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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4.30. 새벽예배 - 망하지 아니하리이다(창세기 135)


창4125to36 - 망하지 아니하리이다(창135).pdf


20140430D (#1).mp3.zip





본   문 : 창세기 41장 25-36절




바로는 두번씩이나 자기 꿈을 풀어줄 사람이 애굽 땅에는 단 한 사람도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요셉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다 들려 주었습니다. 그만큼 그의 마음은 번민과 두려움, 그리고 자기 주변사람들에 대한 실망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꿈 이야기를 듣고서 곧 바로 차분하게 대답해 주기 시작합니다. 요셉은 바로가 꿈 이야기를 들려주기 전에도 하나님께서 편안한 대답을 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있게 말하면서 바로를 위로 하였는데, 그런 요셉의 모습은 계속 변함이 없습니다. 요셉은 차분하게 꿈에 대한 해석을 들려 줍니다. 두 꿈은 한 가지를 의미한다는 것이 해석의 가장 큰 틀이었습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햇수를 의미하며 나쁜 것이 좋은 것을 먹는다는 것은 엄청난 풍년 뒤에 그 풍년을 기억조차 못할 정도의 흉년이 닥쳐오게 될 것이라는 뜻이라고 말해 줍니다. 두 번 겹쳐서 똑같은 꿈을 꾼 것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확정하셨다는 뜻이고 그래서 이 일이 속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요셉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소식이 편안한 소식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큰 풍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뒤에 그 모든 풍년을 먹어치울 정도의 흉년이 다가 온다면, 그것도 1,2년이 아니라 풍년과 똑같이 7년씩이나 계속된다면 그것은 그야 말로 끝장입니다. 그 오랜 흉년에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란 아무도 없을 것이니까요. 그래서 이 해석은 절대로 듣는 사람에게 편안한 대답이 될 수 없습니다. 사실 요셉이 말한 편안한 대답이란 이러한 풍년과 흉년에 대한 소식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흉년의 확실함과 긴급함에 대해서 알려 준 후에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나라 안에 감독관들을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그들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식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읍에 쌓아 놓게 하소서.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에 대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 


이것이 바로 요셉이 말한 편안한 대답이었습니다. 최악의 흉년이 다가오고 있지만 충분히 그 흉년을 넘길 좋은 방법이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요셉이 바로에게 들려주겠다고 했던 하나님의 편안한 대답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당장 듣기에 좋은 이야기들만을 편안한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바른 선지자들 중에서 사람들의 대접을 받았던 선지자들이 거의 없고, 또한 역사를 보면 자기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쓴 소리와 아픈 소리를 들려주는 사람이 환영을 받았던 적이 거의 없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있는 그대로 영적인 현주소를 말해 주거나 혹은 숨겨진 죄악의 위험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얼굴부터 어두워지고 귀부터 닫아 버리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오늘 본문에 비유한다면, 바로가 흉년이 오리라는 소식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바로가 요셉이 들려준 이야기를 그것이 듣기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애굽도 망하고 그 근처의 모든 나라들도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귀에 들려오는 어떤 이야기들이 바른 것이고, 또한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뜻에 일치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듣기에 어떻든지 간에 그 이야기를 경청해야 하며 또한 받아들여야 합니다. 분명히 그것 자체는 편안한 이야기, 듣기 좋은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런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는 그 다음에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편안한 대답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병원에 가서 의사의 이야기를 듣는데 그 의사가 나의 병세와 앞으로 되어질 일을 이야기하는데 좋은 이야기만 듣고 나머지는 말하지 말라고, 듣기 싫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이렇게 한다면 그 다음에 그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 수가 없고, 또 적절한 치료도 받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당장은 마음이 편하고 몸도 편하겠지만 분명히 그 병세는 깊어지게 되어 있고 그러면 그 사람은 결국 그 질병으로 사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진단과 처방, 그리고 치료는 하나입니다. 이것은 신앙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단이 없이 처방과 치료가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쓴 소리를 들어야 그 뒤에 주님이 주시는 치료책을 들을 수가 있고, 또 그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편안한 대답은 마지막에 주어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닥쳐올 큰 흉년에 대한 꿈을 꾸게 하시고 그 흉년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를 듣게 하신 것은 애굽을 망하게 하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애굽을 살리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애굽이 7년의 풍년 뒤에 7년의 심각한 흉년을 맞이하게 될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정하신 바꿀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유리하든 불리하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일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입니다. 그 일 자체 보다도 그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36절을 보면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입할 일곱 해 흉년에 대비하시면 이 땅이 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금 하늘 영광을 향하여 인도해 가고 계십니다.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이 사실 때문에 믿을 수 있는 것, 아니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삶의 과정 속에서 경험하는 모든 일들은 우리를 망하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사실 우리는 일곱 해 흉년같은 정말 어려운 기간을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선하심을 의심하게 되죠. 그러나 그 흉년같은 시간은 우리에게 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힘든 시기가 있을 때, 그 때 붙들어야 할 진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하늘 영광을 향해 인도해 가십니다. 우리가 이 믿음으로 하나님이 들려 주시는 흉년의 해결책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영적으로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스스로 망하는 길을 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인도하심 속에서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의 소리, 아픈 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혹시 일곱 해 흉년처럼 힘든 시기를 지내게 되더라도 항상 ‘하나님은 나를 망하게 하시지 않는다’는 약속을 붙들고 스스로를 고치고 또 인내함으로써 더 거룩해 지고 더 견고히 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