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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11.27. 새벽예배 - 일곱 째 해에는... 일곱 째 날에는 2(출애굽기 85)






본   문 : 출애굽기 23장 10-13절




어제는 안식일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았는데요. 사실 안식일을 지키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원래 쉬게 되어 있는 조건으로 일하고 있는 회사원들이야 안식일, 그러니까 주일을 지키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상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는 큰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아예 주일을 지키는 일을 완전히 당연한 것으로 여길만큼 신앙이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 주일날 가게 문을 닫는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한 주간 중에서 가장 매상이 높은 날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이 동네에 있는 어떤 잘 되는 삼계탕 집은 모 교회 성도가 운영하는 집인데, 한 동안 주일날 결단을 내리고 문을 닫았었습니다. 그런데, 요전에 보니 다시 주일날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많은 돈의 유혹을 이길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도 그렇겠지만 반대의 경우도 그렇겠지요. 주일날 영업을 하지 않으면 경제적인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에 그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하나님은 일주일 중의 하루 그러니까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지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넘어서서 칠 년을 단위로 칠 년이 되는 해를 통째로 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을 전제로 주신 법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농업을 주업으로 삼을 것을 전제로 놓고 주신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6년만 일하고 7년 째 되는 해에는 농사를 때려 치우고 안식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물으나 마나지요. 7년 째 되는 해의 제대로 된 소출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씨도 뿌리지 않고 가지치기도 하지 않는데, 어찌 밀과 보리가 자라겠고 또 포도열매가 제대로 열리겠습니까? 상황이 이렇게 되면 8년째는 심각한 기근에 시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라고 일방적으로 명령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런 명령을 내리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저절로 자라는 곡식과 열맨는 가난한 자와 들짐승들이 먹게 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만 아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은혜로 받은 선물을 자기만 누리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는 은혜의 혜택이 그 사람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이나 심지어는 광야를 떠도는 짐승들에게까지 흘러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렇게 처음에 아담이 하나님께 받았던 소명을 따라 세상에 복이 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분명히 이 안식년 규정은 안식일 규정과 맥락이 같은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과 그 백성들이 사는 땅 안의 모든 것을 안식하게 하시기 위한 규정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쉬어야 할 기간이 하루가 아니라 일년이기 때문에 이 규정을 지키는 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해 보이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보기에 불가능한 하나님의 약속이나 명령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들을 발견할 때마다 너무 쉽게 ‘이건 현실적이지 않아, 이건 불가능해.’라는 꼬리표를 붙여 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그 명령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아니면 아시면서도 우리를 골탕먹이려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우리가 성경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명령이나 약속을 만날 때마다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런 약속들이나 명령들 뒤에는 “그 불가능한 부분은 내가 가능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이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안식년을 지키라는 불가능한 약속 뒤에는 “너희는 내 말대로 한 해를 쉬어라 그러면 나머지는 내가 다 책임져 주겠다”는 말씀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안식년 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약속의 땅 안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 주신 율법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달아보는 저울이기도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안식년을 지키면 6년째 되는 해 2년 동안의 식량을 넉넉하게 거둬 들이게 해 주시겠다고 직접 약속하신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 그리고 반석에서 솟아나는 생수를 공급받아 살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율법을 지켜야 할 때쯤이면 그런 세월이 40년을 넘어서게 될 것이구요.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년을 지키면서 하나님께서 그 2년 동안 쓸 것을 공급해 주실 것을 믿는 것은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것은 최대한의 믿음이 아니라 최소한의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안식년이란 어떤 의미가 있고, 또 이 안식년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안식년은 본문에도 나와 있듯이 안식일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안식년은 그저 쉬는 해가 아닙니다. 안식년은 자기 소유의 땅에서 나온 수확으로 가난한 자들과 들짐승들을 먹이고 또 쉬게 하는 해입니다. 그래서 이 안식년 속에는 쉼과 더불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게 안식을 누리게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먹는 것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안식은 전혀 안식일 수가 없는데, 안식년에는 내가 그 먹는 것이 해결되지 않은 피조물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주는 작은 통로가 되어서 그들에게 참된 쉼이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기간이 바로 안식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안식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인간을 내신 목적대로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을 챙기는 삶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이나 혹은 이 세상의 피조물들을 섬기고 돌보는 기간이니까요. 다른 사람과 이 세상을 위해서 섬기는 것, 이것은 하나님께서 처음에 아담에게 맡기셨고, 그 후에 믿음의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맡겨오신 소명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바로 그 소명이 이스라엘 전체에게 맡겨졌다가 지금 우리에게로 넘어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년이란 그렇게 본래의 부르심을 확인하고 또 자기 자리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한 해 였던 것입니다. 일주일에 하루를 안식일로 지키듯이 칠 년 마다 한 해씩을 자신도 안식하고 또 다른 모든 것들을 안식하게 해 주는 일을 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꼭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자신의 삶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욕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하나님의 나의 넉넉한 공급자가 되어 주신다는 믿음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믿음을 증명해 보이고 또 연습하는 시간이 안식년이었던 것입니다. 


성도는 안식년을 흉내내며 살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필요에 대한 문제로 두려워 하고 근심하며, 또 그래서 욕심내며 살아갈 때, 그런 문제들은 모두 하나님께 믿음으로 내어 맡기고 다른 이들을 섬기고 또 안식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안식년을 흉내내며 살아갈 때, 우리의 삶 또한 안식년의 평안함과 풍성함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안식과 다른 이들의 안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의 삶이 진짜 안식으로 채워진 안식년을 닮은 삶이 되려면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안식을 더해 줄 수 있는 모양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다른 원리로 살아야 합니다. 그들이 다다익선을 원리로 삼아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원리로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근심과 걱정을 넘어서서 섬기고 베풀며 나누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안식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처럼 풍성한 존재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안식년을 흉내내며 사시기 바랍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사는 삶, 그래서 욕심을 내며 사는 삶이 아니라 나도 쉬고 다른 이들도 쉬게 하는 안식이  넘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님이 주시는 안식으로 가득 차게 해 주시고 또 우리의 안식이 다른 사람들의 참 안식으로 이어지는 복을 누리게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