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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3.05. 새벽예배 -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창세기 127)



창3827to3906 -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창12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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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창세기 38장 27-39장 6절



오늘부터 요셉의 이야기로 넘어가게 되는데요. 그 전에 이제까지 창세기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되돌아 보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할 줄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는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꿈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세상을 하나님의 형상이 가득 채우고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는 것이었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셨던 언약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언약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그 언약에 순종하는 일에 실패합니다. 선악과를 따 먹고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하는 엄청난 일을 저지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와에게 또 다시 언약을 주시고 자녀들을 주셨습니다. 


그 다음 이 언약을 공식적으로 물려받은 사람은 아브라함이었지만 아브라함 또한 이 약속의 성취를 두 번이나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이 언약을 이루어야 할 사라를 두 번씩이나 남에게 빼앗길 위기를 자초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다른 부분에서는 아주 훌륭했지만 아브라함과 똑같은 잘못을 저지릅니다. 아내인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이고 아비멜렉에게 주려고 했습니다. 왜 이런 것은 가르치지 않아도 잘 배우고 또 그렇게 잘 닮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는 다시 한 번 좌절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은 그 성품과 성향부터가 하나님의 언약을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디나 사건으로 아얘 전 가족이 멸절을 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그 그릇에 담긴 하나님의 언약 또한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세대도 이 점에 있어서는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유다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너무 악하게 행동해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유다는 하나 남은 아들을 지키려고 자기 가문의 혈통을 이어 가는 것을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너무나 부끄러운 과정을 통해서 유다는 새로운 아들들을 얻게 되고 이들은 법적으로 본다면 유다의 큰 아들의 아들들이 되는 셈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해서 유다의 가문을 유지하셨습니다. 이 아들들 중 첫째인 베레스가 후에 다윗과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꿈을 이루시기 위해서 사람과 맺은 언약은 사람의 연약함과 악함 때문에 번번히 유산될 위기에 처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부족함과 악함에도 불구하고 꺼져가는 불을 다시 붙이셔서 되살려 내셨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움직여 갑니다.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망가뜨리는 쪽으로 움직여 갑니다. 사람들이 살았던 모든 시대들은 다 이러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믿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 의롭고 언제나 하나님께 순종했던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때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망쳐놓는 주역노릇을 한 적이 더 많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사람을 세우셨고, 여인의 후손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고 또 온 우주를 구속하시겠다는 약속을 계속해서 이루어 오셨습니다. 결국 그 어두운 역사를 뚫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이제 남은 약속은 단 하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무시해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을 이루실 것입니다. 때로는 믿는 사람들이 그 언약에 무관심하고 그 언약을 힘들게 만들어도 그래도 하나님은 구원의 약속, 회복의 약속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약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때로 우리의 연약함이 드러나고 또 우리가 악을 행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가실 것이니까요. 우리는 언제나 연약합니다. 또 불의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더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실망하고 낙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음으로 사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왕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종으로 팔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때부터 요셉에게 대한 특별대우를 시작하셨습니다. 2절부터 6절까지 나오는 하나님의 요셉을 향한 특별한 대우들은 이렇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2절부터 5절까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 여호와께서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다는 이야기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6절을 보면 그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이렇게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아주 커다란 복을 주셨고 그래서 보디발 또한 그런 요셉의 형통함을 보고 자기 집안의 재산관리를 시킨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것이 사실이죠.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에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숨겨진 이야기가 하나 더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반응한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요셉은 형들에게 그렇게 팔아넘겨 지고 갖은 고생 끝에 애굽으로 와서 종으로 팔려가면서 그 이전의 삶으로 부터 완전히 돌아섰던 것 같습니다. 그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겠지요. 귀공자처럼 살던 어린 아이가 그렇게 말도 안되게 종으로 팔리게 되었는데 자기 인생을 비관하거나 포기하지 않고서 오히려 삶을 바로 잡기로 했으니 말입니다. 그가 이런 회개를 했다는 증거는 이후에 이어지는 본문에서도 볼 수 있지만 사실 오늘 이야기 속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복을 주셔서 형통하게 하셨다는 사실과 보디발이 그를 자기 집안 전체를 관리하는 총무로 삼았다는 것을 직접 연결하는데 사실 이 두 가지는 직접 연결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그가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그가 하는 일마다 잘된다고 해도 근본도 모르는 종에게 그 큰 집안 일 전체를, 자기 먹을 것만 빼고 다 일임한다는 것은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자기의 전부를 위탁하는 것은 이미 이 말 속에도 나타나 있듯이 그 사람의 능력만을 보고 결정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 능력에 더하여 성실성과 신뢰성을 갖추고 있어야 그 사람에게 자기가 가진 전부를 맡길 수 있습니다. 안 그러면 그 사람의 능력이 오히려 자신을 힘들게 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요셉은 단순히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만 입었던 것이 아니라 그 은혜에 합당한 성품과 삶의 태도까지도 갖추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전 아버지 밑에서 철부지 노릇하며 살던 때와는 너무 너무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복을 주시는데도 종으로서 최선을 다해서 자기 주인을 섬깁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이 얼마나 힘드는 일인지 모릅니다. 사실 자기 재산이고 자기 일일 때도 사람은 커다란 복을 받으면 교만해지고 나태해 지는데, 남의 일, 그것도 종의 일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아무리 자기가 잘하고 또 하는 일이 잘 된다고 해도 자기와는 상관없는 그 열매가 고스란히 주인에게로 돌아가는 그런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요셉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정직하게 일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디발의 신임을 얻었고 그의 집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유다도 하나님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 선택한 사람이고 요셉도 하나님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 선택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두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고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삶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유다는 그렇게 동생을 팔아넘긴 후에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저 자기 마음대로 되는 대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유다는 자유인이었지만 그의 삶은 그를 얽어매고 부끄럽게 하는 수많은 것들로 채워져 갔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종으로 팔려가면서도 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종이 되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그 결과 약관의 나이로 그 큰 집안의 집사직을 맡았습니다. 비록 요셉은 종이기는 했지만 그런 점에서 얽매일 것이 없는 자유와 영광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우리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과 뜻 안에서의 우리의 삶은 얼마든지 우리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극명한 예가 바로 유다와 요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 두 사람들 처럼 우리가 알건 모르건 하나님의 뜻과 계획 가운데 살아갑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또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구체적으로 우리 삶의 모습과 영광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우리 삶이 맺게 되는 열매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복주심 가운데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나의 삶이 뒷받침 되어질 때, 비로소 아름답고 영광스러워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에 믿음을 두시고 두려움 없이 최선을 다해서 정직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영광스럽고 자유로운 삶이 될 것이고 또 하나님의 영광도 드러내는 아름다운 모습이 되어질 것입니다.  


항상 믿음 가운데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은혜에 합당한 주님의 백성들이 되어서 우리 삶의 자리에서 맺을 수 있는 최고의 열매들을 맺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