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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7.04. 새벽예배 - 나그네가 되었음이라(출애굽기 8)


출0216to22 - 나그네가 되었음이라(출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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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출애굽기 2장 16-22절




어제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터를 잡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이 땅을 여행하는 나그네들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나그네이고 그래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일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는 가야 할 목적지가 분명한 사람이며 지금도 그 영광스러운 목적지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것이 위로와 소망이 되지만 나그네의 삶을 현실적인 면에서 보면 굉장히 불안하고 두렵게 여겨질 수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이 세상이 끝이라고 여기면서 이 세상에 터를 잡고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게 여겨집니다. 다들 그렇지 않은데 나만 나그네로 살아가려고 하니 그것이 뭔가 불안한 것이죠. 그런데, 이런 생각 속에는 나그네 삶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나그네라고 해서 홀홀단신 그저 정처 없이 믿을 구석 하나 없이 외롭고 궁핍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나그네로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열려 있습니다. 세상을 자신의 영원한 집으로 알고 살아간다고 해도 여전히 외롭고 궁핍하고 불안하고 두려울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세상을 나그네로 살아가는 것이 겉으로 보기에도 그렇지 않은 삶과 전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미디안 광야의 모세의 삶은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줍니다. 출애굽기가 보여주는 미디안 광야에서의 모세의 첫 모습은 어느 모로 보나 나그네 그 자체입니다. 이리 저리 떠돌다가 잠시 겨우 겨우 찾은 우물 곁에서 몸을 쉬는 한 지친 남자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보게되는 모세의 모습이니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광야 한 가운데서도 모세에게 사랑하며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는 가족을 만들어 주십니다. 사실 애굽에 있을 때 그에게는 가정이 없었습니다. 진짜 가족은 있었지만 함께 살 수 없는 상황이었고 신분은 애굽 공주의 아들이었지만 그는 거기서도 천덕꾸러기 히브리인이었습니다. 동족들에게는 꼴사납게 나대는 운좋은 변절자에 불과했구요. 그러나 오히려 도망자가 되어 미디안으로 나온 모세는 진짜 가족을 얻게 됩니다. 아버지를 얻고 아내를 얻었으며 아들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의 나그네인 그에게 바로 그 광야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가장 의미있는 관계를 맺게 해 주셨고, 또 거기서 여느 사람과 똑같은 평범한 삶을 일구어 가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나그네로 살아갈 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똑같은 것들을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나그네로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 신뢰하며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그들 중에서 가족을 찾게 하시고, 그들과 서로 사랑하며 살게 해 주십니다. 그 노중에서 자녀를 주시고, 생업을 주시며 또 평범한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꼭 그랬던 것 같습니다. 부르심에 응답해서 신학교에 입학하고 신대원 2학년 때 하나님께서 사역지로 보내신 곳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낳고 살고 있습니다. 또 대구로 보내셔서 여기로 왔는데 여기서도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또 의미있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역자로 또 생활인으로 말입니다. 여전히 저는 나그네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수많은 것들을 얻고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그네의 삶이라는 말은 그 말만 들으면 무언가 불안해지고 두려워지기 쉽지만 나그네의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이 겉으로 보기에도 전혀 다른 것은 아닙니다. 나그네로 살아도 나그네로 살지 않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거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갑니다. 차이가 있다면 자신이 이 세상의 나그네로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것과 그 부름에 따라 살아가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이 차이입니다. 물론 우리가 꼭 붙들고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를 단단하게 지키면서 살아가려고 해도 자꾸 흔들리는 판에 나그네로 부르신 부르심에 따라 살아가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겠지요.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이 땅 위에서의 삶이란 흔들리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붙들려고 해도 흔들리지 않으려고 해도 흔들리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그 땅이라는 것이 항시 변하고 불안정하며 흔들리기 쉽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은 우리가 아무리 이 땅 위에서 나그네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살아간다고 해도 실은 나그네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증거가 무엇이지요? 이 세상에 200년전에 살던 사람치고 지금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남아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누구나 지나가는 사람, 그러니까 나그네가 됩니다. 


그래서 실은 스스로 나그네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그네로 살기 시작할 때 우리는 억지 부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고, 우리를 얽어매고 있던 수많은 욕심과 집착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정처 없는 나그네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영원히 영광스러운 본향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흔들 수 없는 그 곳의 영원한 시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바로 이러한 보장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오히려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조금 불안할 가능성을 안고서 조금 흔들리면서 살아가는 삶은 오히려 놀이동산에 가서 청용열차를 타는 것처럼 오히려 스릴 넘치고 즐길만한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쉽게 흔들리는 세상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혜와 신실하심을 경험하게 해 주는 복된 기회가 아닐까요?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결코 흔들리지 않는 우리의 본향을 더욱 더 소망하게 되는 유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영원한 본향을 향해 여행하는 나그네임을 잊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 발은 땅에 있지만 영원한 나라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나그네 삶으로의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나그네 됨을 벗어날 수 없는 인생입니다. 그러니 나그네로 사는 것이 가장 우리답게, 가장 성도답게 사는 방법이며 이 세상에서 오히려 가장 소망넘치는 능력있는 삶을 사는 방법입니다. 이제 기꺼이 나그네 삶에 익숙해 지시는 연습을 하시고, 더욱 더 나그네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그네만이 누릴 수 있는 은혜와 소망 속에서 사람들에게 하늘나라가 있음을 보여주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