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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6.26. 새벽예배 -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 하여(출애굽기 3)



출0115to22 -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 하여(출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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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출애굽기 1장 15-22절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바로의 핍박은 점점 노골적이 되고 잔인해 졌습니다. 바로가 처음 선택한 방법은 히브리 산파를 협박해서 새로 태어나는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은밀하게 겉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구 증가를 스톱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힘을 가진 악인들의 공통적인 선택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이 위협받는 것은 가장 싫어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상상할 수 없이 잔인하고 비열한 일까지 서슴치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런 일을 행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바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겉으로는 마치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행세하지만 그가 그렇게 했던 이유는 이스라엘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히브리 산파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로가 시키는 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바로의 명령을 어기고 아이들을 살려 주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 지를 보게 됩니다. 사실상 이 두 산파는 그렇게 남자 아기들을 살리면서 자신들의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 속으로 뛰어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아기들을 죽이는 대신에 살리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단순이 그 아기들이 히브리인의 아이들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진실로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생명이 탄생하게 하는 일을 맡은 자신들이 새로 태어나는 무방비 상태의 아기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바로를 두려워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보다는 하나님을 더욱 더 두려워 했기 때문에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당연히 바로는 노발대발하면서 이 두 여인을 추궁했습니다. 왜 명령을 듣지 않고 아이들을 살려 주었느냐고 말입니다. 두 여인은 그것에 대해서 이미 대답할 말을 준비해 놓고 있었습니다. 히브리 여인들은 애굽의 여인들과는 달리 너무 건강해서 자신들이 해산을 돕기 위해서 그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출산을 해 버려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두 여인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바로도 히브리 여인들이 건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또한 확인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애굽의 왕, 신의 아들이자 지혜의 화신이라고 추앙받던 바로는 그렇게 비천한 두 히브리 여인에게 완패를 당하고 맙니다. 얼마나 통쾌합니까? 천하의 바로가 히브리 산파 둘에게 이렇게 꼼짝 없이 당하다니요. 


오늘 본문은 산파들의 이러한 행동의 결과를 두 가지로 말해 줍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산파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 백성들이 더 강해지고 번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여인의 결단과 지혜를 사용하셨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두려워 했던 두 사람의 믿음과 믿음의 결과를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바로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고 또 다른 계획을 세울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크고 강한 민족으로 만들어 가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뿐만 아니라 두 여인의 집안에도 복을 주셔서 두 여인의 집안도 흥하게 해 주셨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던 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때,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에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물론 그 사람 자신은 자신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를 수도 있습니다. 두 히브리 산파들 처럼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 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말이나 압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런 선택을 할 때, 그는 이미 스스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된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때로는 이 세상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큰 걸음으로 진행시킵니다. 또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방해하는 악한 시도들을 가로막는 역할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크게 복받은 영혼이 됩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물러설 바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바로는 악당의 자격이 없죠. 모든 악인들은 절대로 자신의 악한 계획을 포기하는 법이 없으니까요. 그렇게 하다가 자기가 망하는 한이 있어도 그 악한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악인들의 특징입니다. 실제로 그러다가 망합니다. 이제 바로의 계획은 노골적이 됩니다. 히브리인에게서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무조건 나일 강에 던져 버리라고 명령을 내렸던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민족은 끝짱이 난 것일까요?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공수표가 되어 버린 것일까요? 아닙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가실 것이고, 하나님 편에 서는 사람들을 통해 놀랍게 일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은 아무리 심한 방해가 있어도 반드시 가야할 길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이 이루어져 가는 무대와도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무대 위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 역할은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역할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하나님께 반역하며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방해하는 역할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을 위한 특별한 역할을 맡기실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목사가 되게 하고 선교사가 되게 하고 또 이런 저런 직분과 권한을 맡기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에게도 악역을 맡기지는 않으십니다. 악역을 담당하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가 그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을 위한 일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목사기 때문에 선교사기 때문에 장로이고 권사이기 때문에 심지어는 성도이기 때문에 더 심하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외부인이 아니라 내부인이기 때문입니다. 두 히브리 산파를 생각해 보면 그게 분명해 집니다. 두 사람은 새 생명에 이 세상에 나올 때 처음으로 그 생명을 돕는 사람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을 위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죠.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를 더 두려워 하고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의 편에 서게 된다면 하나님의 일에 더욱 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일수록 더욱 더 참되게 하나님의 편에 서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내부자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삐딱선을 타면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 나라에 악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15절을 보면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브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라고 말하는 데요. 이게 참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성도 여러분, 애굽 왕이 더 중요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히브리 산파가 더 중요한 사람입니까? 만약 우리가 이 이야기를 기록한다면 애굽 왕의 이름을 적겠습니까? 아니면 산파들의 이름을 적겠습니까? 당연히 애굽 왕의 이름이죠. 그런데 성경은 그 비천한 히브리 산파 두 사람의 이름은 정확하게 기록하지만 애굽 왕의 이름에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성경의 사고방식이고 하나님의 눈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사람을 바라보는 눈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왕이든 대통령이든 그 어떤 위대한 일을 한 사람이든 그가 하나님 편에 서 있지 않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무런 가치나 의미도 두지 않으십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비천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 하여 하나님 편에 서 있다면 그 사람은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도 귀하게 여기시고 그렇게 대우해 주십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기억해 주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칭찬해 주시고 인정해 주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우리에게 영원한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무대 위에서 하나님을 위한 좋은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그 역할을 정말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해 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과 계획이 성취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영광스러울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