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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8.28. 새벽예배 -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출애굽기 35)


출0922to35 -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출3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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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출애굽기 9장 22-35절




하나님께서 애굽에 임하게 하셨던 열 번의 재앙. 그것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번으로 끝날 수도 있었고, 두 번으로 끝날 수도 있었고, 심지어는 생략될 수도 있었습니다. 만약 바로가 처음부터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면 자신과 자신의 백성들은 그 수많은 견디기 어려운 일들을 그냥 건너 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견디기 힘들 때는 이 재앙을 거두어 들여 준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주겠다고 말했지만 그 재앙이 거둬들여지면 곧바로 마음을 바꿔서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런데 일곱번째 재앙이었던 우박 재앙은 보통 재앙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에서 주먹만한 우박이 떨어지는데, 얼음덩어리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까지 섞여서 떨어져 내렸습니다.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하늘에서 주먹만한 얼음덩어리와 불덩어리가 하늘에서 수도 없이 떨어져 내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얼음은 모든 것을 파괴했습니다. 25절을 보면 나무까지 꺾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다가 얻어 맞으면 즉사입니다. 약한 지붕은 한 방으로 뚫려 버립니다. 그런데, 그 우박 속에는 불덩어리들도 섞여 있습니다. 얼음덩어리들이 부순다면 불덩어리들은 부술 뿐만 아니라 태워 버립니다. 이것이 한 두 시간이 아니라 하루 종일 계속되니 그야 말로 애굽은 완전히 파괴되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정말 다급해진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 들였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들은 악하도다.” 참 재미있습니다. 이번은 자신이 범죄하였다니 그러면 그 이전에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뜻입니까? 참 인간이란 그렇게 급한 상황 속에서도 그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려고 버둥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어쨋든 바로가 하나님을 하나님의 백성과의 언약을 지키시는 의로운 분이라고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고 하나님께 반항했던 자신과 자기 백성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뉘우친 것이니까요. 


모세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우박을 멈추게 해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이 바로가 아니라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알게 해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말 끝에 모세는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그러나 왕과 왕의 신하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아직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줄을 내가 아나이다” 모세는 어쩌면 바로 자신도 모르고 있었을 지도 모를 바로의 마음을 읽어 냅니다. 모세는 지금 바로의 뉘우침은 참된 뉘우침이 아니라 급한 불만 끄면 금새 제 자리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 대에는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그러나 밀과 쌀보리는 자라지 아니한 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께서 내리신 우박은 보리와 삼 농사를 완전히 망쳐 놓았습니다. 그렇지만 밀과 쌀 보리는 아직 싹도 나지 않았으니 타격을 입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바로가 이 위기만 지나면 그것을 생각하고 또 다시 마음을 바꿀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우박으로 애굽을 망하게 하는 것 자체가 그 우박을 내리신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세는 손을 뻗어 우박을 그치게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발등의 급한 불을 끈 바로는 또다시 마음을 바꾸고 입을 씻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사람이 이럴까 싶지만, 사실 바로만 이런 모습인 것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모습이고 실은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도 이런 모습을 반복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만 해도 그런 것 같습니다. 급하고 힘들 때는 그렇게 다급하게 하나님을 찾고 도와 달라고 부르짖지만 그 어려움이 끝나고 조금 살만해 지고 또 의지할 것이 생기고 나면 얼마나 쉽게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지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일을 얼마나 자주 반복하면서 사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연약함이고 또 완악함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바로의 그런 모습을 어리석은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또 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속에 있는 바로를 닮은 모습 또한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바로를 악하다고 판단하셨다면 우리의 그런 모습 또한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사람의 마음과 영혼에는 경향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 번 어떤 방향으로 길이 나면 계속 그 방향으로 가게 되고, 거기에 너무나 익숙해 집니다. 처음에는 그래서는 안되는데 하다가도 결국 그렇게 하는 것을 너무나 편안해 하고 나중에는 그것을 깨뜨리기 싫어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신앙적으로 진지해 지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영적으로 게을러지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두번은 그것이 좋지 않은 일로 여겨지지지만 나중에는 그렇게 되는 일에 너무도 익숙해 지고, 결국에는 당연한 것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분명히 우리는 우리의 이런 모습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우리 속에서 이런 모습들을 조금씩 조금씩 청산하는 일에 있어서도 성숙하고 성장해 가야 합니다. 우리의 체온이 일정하게 유지되듯이 우리의 영적인 열정 또한 변함없이 유지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고, 점점 더 뜨거워지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 힘씀이 우리의 신앙이 제 자리를 지키도록 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우리 안에 있는 바로를 닮은 모습을 인식하고 그 모습과 싸워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끝나면 제 자리로 가는 우리가 아니라 그 어려움을 통해서 더 뜨겁고 성숙한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