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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8.20. 새벽예배 - 그것이 피로 변하고(출애굽기 30)



출0714to25 - 그것이 피로 변하고(출3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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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출애굽기 7장 14-25절



모세가 지팡이로 뱀을 만들어 자신의 술사들이 만든 뱀들을 집어삼키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의 마음은 더 교만해지고 강퍅해 졌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고 해서, 또 하나님이 직접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낸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거기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악인들은 우리들이 보기에는 ‘왜 저러지? 저러다 정말 큰일 나지?’라고 오히려 우리들이 마음을 졸일 정도가 되어도 여전히 버티고 고집을 부릴 때가 많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들에게는 스스로 죄악을 쌓는 일이 되지만 우리들에게는 장애물과 어려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면서 사는 일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악한 사람들의 반대 때문에 약해지지 말고 계속해서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이미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일하고 계시니까요. 


하나님께서는 다시 모세를 불러서 이번에는 지팡이로 나일강물을 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나일강물이 모두 피가 되어 먹지 못하게 될 것이며, 또 그 안의 물고기들이 다 죽어 썩은 냄새가 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했습니다. 바로와 바로의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뱀이 되었던 지팡이를 들어 올렸습니다. 그러자 나일 강물이 모두 피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안의 물고기들이 죽어 악취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애굽 전역에는 가는 곳마다 피가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는 이것을 보고 이 일을 수습하려고 하기 보다는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교만을 드러냅니다. 다시 술사들을 시켜서 물을 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바로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는지 보이십니까? 나일강이 피로 변하고 또 애굽 땅의 물들이 피로 변해 썩어가는 것, 그래서 마실 물이 없어지고 그 안의 물고기들도 먹지 못하게 되는 것. 이것은 커다란 재앙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이 일을 수습해야 합니다. 그게 백성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할 일이죠. 그렇지만, 그는 오히려 정반대로 움직입니다. 자기가 나서서 재앙에 재앙을 더합니다. 더 많은 피를 만들어 애굽 땅에 물이 더 귀해지게 만듭니다. 이것이 자기 중심적이고 교만한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교만한 지도자는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자기의 자존심과 권력만 생각하지 자신이 돌보아야 할 백성들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국민들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 자신의 체면을 세우고 권력을 유지하는 일에만 전념합니다. 그것 때문에 백성들은 더 괴로워지고 힘든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어리석은 모습은 지도자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그대로 나타납니다. 교만한 사람은 정말로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알더라도 그것 보다는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고 자신을 주장하기 위해서 고집을 부립니다. 그러다가 더 큰 불행을 초래하게 됩니다. 


23절을 보면 바로의 행동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바로가 돌이켜 궁으로 들어가고 그 일에 관심을 가지지도 그들의 말을 듣지도 아니하니…” 그리고 25절은 그런 일이 일어난 후 일주일이 흘렀다고 말합니다. 그 동안 백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24절은 그 동안 백성들의 어려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애굽 사람들은 나일강 물을 마실 수 없으므로 나일 강 가를 두루 파서 마실 물을 구하였더라” 그 풍성한 흘러 넘치는 나일 강물을 옆에 두고도 백성들은 물을 구하지 못해 나일강 주변을 팠습니다. 그래서 겨우 겨우 마실 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고집과 교만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어렵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지 모릅니다.


나일 강물은 애굽의 생명물이었습니다. 애굽의 모든 문명과 풍요한 삶은 나일강물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강물을 피로 바꿔 버렸습니다. 물처럼 피도 생명입니다. 그렇지만 피는 몸 안에 있을 때만 생명입니다. 그 피가 몸 밖으로 나오면 그것은 생명이 아니라 죽음입니다. 그것은 그것 자체로 죽음일 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을 죽음으로 이끌게 됩니다. 그 날 나일강가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행하셨던 이적은 생명을 죽음으로 바꾸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하나님께 대항하는 인생과 세상이 어떤 운명에 처해지는지를 보여주신 일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떠난 인생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 인생은 산 것 같지만 산 것이 아니라 영원한 죽음으로 점점 다가가는 인생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멀리하는 인생은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죽음으로 바꾸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우리의 생명은 우리 자신의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내 몸 속에 있다고 해서 그 생명이 나의 것은 아닙니다. 그 생명은 언제나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꼭 붙들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또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그렇게 살 때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사그라들거나 사라져 버릴 염려가 없이 더욱 더 풍성한 생명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이 언제나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음을 기억하면서 그 분을  가까이 하며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서 날마다 더욱 더 풍성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