사도행전 8장 26-40절


하나님을 진짜로 믿는 사람들이라면 확실하게 믿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온 우주의 주인이요 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모두 이것을 믿으시죠? 우리가 이것을 믿는다는 것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믿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서 무의미 한 일이 없고 순전히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모르고 계시거나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난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서 일어나는 악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시는 일들은 아니지만 그것들 또한 하나님의 통제 아래에 있고, 하나님은 결국 그런 것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가장 선한 계획을 이루어 가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역사처럼 커다란 것들과 관계된 일들만 그런 게 아닙니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개인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개인의 인생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게 될 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통해서 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무언가 하시려는 일이 있고 우리 모두에게 그 역할이 맡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하는 하나 하나의 행동들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사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순종하는 일은 그것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하나님의 더 큰 목적을 이루어 가는 도구가 되고 또 다른 일을 시작하는 씨앗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빌립이 그것을 우리에게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데요. 빌립은 그저 성령님께 이끌려서 단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을 뿐이지만 그 일은 결국 에디오피아라는 땅끝에 복음이 전해지는 문을 열었고, 거기서 복음이 왕성하게 역사하는 길을 터 준 일이 되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빌립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가제대로 성령충만한 사람이었고, 그러면서도 겸손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자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성령충만해야 하며, 또 겸손히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또 그 인도하심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 모두 항상 성령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겸손히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이런 빌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구원하시는 과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먼저 본문에 나와있는 빌립의 역할을 살펴보면 정말 기계적이라고 표현해도 정도로 단순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빌립은 그저 성령님께서 자신에게 요구하시는 것만 감당합니다. 그런데, 그게 에디오피아의 내시를 구원하고 에디오피아에 복음을 전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빌립이 자신에게 맡겨지고 요구된 일을 하니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무언가 그럴듯한 결과를 하나님 앞에 내놓고 “자, 보십시오. 하나님! 여기 제 열심과 노력의 열매가 있습니다. 내가 이 사람을 구원하였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그저 거기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항상 기억하고 또 지켜가야 할 대원칙입니다. ‘나는 나에게 맡겨진 일만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신다. 결과는 하나님의 몫이지 내 몫이 아니다’라는 원칙만큼은 꼭 기억하고 지키려고 힘써야 합니다. 전도를 할 때건, 다른 일을 할 때건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조차도 하나님의 역할은 결정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일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기도하고 있는 빌립더러 빨리 광야 길로 가라고 하신 분이 성령님이시니까요. 둘째로 타이밍을 완벽하게 맞추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빌립이 머물고 있었던 곳에서 에디오피아의 내시를 만나는 지점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정확하게 아셨고, 또 내시가 예루살렘에서 경배를 마치고 그 지점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정확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 두 시간을 정확하게 조율하신 것입니다. 그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지 않으셨다면 빌립은 절대로 자기 걸음보다 훨씬 빠른 내시의 병거를 만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27절을 보면 “일어나 가서 보니…”라고 빌립이 간다게의 내시를 만난 일을 마치 아침에 마당에 떨어진 신문을 주우러 나갔더니 우연히 옆 집 아주머니를 만났던 일처럼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사실 두 사람이 어딘지도 모르는 길 한 가운데서 만났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기가 막힌 섭리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만난 사람이 누구입니까? 땅끝에서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던 에디오피아의 내시였습니다. 이 사람은 이방인으로서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순례를 왔을 정도로 유대교에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내시였기 때문에 절대로 유대교로 개종할 수가 없었던 그런 아픔을 가진 사람이었죠. 그런 그가 꿈에도 그리던 순례를 마치기는 했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텅 빈 영혼으로 왔던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 사람이야 말로 그 누구보다도 복음이 필요한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빌립이 가서 보니 이 사람은 흔들리는 수레 위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이사야서 53장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가장 즐겨 읽고 묵상하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내시는 그 말씀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계속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읽고 있었습니다. 빌립이 가서 보니 그렇게 하고 있는 정말 안타까운 형편의 내시를 발견한 것입니다. 빌립이 이 사람에게 복음을 들려주기 위해서 해야 했던 일은 전혀 대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채로 성경을 읽고 있는 그에게 “읽는 것을 이해하시겠습니까?”라는 한 마디 말만을 던졌을 뿐입니다. 이것은 마치 심하게 목이 마른 사람에게 그저 “물 좀 드릴까요?”