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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4.25. 새벽예배 - 만 이년 후에(창세기 133)


창4020to4113 - 만 이 년 후에(창13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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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창세기 40장 20-41장 13절




요셉은 첫번째 술 담당 관리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신이 났고 잔뜩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 꿈이 너무 좋은 꿈이었고 자신이 그 꿈을 해석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 관리에게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당연히 술 담당 관리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구요.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알려주신 해석대로 술 담당 관리는 삼일 후에 복직이 되었습니다. 빵 담당 관리는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했구요. 아마도 요셉은 굉장히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관리의 약속도 있었고, 또 그 관리가 그렇게 잘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어디 들어갈 때 마음 다르고 또 나올 때 마음 달라서 그런지 바로의 술 담당 관리는 요셉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요셉은 기대를 하면서 기다렸지만 아무 소식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요셉이 그것 때문에 낙심을 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세월이 2년이나 흘러가고 맙니다. 아마도 요셉은 그 관리가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만 2년이 흐른 후에 아주 아주 중요한 사람이 전혀 해석이 되질 않는 이상한 꿈 두 가지를 연달아서 꾸게 됩니다. 아주 흉칙하고 불길한 꿈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난다 긴다하는 애굽의 술사들도 그 꿈이 무슨 뜻인지 도대체 풀어내지를 못했습니다. 바로가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아주 아름답고 토실토실한 암소 일곱 마리가 강가에서 올라와 갈같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데, 그 뒤에 아주 흉하고 말라 비틀어진 암소 일곱 마리가 강에서 올라와서 그 아름답고 토실토실한 소들을 전부다 잡아 먹었습니다. 하도 꿈이 이상해서 바로는 잠에서 깨었지만 또 다시 잠이 들었는데 또 다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한 줄기에서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자라나왔는데, 그 후에 동풍이 불면서 말라 비틀어진 이삭 일곱 개가 나오더니 그 충실한 이삭을 삼켜 버렸습니다. 사실 별것 아니라고 넘길 수 있는 꿈이었는데, 두 꿈이 일치하는 바도 많고 이상하게 바로의 생각을 사로 잡아 버려서 애굽의 유명한 술사들을 다 불렀던 것인데 그 어느 누구 하나 그 꿈이 대략 무슨 뜻인지 조차 풀어내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고민에 빠진 바로를 곁에서 지켜보던 술 맡은 관리는 이전에 자신이 꾼 꿈으로 자신이 바로처럼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그 꿈을 풀어주고 좋은 소식을 들려준 한 사람을 기억해 내었습니다. 자기가 잘 되면 꼭 기억해 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자기 편해 졌다고 까많게 잊어버렸던 요셉을 기억해 낸 것입니다. 그래서 그 관리는 왕에게 갔습니다. 먼저 자신이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왕에게 고백한 후에, 감옥에서 자신과 빵 맡은 관리의 꿈을 해석해 주었던 히브리 청년이 있었다고 왕에게 추천합니다. 아마도 평상시 같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여전히 의견을 물을 애굽의 술사들이 있었다면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을 것이지만, 워낙 고민이 깊었고 더 이상 대안도 없었기 때문에 왕은 사람을 보내서 요셉을 데리고 오게 합니다. 우리는 이 일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 지 잘 압니다. 너무나 완벽한 타이밍이고 너무나 완벽한 회복입니다. 


제가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살아가면서 거듭 거듭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인생이란 절대로 우리가 계산하는 대로 되는 법이 없으며,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이어지고 풀려져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 아니면 안될 것 같습니다. 해결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 일이 내 생각처럼 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을 넘기면 별 지장이 없습니다. 삶의 순간 순간들은 별 다르지 않게 흘러가고 이어져 갑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 삶에는 이런 일이 반복될까요?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우리 삶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 삶은 실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빨리 우리 삶에 대한 우리 자신의 지나친 예측이나 계산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빨리 우리 자신의 삶을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 속에는 집착과 욕심, 그리고 근심과 걱정이 줄어들게 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형통한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술 맡은 관리의 꿈을 해석해 주고 그 관리에게 청탁을 넣었습니다. 분명히 잘 될 것이니 그렇게 되면 굽어 살피소서 한 것입니다. 꿈은 해석대로 되었습니다. 관리의 약속도 있고 하니 금새 풀려날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2년을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사람이 계산을 한다는 것은 그 계산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 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구요. 그렇지만 계산이 계산대로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 또한 우리 마음대로 움직여 주질 않습니다. 술 담당 관리가 요셉을 몰라라 했던 것은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요셉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이렇습니다. 나는 너무 너무 절실한데 내가 기대는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데 너무 쉽게 잊어버리기도 하고, 기억하더라도 직접 움직일만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 움직이더라도 마음대로 되리라는 보장이 없구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까? 우리는 그 분의 섭리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고 의지해야 할 것이 따로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야 하지만 나 자신의 계산을 그치고 사람을 의지하는 일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내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중요하며,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2년 동안 요셉은 술 맡은 관리에게 잊혀졌습니다. 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도 요셉을 잊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요셉을 기억하셨고,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해 가고 계셨습니다. 억울한 상황에 있을 때, 답답한 상황에 있을 때, 그 때는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신 것이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스톱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상황 속에서 나를 기억하고 계시고, 그 상황 속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진행해 가고 계십니다. 이것을 믿고 인내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 자신의 계산이 맞지 않는다고 조급해 하지 않을 수 있고, 또 사람들에게 잊혀진 것을 속상해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시고, 나를 위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을 진행해 가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답답한 상황 속에 있을 때, 그 때가 요셉이 만 2년 동안 옥에 갇혀있었던 그 시간이라는 시간임을 잊지 마시고 더욱 더 하나님의 손에 삶을 내어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때에 주님의 계획이 이루어 지는 것을 기쁨과 여유로 바라볼 수 있는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