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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오후

2014.04.27. 전교인 기도회 - 사데 교회에 보낸 편지(2)



13. 계0301to06 - 사데 교회에 보낸 편지(2).pdf


20140427SE (#1).mp3.zip





본문 : 요한계시록 3장 1-6절




오늘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교회 중에서 사데교회에 보낸 편지를 계속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사데 교회는 그 이름이 살아있는 교회였습니다. 사람들이 그 교회를 생각하면 활발히 움직이고 있고 또 하는 일도 많아서 다들 “살아있는 교회”라고 이야기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사대 교회를 향해서 이름은 그렇지만, 실제로는 ‘죽은 교회’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어떻게 그렇게 일을 많이 하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교회가 죽은 교회일까 싶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가 보는 눈과 하나님께서 보시는 눈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겉을 보이는 모습만 보기 쉽지만 하나님은 그 속을 보십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보기에 어떤 교회일까 보다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가 어떤 교회일까에 신경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데교회의 경우처럼 사람들의 평가는 하나님의 평가와 정반대가 될 수 있는데, 애석하게도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가가 정확하고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도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로 우리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평가하기 쉽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의 상태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가 없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평가기준을 반영하는 것일 때 뿐입니다. 


주님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사데 교회를 향해서 죽은 교회라고 말씀하신 것은 주님이 그 교회 안에서 반드시 보셔야 할 것을 보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데 교회를 죽게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3절이 알려 줍니다. 사데 교회의 문제는 처음에 듣고 받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잘 지키지 못하고 놓친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이것을 지적하면서 이것을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그것은 바로 ‘복음’이었습니다. 사데 교회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후에는 들은 대로의 복음, 받은 대로의 복음을 잊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바로 그것을 문제 삼으신 것입니다.


복음은 처음 예수를 믿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 신앙의 시작이자 마지막입니다. 내용이고 기초이며 기둥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이 무엇일까요? 가장 짧게 요약하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주인되어 살아가는 삶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다스리심을 받고 예수님의 은혜 아래서 순종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을 요구합니다. 복음을 기억하고 또 지킨다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주신 은혜임을 인정하며 그 은혜 아래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일을 하든 무엇을 하든 이 범위를 벗어나면 안됩니다. 그러면 하나님 보시기에 그 행위는 온전치 못한 것이고, 그러면 그런 성도와 그런 교회는 아무리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어도 이미 죽어가고 있는 상태가 됩니다. 사데 교회는 이미 상당히 그런 상태가 진행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소망은 남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데교회를 그냥 버리지 않으시고 편지를 써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귀에 회개하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 오는 한 우리에게 소망은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아무리 심각한 상태라고 하더라도, 또 사람이 무엇이라고 말하더라도 우리는 다시 복음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또 복음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다시 예수님의 다스리심에 순종하며 은혜에 의지해서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그런 사데 교회였지만, 그래도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4절을 보시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연고니라” 주님은 사데 교회가 심각하게 복음을 떠나 있어서 거의 죽은 상태가 되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그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가 몇 명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몇 명은 많은 숫자는 아닙니다. 오히려 적은 숫자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연고라” 흰 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니는 그림은 하늘나라의 그림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그들은 구원의 완성을 보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누가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까? 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끝까지 복음을 믿는 믿음을 잘 지킨 사람들을 말합니다. 4절이 ‘그러나’라는 말로 시작되는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들만이 예수님과 함께 다니기에 합당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만이 주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백성이 되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할까요? 아마도 그렇지 않다고 배우셨을 것입니다. 그저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 있다면 된다고 배우셨을 것입니다. 물론 이 가르침은 틀린 가르침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 가르침에는 한 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믿음이란 바로 복음을 믿는 믿음이며, 그 믿음을 끝까지 지킨 사람들, 오늘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보면 다수가 아닌 사람들만이 하늘나라의 영원한 영광 가운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합당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자격을 갖추었다는 말로 표현해도 좋을 것입니다. 


5절을 보면 주님은 그것을 이렇게 다른 말로 표현하십니다. “이기는 자는 이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이 말씀은 아주 독특한 말씀입니다. 그것은 “이기는 자”라는 말 때문입니다. 잘 보시면 주님은 “이긴 자”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이길 자”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습니다. “이기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과거가 아닙니다. 미래도 아닙니다. 현재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기는 자입니다. 이런 성도가 이기고 있는 싸움은 옷을 더럽히지 않는 싸움, 그러니까 복음을 믿는 믿음을 지키는 믿음의 싸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를 다스리시는 왕으로 모시며 그 분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그 싸움을 말합니다. 주님은 지금 그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에게는 구원을 약속해 주십니다. 


신앙은 항상 현재 진행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우리 신앙에 관한 한 최고의 진리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성도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많은 분들이 과거에 붙들려 계십니다. 왕년에 은혜 충만했을 때, 왕년에 성령충만했을 때, 옛날에 열심히 믿었을 때 이야기를 하십니다. 또 다른 많은 분들은 항상 미래만을 이야기합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실제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현재 밖에 없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꿀 수 없고 손 댈 수도 없습니다. 좋게 바꿀 수도 없고 나쁘게 망가뜨릴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확하게 예측할 수도 없고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란 현재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시간은 지금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현재를 살지 않는 사람은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미래를 현재로 만들고, 현재를 과거로 만들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싸움도 지금 싸워야 하고 그 싸움의 승리도 지금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당장 주님 앞에 서게 된다면 주님은 우리의 어떤 모습을 문제 삼으실까요? 놀랍게도 주님은 지금 이 순간의 우리의 모습만을 문제 삼으실 것입니다. 과거에 아무리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믿음의 싸움을 싸우고 있고 그래서 이기고 있다면 주님은 분명히 우리를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아무리 많이 싸우고 많이 이겼다고 하더라도 주님을 만나는 지금 이 순간 싸우지 않고 있고 그래서 지고 있다면 주님은 절대로 우리를 칭찬해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님은 과거로 인해 우리를 칭찬하실지는 몰라도 그것을 문제 삼아 우리를 책망하지는 않으십니다. 지금 현재만 잘 싸우며 승리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현재는 문제를 삼으십니다. 현재 싸우지 않으면 현재 지고 있는 것이고 주님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생명책에서 이름을 절대로 지우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사람, 아버지 앞에서 그 이름을 부르며 시인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사람은 믿음을 복음에 순종하는 믿음을 현재 진행형으로 이해하고 지금 싸우고 지금 이기는 자들입니다. 지금 그 옷이 깨끗해야 나중에 하나님 나라에 가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영광으로 옷 입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명처럼 여겨야 할 것. 그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는 그 복음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며 그 복음을 잘 지켜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왕과 교회의 왕으로 모시고 그 분의 다스리심에 순종하는 싸움을 포기하지 말고 싸워야 하며 그렇게 이겨야 합니다. 지면 어떻게 할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마귀는 대적하면 물러가게 되어 있다고 주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지키려는 의지만 있다면, 복음에 순종하며 사는 싸움을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찬란히 빛나는 영광으로 옷 입고 영원히 사랑하는 우리 주님과 함께 거닐기에 합당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항상 내가 복음에 잘 서 있는가 잘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정말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순종하며 살고 있는지 잘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싸움을 지금 싸우십시오. 그래서 지금 이기십시오. 그래서 영원한 영광과 칭찬 속에 주님과 함께 거하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