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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8.29. 새벽예배 - 어느 때까지(출애굽기 36)


출1001to11 - 어느 때까지(출3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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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출애굽기 10장 1-12절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고집을 부리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거나 순종하지 않는 것을 보면 ‘도대체 왜 저럴까, 왜 저렇게 어리석을까, 간단한 길을 왜 저렇게 돌아서 갈까?’하고 생각하지만 막상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만 하는 순간이 오면 그 순종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은 그저 아무런 장애물이나 어려움이 없는 상태에서, 아무 것도 내려놓거나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익숙해져 있는 것, 편안한 것, 하기 싫은 것이나 습관 같은 것들을 내려놓아야만 순종이 가능한 상황에서 순종이 요구되기 때문에 순종으로 가는 길이 험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우리가 순종하기 위해서 내려놓고 포기한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좋은 것들을 주십니다. 그러나 순종 자체는 참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열 가지의 재앙을 살펴보면서 계속해서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바로의 이해할 수 없는 고집입니다. 그리고 그 고집이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이어지는 것도 보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영적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이유 없는 반항심과 거부감 말입니다. 바로는 애굽의 잡신들을 섬기고 있었으니 히브리인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참 신으로 인정하기도 싫었을 것이고 또 인정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자신도 일종의 신이었으니 듣도 보도 못했던 신에게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보면 바로가 그렇게 두드려 맞고 혼수상태가 되면서도 끝까지 버티면서 고집을 부렸던 진짜 이유는 그런 영적인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여러 번 반복되어 기록된 이유지만 오늘 본문에 그 이유가 가장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박이 그치자 바로는 또 마음을 바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주지 않겠다고 버텼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메뚜기떼 재앙을 보내셨습니다. 그것은 우박 재앙에도 남겨진 식량들과 식물들을 모조리 쓸어 버리게 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제 이집트에는 더 이상 초록색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한 것은 바로가 아니라 바로의 신하들이었습니다. 신하들의 입장에서는 바로가 정말 답답했습니다. 더 이상 바로가 두려워서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단으로 바로를 만나 항의하며 청원했습니다.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 알지 못하시나이까?” 이 말을 듣고 무엇을 깨달았는지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 들여서 나가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모세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어른과 아이들, 가축들까지 다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런데, 바로는 그 제안을 거절합니다. 바로는 그냥 남자들만 나가서 제사를 드리고 오라고 말하면서 “내가 너희와 너희 어린 아이들을 보내면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함과 같으니라 보라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라”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게 번역해 놓았지만 이 말은 이런 뜻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아이들까지 다 애굽에서 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더 이상 하나님께서 애굽을 봐주실 이유가 없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애굽을 제한없이 마음껏 혼내 주실 수 있습니다. 바로는 모세가 그렇게 하려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나가려고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세와 아론을 궁에서 내쫓아 버렸습니다. 


그냥 듣기에는 바로가 두려워서 그러는 것 같지만 그것은 그저 핑계에 불과합니다. 아이들을 내버려 두고 갈 수는 없습니다. 바로는 바로 그것을 노렸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서 말입니다. 바로는 애초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줄 생각이 없었지만, 신하들이 자신을 비난하니까 보낼 수 없는 이유를 모세와 아론에게 뒤집어 씌워 버렸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로는 왜 이렇게까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집착하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아주 중요한 노동력이었기 때문입니다. 400년 넘게 애굽에 얹혀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해 주는 일꾼들이 되었습니다. 건축 사업이며, 목축업이며 힘들고 애굽사람들이 꺼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들이 완전히 애굽을 떠나는 것 보다는 그런 두려움을 감수하는 편이 훨씬 더 이익이었습니다. 만약 이들이 하루 아침에 모두 빠져 나가 버린다면 국가 체계는 엉망이 될 것입니다. 애굽을 밑에서 떠 받쳐주는 중요한 기둥 하나가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되어 버릴 것이 뻔합니다. 그래서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을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가 끝까지 지켜내려고 했던 그 나라의 기둥을 하나씩 하나씩 흔들어 놓으셨습니다. 재앙이 여덟 번째에 이르자 이제는 더 이상 애굽은 지탱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바로는 끝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기하지 못하고 붙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순종을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개 순종을 방해하는 것들은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고 그래서 포기하기 힘들어 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이것이 꼭 필요해서 붙드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다 보면 그것이 칩착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집착이 되어버리는 그 순간 부터는 생각보다 집착이 앞서게 되어서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지불해야 할 댓가가 그것을 지킬 때 얻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게 되어 버리고 맙니다. 신하들은 고집을 부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붙들고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들을 내보내는 것이 애굽에게 훨씬 더 이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 붙들고 있다가는 정말 나라가 망해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죠. 그런데, 바로만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알아도 계속 이스라엘 백성들을 붙들어 두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에게는 필요를 넘어서서 집착의 대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복되고 영광스러운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을 섬기려면 우리는 우리가 집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살펴야 하며, 그렇게 집착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실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느끼는 것보다 우리에게 훨씬 덜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니, 그것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는 일이야 말로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는 일이며, 또 하나님 앞에서 복된 삶을 살게 되는 첫 걸음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뺏기 위해서 뺏으시는 분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을 붙들고 있으면 우리가 행복하지 못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세워지지 못하니까 우리를 더 복되고 온전케 하시려고 그것을 우리 손에서 놓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가 집착하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렇게 하기를 요구하시는 분이 바로 지극히 선하신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해 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집착하고 내려놓고 힘들어 하는 것들을 가지고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붙들고 있으면 영적인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되어 자신에게 진실로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처럼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이어지게 될 때가 많습니다. 혹시 내가 지금까지 고집부리면서 집착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잘 살펴 보시고, 있다면 조금씩 조금씩 거기서 자유로워지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붙들고 있는 여러분의 손을 펴시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손에 쥐어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순종으로 인해 날마다 더 자유로워지고 더 풍성해져 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