하고 물은 것이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려고 할 때, 그냥 나가지 말고 정말 간절하게 하나님께서 준비시켜 놓으신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목 마른 사람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기로 작정된 사람들을 분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만나게 해 주셔야만 합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을 전도하려고 할 때도 이런 기도는 꼭 필요합니다. 그가 자신의 영혼의 허전함을 절감하고 있을 때, 복음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가 복음을 거절하지 않고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전도하기로 마음 먹은 사람에게 다가갈 때도, 항상 그의 마음을 성령님께서 먼저 준비시켜 주시도록, 그리고 그가 전해지는 복음을 잘 들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빌립은 그가 예수님에 대한 본문을 읽고 있으니 그저 그 본문이 예수님에 대한 것임을 알려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이사야서 53장의 말씀은 저절로 그를 위한 복음이 되고 갈급한 그의 영혼을 위한 생수가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사야서 52장 후반부터 시작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은 단지 오실 메시야에 대한 말씀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 당시의 성경은 장과 절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내시가 이사야서 53장을 읽고 있었다는 것은 ‘자! 어디 이사야서 53장을 찾아서 읽어볼까?’하고 53장부터 읽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또 어디까지 읽어야 할지 모르면서 읽고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성경으로 52장 후반부 부터 시작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은 53장을 넘어서도 계속되고 있는데요. 56장 3절 이하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그의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하지 말며 고자도 말하기를 나는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내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그들에게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는 주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미 모은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성도 여러분, 이방인인 그에게, 그리고 내시였던 그에게 이보다 더 크고 놀라운 복음이 또 있었을까요? 저는 빌립이 이사야서 53장만을 설명해 주지 않았다고 생본문 : 사도행전 8장 26-40절




하나님을 진짜로 믿는 사람들이라면 확실하게 믿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온 우주의 주인이요 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모두 이것을 믿으시죠? 우리가 이것을 믿는다는 것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믿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서 무의미 한 일이 없고 순전히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모르고 계시거나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난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서 일어나는 악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시는 일들은 아니지만 그것들 또한 하나님의 통제 아래에 있고, 하나님은 결국 그런 것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가장 선한 계획을 이루어 가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역사처럼 커다란 것들과 관계된 일들만 그런 게 아닙니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개인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개인의 인생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게 될 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통해서 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무언가 하시려는 일이 있고 우리 모두에게 그 역할이 맡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하는 하나 하나의 행동들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사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순종하는 일은 그것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하나님의 더 큰 목적을 이루어 가는 도구가 되고 또 다른 일을 시작하는 씨앗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빌립이 그것을 우리에게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데요. 빌립은 그저 성령님께 이끌려서 단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을 뿐이지만 그 일은 결국 에디오피아라는 땅끝에 복음이 전해지는 문을 열었고, 거기서 복음이 왕성하게 역사하는 길을 터 준 일이 되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빌립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가제대로 성령충만한 사람이었고, 그러면서도 겸손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자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성령충만해야 하며, 또 겸손히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또 그 인도하심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 모두 항상 성령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겸손히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이런 빌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구원하시는 과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먼저 본문에 나와있는 빌립의 역할을 살펴보면 정말 기계적이라고 표현해도 정도로 단순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빌립은 그저 성령님께서 자신에게 요구하시는 것만 감당합니다. 그런데, 그게 에디오피아의 내시를 구원하고 에디오피아에 복음을 전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빌립이 자신에게 맡겨지고 요구된 일을 하니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무언가 그럴듯한 결과를 하나님 앞에 내놓고 “자, 보십시오. 하나님! 여기 제 열심과 노력의 열매가 있습니다. 내가 이 사람을 구원하였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그저 거기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항상 기억하고 또 지켜가야 할 대원칙입니다. ‘나는 나에게 맡겨진 일만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신다. 결과는 하나님의 몫이지 내 몫이 아니다’라는 원칙만큼은 꼭 기억하고 지키려고 힘써야 합니다. 전도를 할 때건, 다른 일을 할 때건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조차도 하나님의 역할은 결정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일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기도하고 있는 빌립더러 빨리 광야 길로 가라고 하신 분이 성령님이시니까요. 