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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11.26. 새벽예배 - 일곱 째 해에는... 일곱 째 날에는...(출애굽기 84)





본   문 : 출애굽기 23장 10-15절




오늘 본문이 안식년에 대해서 먼저 말한 다음에 안식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순서상 안식일에 관한 말씀을 먼저 묵상해 보겠습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볼 때, 쉼, 그러니까 안식은 지친 몸이나 마음의 재충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만 여겨지고 있습니다. 물론 쉼은 그것을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의 에너지는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고갈되어 버리니까요. 그래서 쉬어 주어야 할 때, 쉬지 않으면 결국 어느 순간 그 에너지가 바닥나 버리게 되는데, 실제로 이것 때문에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서 일주일의 하루, 주일이라고 부르는 날을 이런 목적을 가진 날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재충전 하는 날로 말입니다. 물론 주일날 일을 하지 않고서 쉬어주면 분명히 몸과 마음은 어느 정도 회복됩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우리가 주일을 쉬는 날 개념으로 이해하게 되면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쉬어도 되지만 쉬지 않아도 되는 날처럼 생각하게 되고, 다른 일이나 혹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언제든지 임의대로 할 수 있는 날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주일은 사람이 이런 저런 필요 때문에 만들어 낸 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꼭 지키라고 주신 날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하시면서 정해주신 날은 주일이 아니라 안식일입니다. 요일로 하면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지요. 그래서 이제 안식일은 없어졌다고, 적어도 기독교 안에서는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기독교 안에서 안식일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주일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하루를 쉬는 주일은 그 날이 안식일 이었을 때보다 훨씬 더 무겁고 중요한 날이 된 것입니다. 주일이 왜 주일이 된 지는 잘 아시죠? 그 날 우리 주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의 날’이라는 뜻으로 주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날 두 가지를 함께 기념해야 합니다.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의 창조와 하나님께서 그런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이시라는 것이고 나머지 한 가지는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주일이 이 두 가지를 기념하는 날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되돌아 가고, 또 부활의 소망을 새롭고 풍성하게 하는 날이 바로 주일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살다가 보면 자꾸 하나님 아닌 것이 나의 주인의 자리에 앉을 때가 있고, 우리도 모르게 그것을 그냥 내버려 둘 때가 있는데, 주일은 무엇보다도 그것을 바로 잡는 날입니다. 또 우리가 눈에 보이는 세상, 손으로 만져 지는 것들 속에서 살다가 보면 거기에만 소망을 두고 살게 되기 쉬운데, 우리가 진실로 바라보며 살아야 할 것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라는 것과 지금 내가 사는 것은 이미 부활의 생명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새롭게 확인하는 날이 바로 주일입니다. 


그런 것을 새롭게 하고 또 다시 확인하고 제 자리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서 굳이 하루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쉴 필요가 있겠느냐는 질문이 생길 수 있지만, 사람은 하던 일, 특히 자신의 생계나 혹은 자기 실현을 위한 일을 계속하면서, 그렇게 손에 꼭 쥐고 있는 일을 전혀 내려놓지 않으면서 그런 회복을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몰두하고 때로는 집착하며 욕심을 부리게 하는 그런 일들과 거리를 두고 마음과 영혼에 빈 공간을 만들어야만 그 공간을 통해서 그런 회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과연 한 주에 단 하루도 제대로 시간을 내서 충분히 창조주이고 만물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또 내가 부활을 약속받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하지 않고서 과연 그 사람이 참 성도로 제 자리를 지키며 능력있고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것을 율법적이고 형식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그러기에는 너무 복잡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와 중요성을 무시한 채로 모든 것을 경제적인 가치만으로 환산하면서 움직이는 그런 나라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세상의 일원으로 살다가 보면 어떤 조직에 속해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주일날도 일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꼭 다른 날이라도 최대한 많은 시간을 내어서 그 날을 자신을 위한 안식일과 주일로 삼으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특히 꼭 한 번은 주중 예배에 참석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고 성도로서의 자기 자리로 되돌아 갈 수 있는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충분히 선택이 가능한 일인데, 그리고 주일을 지킬 수 있는 상황인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런 경우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부터 피치 못한 상황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하는 것은 스스로가 자신의 양심으로 결정해야 할 사항이지만 제가 드리는 말씀이 주일을 자기 주관대로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말씀은 절대로 아닙니다. 안식일은 꼭 지키라고 하셨으니까요. 이것이 원칙입니다. 


오늘 말씀은 안식일에 대한 말씀이라서 오늘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가 구약의 안식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잠깐 살펴 보았는데요. 오늘 말씀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일하지 말라는 것이고 또 쉼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을 돌보고 있는 이방 나그네들이나 종들까지, 심지어는 짐승들까지 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모든 피조물들이 안식을 누리게 해 주어야 할 책임이 믿는 사람들에게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지만, 만약 나는 쉬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나 짐승을 일하게 한다면, 그 때도 나는 여전히 안식하는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에는 여전히 사는 문제에 묶여 있고, 그 날까지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사용하는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은 다른 이름이 아니라 안식일이라고 부르신 것 같습니다. 이 날이 무엇을 가장 우선시 해야 하는 날인지를 잊으면 안되니까요. 타락하기 이전의 아담과 하와에게도 안식일은 있었습니다. 그들도 자신의 삶과 이 세상을 섬기기 위한 일을 손에서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살피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날이 필요했다면 이미 타락하여 자기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것들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고서, 하나님이 아니라 그런 것들이 자신의 삶을 지탱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 우리들에게 이 날의 쉼과 안식은 얼마나 더 절실하게 필요하겠습니까? 


최소한 주일은 주일답게 지켜져야 합니다. 주일은 절대로 신앙을 위한 의무방어전아닙니다. 예배 한 번 드리면 제대로 지켜지는 그런 날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성도들에게 필수 중의 필수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가족으로 아버지되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 또 하나님의 말씀으로 어그러지고 비뚤어진 곳을 바로 잡는 가장 집약된 시간이 예배인데, 이것은 사실 주일을 주일되게 하는 출발점이지 완성지점이 아닙니다. 그 나머지 시간은 최선을 다해서 그 예배를 통해 얻은 은혜와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묵상하며,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그것을 생각하고 자신을 제 자리로 되돌려 보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정말로 그 날이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날이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주일이 참 안식일이 될 때, 우리의 일상생활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맛보며 사는 그런 삶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영원하고 완전한 안식을 소망하며 사는 그런 삶이 될 수 있습니다. 항상 주일을 정말로 소중하게 여기시고 그 주일을 주일 답게 지내는 일에 헌신하셔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으로 풍성한 우리의 일상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