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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5.29. 새벽예배 -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세기 151)



창4701to12 -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151).pdf


20140529D (#1).mp3.zip





본   문 : 창세기 47장 01-12절




요셉은 참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가족이 애굽으로 오는 일이 얼마나 기쁘고 흥분되는 일이었겠습니까? 그렇지만 요셉은 그저 흥분만 하지 않았고, 어떻게 하면 자기 가족을 애굽 사람들과 부딛히지 않는 가장 안전한 곳에 머물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그 답을 찾아 냈습니다. 요셉은 야곱과 가족들이 애굽 땅에 들어오기 전에 자신과 함께 있던 유다를 먼저 보내 자신의 가족들을 맞이합니다. 요셉은 가지 가족을 고센으로 데리고 가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가족을 계속해서 고센 땅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 바로를 만나게 되면 해야 할 이야기를 일러 주었습니다. 요셉이 그 안에서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 였습니다. 첫째는 자신들이 대대로 목축업을 하는 목자들이라는 사실과 둘째로는 그러니까 고센 땅에 머물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자기 가족이 고센 땅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고센은 애굽의 중심부에서 벗어난 곳에 있어서 애굽 사람들과의 부딛히는 것을 최소화 할 수 있었고 나아가서 그 곳이 목축업을 하기에는 가장 좋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셉의 가족들이 목축업을 한다는 사실은 그들에게는 매우 불리한 조건이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목축업을 가장 꺼리는 직업 중의 하나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렇게 가장 불리한 조건을 자기 가족을 위한 가장 좋은 여건을 만드는데 사용했습니다. 그것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는 일을 통해서 말입니다. 


요셉은 식구들을 바로에게 소개하기 전에 먼저 바로에게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가족이 고센에 도착해 있다는 것을 보고했습니다. 그리고는 형제들 중에서 다섯 명 만을 선발해서 아버지와 함께 바로에게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모든 형제들을 다 데리고 들어가지 않은 것 또한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면에 우루루 모두 몰고 들어가는 것은 겸손하지 않게 보일 가능성이 있었으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바로는 요셉 가족의 직업을 묻습니다. 형제들은 대답했습니다. 자신들은 목동인데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해 더 이상 가축을 먹일 수가 없어서 이렇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니 가능하면 고센 땅에 머물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바로는 흔쾌히 허락하면서 자기 가축까지 돌봐 달라고  부탁합니다. 모든 일은 요셉이 계획한 대로 잘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은 고센 땅을 요람 삼아 양육될 준비가 다 갖추어 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야곱이 바로를 알현합니다. 야곱이 바로를 축복하며 예를 갖추자 이상하게도 바로는 야곱의 나이부터 묻습니다. 아마도 야곱의 겉모습은 야곱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질문에 대해서 야곱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 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나이를 물었으니 나이만 말하면 되는데 야곱은 마치 그 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못하고 묻어 놓았던 이야기를 하듯이 주절이 주절이 설명을 늘어 놓습니다. 야곱이 한 이야기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오히려 나이보다는 다른 것들이 더 강조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삶이 나그네처럼 정처 없는 삶이었다는 것과 또 하나는 비록 자신이 살아온 시간은 자기 아버지나 할아버지에 비하면 훨씬 짧지만 그 누구보다도 험악한 세월을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이 이야기 속에는 그 간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후회와 허무함이 그대로 녹아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야곱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야곱이 추구했던 것은 복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힘으로 복을 움켜쥐기 위해서모든 노력을 기울였던 사람입니다. 사람이 눈에 보이는 복을 추구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그것에 기대서 든든한 안정을 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충분한 복을 움켜쥐고서 안정을 누리며 떵떵거리며 살기 위해서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항상 나그네 였습니다. 항상 여기 저기 떠돌아 다녔고 단 한 번도 든든한 행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말년에 또 다시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애굽으로 살기 위해서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그토록 나그네를 벗어나고 싶어했지만 끝까지 나그네의 삶을 살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험악한 삶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보다 그의 삶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 정말 그랬습니다. 야곱의 삶은 삶 자체가 험악함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싸우며 살았습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형과 싸웠고, 엄마와 짜고서 형과 아버지와 싸웠고, 삼촌인 라반과 싸웠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그의 삶은 형과 가나안 족속들 사이에서의 투쟁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야곱은 마치 이 세상에 다른 사람들과 싸우고 그래서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 온 사람처럼 그렇게 살았고, 그래서 그의 삶은 험악함으로 채워져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누군가가 130년을 살고 나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생각나는 단어가 나그네와 험악함 밖에 없다면 그의 삶은 절대로 성공한 삶이고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야곱이 돌아본 자신의 삶이 었다는 점은 야곱처럼 하나님을 믿고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 안에서의 우리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야곱의 인생이 나그네 길과 험악한 세월이 되었던 것은 그 누가 강요한 것도, 원래부터 그렇게 살아가게 되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철저히 야곱 자신이 선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자기 인생을 정처 없는 나그네의 삶으로 만들고 싶었고 험악함으로 채우고 싶어서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야곱은 그 누구보다도 그런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태중에서 형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선택하셨고 그를 통해서 큰 나라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으니까요. 그런데 야곱은 그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맞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 힘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움켜쥐고 거기 의지해서 살려는 노력만을 했습니다. 그 노력이란 바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빼앗는 싸움이 될 수 밖에 없었고, 비록 때로는 그 싸움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나그네가 되고 삶은 더욱 더 거칠어져만 갔던 것입니다. 그는 결국 자기가 자기 힘으로 얻으려고 했던 그 삶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의 삶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평안하게 하시며 확실한 삶이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야곱의 삶은 우리를 향해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그래야 든든하고 그래야 충만하며 허무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해 줍니다. 우리는 오늘 야곱의 허무한 고백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이 고백이 우리의 삶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 날 우리의 참된 왕 되신 하나님 앞에 설 때, 나의 삶은 목적지가 확실한 삶이었고 믿음으로 살았던 가장 풍성하고 든든한 삶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여생이 얼마가 남았든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감으로써 주님 안에서 확실하고 평안한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