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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11.19. 새벽예배 -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1(출애굽기 80)





본   문 : 출애굽기 22장 16-27절




오늘 본문에는 여러가지 율법들이 섞여 있습니다. 가장 먼저 다루고 있는 것이 어떤 남자가 결혼도 하기 전에 여인을 유혹하여 관계를 맺은 경우인데요. 제가 보기에는 이 법은 오늘 본문보다는 어제 본문과 함께 보아야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여자들은 결혼하기 전에는 자녀이면서도 동시에 아버지에게 속해 있는 소유물적인 개념도 함께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어떤 남자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인을 유혹하여 관계를 맺으면 그 사람은 그 아버지에게 값을 지불하고 그 여인과 결혼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만약에 그 아버지가 그 남자에게 딸을 주려고 하지 않으면 그 때는 그 딸에게 비록 금전으로지만 배상을 해야만 했습니다. 자신이 입힌 피해와 상처에 대해서는 스스로 정당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리가 여기에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당, 짐승과 행음하는 자 그리고, 다른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자는 살려두어서는 안된다는 조항이 이어집니다. 중간에 짐승과 행음하는 것은 얼핏 보면 아주 지저분한 성적인 범죄로만 보이지만 사실 그 당시에 이 수간은 일종의 제사행위였습니다. 그래서 세 가지 모두 이방신을 섬기는 문제에 대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범죄에 관한 한 예외를 두지 않으셨습니다. 이방신을 섬기는 것은 곧 하나님을 그야 말로 대놓고 멸시하는 것이며, 백성이 왕에 대해서 반역하는 것이고,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에게로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하나님 아닌 다른 신을 믿고 섬기는 일에 대해서 얼마나 심하게 노하고 계신지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서의 이야기이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는 절대로 통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고 거기에 제사드린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깨뜨릴 수 없는 언약 가운데서 온전히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책임을 말해주는 내용인데요. 그 당시는 이방인 나그네들만큼 취약한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당하고 빼앗겨도 하소연할 곳조차 없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이런 사람들을 절대로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은 자유롭게 되었고, 또 자기들 중에 나그네들을 두고 살아가고 있지만 예전에 애굽에 살 때는 이들이 바로 나그네였습니다.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나그네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그들이 자신들이 자유를 얻었다고 해서 자기들 중에서 가장 약한 자들로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들을 애굽인들이 자기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압제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그들이 자신의 옛 처지와 하나님의 은혜를 동시에 잊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의 옛 처지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서 살아가는 것을 정말 싫어하십니다. 사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스스로 망가져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를 잊어버리면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또 하나님을 함부로 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또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주이시고 또 구원자이십니다. 그래서 과거를 잊으면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잊기 되고 은혜를 잊어버리면 근원을 잊고 또 구원자를 잊게 되는 것입니다. 온 세상에 자기 밖에 없는 교만하고 차가운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히 우리 성도들은 자신의 과거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그러면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지켜낼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은 이방인이 아닌 동족들 중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에 대한 조항입니다. 먼저 본문에 나오는 ‘고아와 과부’는 그 당시 가난한 사람들, 대책없는 사람들의 대명사 격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이런 고아와 과부를 못 살게 굴거나 그들에게 해를 입히면 절대로 참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그렇게 해서 고아나 과부가 하나님께 하소연 하면 하나님께서 그 소리를 듣고 직접 이스라엘 백성들을 칼로 치실 것이고, 그래서 그들의 아내들을 과부로 만들고, 그들의 자녀들을 고아로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그 동안 보호해 주셨던 특별한 보호를 거두어 들이시고 이방인들의 칼날에 그대로 노출 시키시겠다는 뜻이었습니다. 


한 사회가 얼마나 인격적인가, 얼마나 성숙하고 선한가 하는 것은 곧 그 사회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배려해 주고 또 돌보고 있는가 하는 것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함부로, 그리고 무시하는 사회는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 안에 아무리 많은 예수믿는 사람들이 있어도 예수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만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 드릴 수가 없고, 그래서 하나님이 그 사회를 더 귀하게 여기게 만들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합니다. 공직이나 정치계에 있는 크리스찬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함께 살아가는 약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손해를 당하지 않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또 그렇지 않은 우리같은 사람들은 주변에 있는 약한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그들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되는 것은 물론이고, 더 많이 생각해 주면서 할 수 있는대로 그들의 필요를 공급해 주기 위해서 애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약 그런 사람들이 해를 입고 억울한 일을 당해서 눈물을 흘리거나 한숨 짓는다면 커다란 징계를 내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어떤 사회가 반대로 이렇게 약한 사람들을 보호해 주고 또 웃게 해 준다면,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웃음 소리를 들으신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회를 특별히 기뻐하시고 선대해 주실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안다면 우리 개인의 삶이나 혹은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복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주변의 약하고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가난한 이웃에게 돈을 빌려준 경우나 혹은 가난한 이웃의 옷을 담보잡고 돈을 빌려준 경우 어떻게 해야한다는 말씀 또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반 법은 빌려준  사람의 권리가 중심이지만, 하나님의 율법은 그렇게 돈을 빌릴 수 밖에 없었던 가난한 이웃의 딱한 사정이 중심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웃이 돈을 빌려 간 경우 그에게 이자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하셨고, 옷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준 경우에는 해가 지기 전에는 다시 돌려주어서 기온이 뚝 떨어지는 밤을 알몸으로 보내지 않게 배려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아서 그 가난한 이웃들이 한숨짓고 눈물 흘리는 날에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귀 기울여 듣겠다고 으름장을 놓으셨습니다.


우상숭배에 대한 율법과 가난한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이 뒤섞여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거룩이 무엇인지를 잘 알려 줍니다. 거룩은 단순히 우상만 섬기지 않고 하나님께만 예배드린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참된 거룩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그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갈 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자비를 닮은 자비가 자라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거룩해 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거룩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거룩이 됩니다. 우리 모두가 항상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며 자비를 베푸는 마음을 잊지 말고 온전히 주님만 섬기는 참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빚어져 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