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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6.04. 새벽예배 - 나도 안다 내 아들아(창세기 154)


창4801to22 - 나도 안다 내 아들아(창15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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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창세기 48장(16-22)




야곱에 비해서 아버지 이삭은 정말 훌륭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나이가 들면서 육체적인 시력 뿐만 아니라 영적인 시력까지 어두워 져서 에서와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서도 그 뜻을 어기고 야곱이 아닌 에서에게 가정의 영적인 장자권을 물려 주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젊은 시절에는 우리식 표현으로 정말 개차반 같은 인생을 살았지만 애굽으로 이주해 오면서 부터는 오히려 성품이나 영적인 분별력에 있어서 더욱 더 온전해져 갔습니다. 48장과 49절은 야곱이 중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자녀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축복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 이야기 속에서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영적으로 분명한 태도와 권위를 가지고 자기 자녀들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 때 야곱은 육체적으로 쇠약해져 있었을 뿐 아니라 눈까지 어두워져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그 어떤 때보다도 확실하고 밝은 상태였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이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을 수록 신앙이 완숙해져 가고 영적으로 분명한 분별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 몸도 약해지고 정신도 흐려지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렇지만 영적으로 볼 때는 이삭이 아니라 야곱이 정상입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분별력과 성숙함은 몸이 나이를 먹어간다고 해서 당연히 흐려지고 퇴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올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이가 많다는 것은 나이가 적은 사람들보다는 아무래도 주님 앞에 설 날이 가까이 와 있다는 의미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이전보다도 더 신앙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져 가야한다는 뜻일 수 밖에 없습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내가 주님 앞에 서는 그 순간을 어떻게 하면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까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 마지막 순간의 나의 모습이 내가 영원히 누릴 하늘 영광의 크기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힘이 들어도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영적으로는 더 부지런해져야 하며, 주님을 더 사랑하고 은혜를 더 잘 챙겨야 합니다. 


야곱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더불어 병문안하기 위해서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약속을 말해 주던 야곱은 갑자기 요셉의 두 아들을 자기 아들로 삼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요셉의 형제들이 얻게 될 유산을 똑같이 나눠 주겠다고 말합니다. 요셉대신 요셉의 두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삼겠다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다른 아들들과 똑같은 상속권을 주겠다는 것은 결국 요셉에게 다른 형제가 받는 상속의 두 배를 주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였고, 이것은 결국 르우벤이 아니라 요셉을 자신의 영적인 계승자요 장자로 삼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어제 살펴본 대로 하나님께서 그 사실을 말로 표현하신 적은 없지만 이미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야곱 가문의 계승자로 선택하시고 그를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 그리고 야곱에게 주셨던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그로 인해서 애굽과 애굽 주변의 모든 나라 사람들을 살리셨고, 또한 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해 주셨습니다. 야곱은 바로 이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아들들을 부르기 전에 요셉에게 그 장자권을 물려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선택을 정확하게 분별한 행동이었습니다. 


그의 영적인 분별력은 직접 두 손자들에게 축복할 때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야곱은 눈이 어두워 누가 누구인지 잘 분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야곱의 오른 손 쪽에는 장남인 므낫세를 데려다 놓았고 왼손 쪽에는 차남인 에브라임을 데려다 놓았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갑자기 자기 손을 엇바꾸었습니다. 차남인 에브라임의 머리 위에 오른 손을 올리고, 장남인 므낫세의 머리 위에는 왼손을 올리고 둘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관습을 완전히 뒤집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축복할 때는 반드시 장남에게 오른손을 올려 주어서 그가 상속자가 되게 하는 것이 상식이고 또 철칙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야곱이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좋아하지 않으면서 장자에게 손을 올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왼손쪽에 있는 아이가 장남인 것은 자신도 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우루리라” 야곱은 하나님께서 장남이 아니라 차남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차남에게 장자권을 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분별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야곱은 이제 비록 나이가 많아 병이 들고 눈도 어두워 졌지만 영적으로는 가장 명확한 분별력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고 거기 순종하는 겸손함도 갖추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저 늙어가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나이들게 하는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더 분명한 영적인 분별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또한 더욱 더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나이가 들게 하는 이유이고 또 그렇게 하시면서 주시는 진짜 복입니다. 그리고, 성도들만이 누릴 수 있는 복이기도 합니다. 그저 나이만 들고 늙어만 간다면 예수 안에 있어도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똑같이 허무하고 똑같이 서글퍼 집니다. 성도는 그저 나이들고 그저 늙어 가서는 안됩니다. 성도는 나이가 들어도 자라나고 성숙해 가야 합니다. 영적으로는 더 분명해 지고 확고해 지며 성품적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더욱 더 겸손해져 가야 합니다. 그렇게 더욱 더 영광스럽고 고상한 사람이 되어져 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시간 속에 숨겨놓은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꼭 찾아내어서 자기 것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를 얻고 누리기 위해서 기도하며 애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 수록 하나님께서 더 좋아하시고 칭찬하실만한 속 사람을 지닌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으로 성숙되어져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