둘째로 타이밍을 완벽하게 맞추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빌립이 머물고 있었던 곳에서 에디오피아의 내시를 만나는 지점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정확하게 아셨고, 또 내시가 예루살렘에서 경배를 마치고 그 지점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정확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 두 시간을 정확하게 조율하신 것입니다. 그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지 않으셨다면 빌립은 절대로 자기 걸음보다 훨씬 빠른 내시의 병거를 만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27절을 보면 “일어나 가서 보니…”라고 빌립이 간다게의 내시를 만난 일을 마치 아침에 마당에 떨어진 신문을 주우러 나갔더니 우연히 옆 집 아주머니를 만났던 일처럼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사실 두 사람이 어딘지도 모르는 길 한 가운데서 만났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기가 막힌 섭리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만난 사람이 누구입니까? 땅끝에서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던 에디오피아의 내시였습니다. 이 사람은 이방인으로서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순례를 왔을 정도로 유대교에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내시였기 때문에 절대로 유대교로 개종할 수가 없었던 그런 아픔을 가진 사람이었죠. 그런 그가 꿈에도 그리던 순례를 마치기는 했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텅 빈 영혼으로 왔던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 사람이야 말로 그 누구보다도 복음이 필요한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빌립이 가서 보니 이 사람은 흔들리는 수레 위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이사야서 53장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가장 즐겨 읽고 묵상하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내시는 그 말씀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계속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읽고 있었습니다. 빌립이 가서 보니 그렇게 하고 있는 정말 안타까운 형편의 내시를 발견한 것입니다. 빌립이 이 사람에게 복음을 들려주기 위해서 해야 했던 일은 전혀 대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채로 성경을 읽고 있는 그에게 “읽는 것을 이해하시겠습니까?”라는 한 마디 말만을 던졌을 뿐입니다. 이것은 마치 심하게 목이 마른 사람에게 그저 “물 좀 드릴까요?”하고 물은 것이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려고 할 때, 그냥 나가지 말고 정말 간절하게 하나님께서 준비시켜 놓으신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목 마른 사람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기로 작정된 사람들을 분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만나게 해 주셔야만 합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을 전도하려고 할 때도 이런 기도는 꼭 필요합니다. 그가 자신의 영혼의 허전함을 절감하고 있을 때, 복음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가 복음을 거절하지 않고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전도하기로 마음 먹은 사람에게 다가갈 때도, 항상 그의 마음을 성령님께서 먼저 준비시켜 주시도록, 그리고 그가 전해지는 복음을 잘 들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빌립은 그가 예수님에 대한 본문을 읽고 있으니 그저 그 본문이 예수님에 대한 것임을 알려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이사야서 53장의 말씀은 저절로 그를 위한 복음이 되고 갈급한 그의 영혼을 위한 생수가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사야서 52장 후반부터 시작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은 단지 오실 메시야에 대한 말씀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 당시의 성경은 장과 절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내시가 이사야서 53장을 읽고 있었다는 것은 ‘자! 어디 이사야서 53장을 찾아서 읽어볼까?’하고 53장부터 읽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또 어디까지 읽어야 할지 모르면서 읽고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성경으로 52장 후반부 부터 시작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은 53장을 넘어서도 계속되고 있는데요. 56장 3절 이하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그의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하지 말며 고자도 말하기를 나는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내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그들에게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는 주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미 모은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성도 여러분, 이방인인 그에게, 그리고 내시였던 그에게 이보다 더 크고 놀라운 복음이 또 있었을까요? 저는 빌립이 이사야서 53장만을 설명해 주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빌립은 분명히 이 말씀까지도 보여주면서 이 일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실 일이라고 알려 주었을 것입니다. 36절에 보시면 내시가 길 가에서 물을 발견하고 이렇게 요구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내시는 내시인 자신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스스로 나서서 세례를 받겠다고 이야기 했던 것입니다. 이 내시가 이사야서 56장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란 얼마나 놀랍습니까? 분명히 내시가 읽었던 이사야서의 말씀은 이 내시를 위해서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오실 메시야가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메시야가 오시면 어떤 일을 행하실지에 대해서 미리 가르쳐 주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말씀 속에 정말 일부러 그렇게 기록하려고 해도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한 내시를 위한 복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 말씀이 화살처럼 그 내시의 갈급한 영혼 한 가운데를 관통해서 그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에 꼭 믿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말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말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의 영혼의 필요를 채울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단지 그 복음만 그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전하면 됩니다. 


