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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4.04. 새벽예배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사순절 5-5)


14. 요1401to06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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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한복음 14장 01-06절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기 전, 그러니까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비록 일시적이기는 했지만 제자들을 떠나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잠깐 동안이기는 했지만 믿음이 충분치 않은 제자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근심과 낙심의 이유가 될 것인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앞으로 생겨날 제자들의 그러한 두려움과 근심을 없애 주시기 위해서 해 주신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들을 두려움과 근심에 빠지게 할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미리 주신 말씀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언제든지 우리를 두려움과 근심에 빠지게 하는 상황들을 만날 수 있는 우리들에게도 예수님의 말씀을 미리 들어 놓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상황을 만나서 당황하고 두려워 하며 근심하게 되는 진짜 이유는 상황이 어렵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억 속에 그런 상황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서 마련해 놓아야 하는 그 때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 없기 때문이고, 기억은 난다고 하더라도 그 약속을 믿음으로 붙들기 보다는 현실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상황,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두렵게 만들기에 충분한 상황을 만났을 때는 믿음이 필요한데요. 이럴 때 필요한 믿음은 그저 “다 잘 될거야!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실거야!”라는 막연한 믿음이 아닙니다. 이럴 때 필요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신 약속을 믿는 믿음입니다. 상황 속에서 구체적으로 붙들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상황에 대해 두려움이나 걱정이 아니라 믿음으로 반응하면서 견고하게 서 있을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약간 그렇지만 앞으로 제자들이 굉장히 근심하고 두려워하게 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두려워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해 두려움과 근심을 이기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 지를 알려 주십니다. 두려움과 근심을 이기는 힘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믿고 또 예수님을 신뢰한다면 우리들 또한 근심을 이길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럴 때에만 우리는 근심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곧바로 주신 말씀이 조금은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씀과 앞 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뒤에 이어지는 말씀은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라는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분명히 천국에 대한 말씀이고 또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제자들을 잠시 떠나시는 것은 천국에 제자들을 위한 영원한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며, 다 마련되면 다시 오셔서 제자들을 그리로 인도해 들이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결국 거기서 영원히 함께 거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의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나의 약속을 믿는 것인데, 그 약속은 바로 하늘나라에 너희를 위한 거처가 많다는 것, 그리고 내가 너희를 그리로 인도해 들어갈 것을 믿는 것 밖에 없다고 말씀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하늘나라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일과 현실 속에서의 두려움을 이기는 일을 직접 연결시켜 놓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현실적인 두려움을 이기는 것과 천국에 대한 소망. 어찌보면 이 두 가지는 잘 연결되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완전히 직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현실 속에서 우리를 두렵게 하고 또 근심하게 하는 일들을 만날 때, 그 두려움과 근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이유는 우리가 눈에 보이는 현실을 전부라고 여기면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에 빠져 있으면 이런 저런 현실적인 조건이 만족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게 됩니다. 또 지금 만족되어 있는 조건이 깨질까봐 전전긍긍하며 두려워 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라는 사고방식은 전혀 진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제 이야기가 현실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이거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만큼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현실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절대로 현실은 전부가 아닙니다. 아니, 현실은 전부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은 우리의 삶이 시작되는 동시에 시작해서 우리의 삶이 끝날 때까지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적인 일들은 그 어떤 일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절대적이고 전부인 것은 오히려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 변하고 또 흔들리는 현실이 아니라 영원히 변치 않는 현실입니다. 바로 우리가 하늘나라, 그리고 천국이라고 부르는 영원한 현실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100년을 산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보낼 영원한 세월에 비교한다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눈에 보이는 현실은 바로 그렇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시간 속에서 그것도 이렇게 또 저렇게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그런 조건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천국이라는 진짜 현실, 그리고 영원히 변치 않을 영광스러운 현실에 대한 눈이 열린 사람들에게는 이 땅의 현실이 그렇게 결정적이라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조금 더 가지고 덜 가지는 것으로, 그리고 조금 더 안전한 것과 조금 덜 안전한 것으로 벌벌 떨면서 거기 묶여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이 세상에 묶여 살아가고 있다면, 여전히 세상에 속한 것들 때문에 근심하고 걱정하며 두려워 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하늘나라에 대한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와 이 땅을 비교할 수 있는 감각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히 영광스러운 하늘나라를 확실히 바라보며 소망할 수 있는 영적인 감각이 열릴 때, 우리는 적어도 이 땅의 이런 저런 것들과 그런 것들이 만들어 내는 집착과 근심으로 부터 훨씬 더 자유로워 질 수 있습니다. 조금 손해보고 조금 부족해도 “까짓거!”하면서 눈을 감아 버릴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인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투자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두려움과 하늘 거처에 대한 확신을 짝지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하늘거처에 대한 확신만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영원히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의 거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네. 믿으셔야 합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리로 우리의 거처를 준비하러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 한 가지 우리가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은 지금 우리를 하늘나라에 준비된 우리의 거처로 인도해 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 위에서의 삶을 그야 말로 예수님의 인도를 받아 걸어가는 ‘천로 역정’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늘 아버지가 계신 우리의 거처로 인도하시는 하나 밖에 없는 길, 하나 밖에 없는 진리, 그리고 그 길에서 유일하게 우리의 영혼의 안전을 보증해 주시는 분으로 여기며 예수님만을 따라야 합니다. 


누군가가 흔들리는 배 위에 자신을 묶어 놓고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것보다 허황된 기대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왜 내가 이렇게 흔들리느냐고 묻는다면 그것보다 어리석은 질문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우리의 든든함과 평안의 이유를 세상에 둔다면 세상 전부를 가져도 결코 근심과 걱정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 세상은 언제나 흔들리고 또 변하게 마련이니까요. 성도는 이 세상이라는 흔들리는 배가 아니라 하늘 기둥에 자신을 묶어 놓고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 분을 나를 위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붙들고서 말입니다.  


항상 마음은 하늘에 두고 눈은 주님을 바라보며 이 세상에서 흔들림 없이 두려움과 근심을 이기는 든든한 하늘 여행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