전도폭발훈련이라는 전도훈련이 있습니다. 제가 이 훈련에서 가장 가치있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이 훈련이 훈련을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한 번은 꼭 복음을 있는 그대로 전하도록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전도 프로그램이 그저 사람들을 교회로 데리고 오는데 목적이 있다면, 전도폭발훈련은 복음을 전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 같아서 그게 참 좋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개발한 미국의 제임스 케네디 목사님은 교회를 성장시키려고 고민하다가 결국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특별한 방법이 아니라 단순한 복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이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되었고, 그 일을 통해서 그 지역사회에서 12년만에 2000명을 복음으로 회심시키는 열매를 얻었다고 합니다. 복음이 참 어리석게 보이지만 그래서 있는 그대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 참 어렵게 여겨지지만 그래도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바로 그 투박한 복음, 어리석게만 보이는 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복음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그 복음의 구원하는 지혜를 믿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복음의 지혜와 능력을 정말로 신뢰한다면 우리는 훨씬 더 쉽게 복음을 들고 그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도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전도는 철저히 하나님의 일입니다. 복음이 꼭 필요한 사람을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시고, 또 그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시고, 성령으로 그의 마음이 복음을 향해 활짝 열려지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들려주면 됩니다. 그러면 그 복음이 그 사람을 움직이고 그래서 그 복음을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물론 언제나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이런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될 때도 있고 그러면 우리는 거절을 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도 우리는 거절된 것이 우리가 아니라 복음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이라면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우리가 전한 거절된 복음 또한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한 하나의 씨앗으로 사용되고 징검다리의 돌맹이로 사용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전도자는 전도가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전도자는 스스로가 자신의 말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또 전도자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은 하나님이 복음을 가지고 하신다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런 전도자로 부름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전도자의 역할만 감당하면 됩니다. 항상 성령충만하여 주님의 인도를 구하고, 하나님이 내가 하는 일을 통해 하실 일을 기대하며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복음의 능력을 믿고 또 하나님을 믿으므로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복음은 전하는 전도자로 세워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각합니다. 빌립은 분명히 이 말씀까지도 보여주면서 이 일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실 일이라고 알려 주었을 것입니다. 36절에 보시면 내시가 길 가에서 물을 발견하고 이렇게 요구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내시는 내시인 자신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스스로 나서서 세례를 받겠다고 이야기 했던 것입니다. 이 내시가 이사야서 56장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란 얼마나 놀랍습니까? 분명히 내시가 읽었던 이사야서의 말씀은 이 내시를 위해서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오실 메시야가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메시야가 오시면 어떤 일을 행하실지에 대해서 미리 가르쳐 주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말씀 속에 정말 일부러 그렇게 기록하려고 해도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한 내시를 위한 복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 말씀이 화살처럼 그 내시의 갈급한 영혼 한 가운데를 관통해서 그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에 꼭 믿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말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말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의 영혼의 필요를 채울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단지 그 복음만 그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전하면 됩니다. 


전도폭발훈련이라는 전도훈련이 있습니다. 제가 이 훈련에서 가장 가치있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이 훈련이 훈련을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한 번은 꼭 복음을 있는 그대로 전하도록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전도 프로그램이 그저 사람들을 교회로 데리고 오는데 목적이 있다면, 전도폭발훈련은 복음을 전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 같아서 그게 참 좋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개발한 미국의 제임스 케네디 목사님은 교회를 성장시키려고 고민하다가 결국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특별한 방법이 아니라 단순한 복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이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되었고, 그 일을 통해서 그 지역사회에서 12년만에 2000명을 복음으로 회심시키는 열매를 얻었다고 합니다. 복음이 참 어리석게 보이지만 그래서 있는 그대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 참 어렵게 여겨지지만 그래도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바로 그 투박한 복음, 어리석게만 보이는 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복음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그 복음의 구원하는 지혜를 믿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복음의 지혜와 능력을 정말로 신뢰한다면 우리는 훨씬 더 쉽게 복음을 들고 그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도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전도는 철저히 하나님의 일입니다. 복음이 꼭 필요한 사람을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시고, 또 그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시고, 성령으로 그의 마음이 복음을 향해 활짝 열려지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들려주면 됩니다. 그러면 그 복음이 그 사람을 움직이고 그래서 그 복음을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물론 언제나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이런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될 때도 있고 그러면 우리는 거절을 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도 우리는 거절된 것이 우리가 아니라 복음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이라면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우리가 전한 거절된 복음 또한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한 하나의 씨앗으로 사용되고 징검다리의 돌맹이로 사용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전도자는 전도가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전도자는 스스로가 자신의 말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또 전도자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은 하나님이 복음을 가지고 하신다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런 전도자로 부름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전도자의 역할만 감당하면 됩니다. 항상 성령충만하여 주님의 인도를 구하고, 하나님이 내가 하는 일을 통해 하실 일을 기대하며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복음의 능력을 믿고 또 하나님을 믿으므로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복음은 전하는 전도자로 세워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