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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11.28. 새벽예배 -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출애굽기 86)





본   문 : 출애굽기 23장 13절




오늘까지 우리는 꽤 오랫동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을 살펴보고 있는데요. 아마도 어쩌면 여러분들 중에서는 이런 것들이 예수 믿는데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세세하고 또 이미 율법은 지금 예수를 믿는 우리들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고 여겨지니까요. 그렇지만 예수 믿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는 예수를 믿고나서 곧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날 우리 주님이 다스리시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되기 전까지는 이 세상에서 발을 붙이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런 세세한 것들을 찬찬히 살펴 보고 그 원리들을 우리 삶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이런 세세한 것들이 우리의 길 안내자가 되어서 우리를 예수 믿는 사람다운 예수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큰 은혜 한 번 받으면 다 된다, 한 번에 모두 새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만큼 큰 오해가 없습니다. 물론 은혜를 알고 또 은혜를 받게 되면 그 은혜의 풍성한 능력으로 삶이 큰 부분에서 수정되고 새로워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를 믿지 않다가 믿게 되는 것처럼 큰 틀에서만 바뀌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큰 틀 안에 들어 있는 것들도 하나씩 새롭게 바뀌어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꼭 바뀌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생을과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각 부분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사고방식이 새로워지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을 다시 배워는 과정을 꼭 거쳐야 하는데, 우리의 삶 자체가 복잡하기 때문에 그렇게 새롭게 배워야 할 기준들도 무척 세세하고 또 복잡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지만, 그래서 잔소리로 치자면 하나님보다 더 한 잔소리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적어도 우리가 느끼기에는 정도 이상으로 세세하게 하나님을 섬기면서 사는 방식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런 것들이 대개 일반적인 상식이나 도덕, 그리고 법률들의 기준을 훌쩍 뛰어 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너무 과도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직전에 살펴본 안식일과 안식년에 관한 율법만 보아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지킬 필요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사실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율법이었습니다. 안식일과 안식년을 형식적으로 지켜야 하는 날로 생각하건 아니면 그 안에 있는 정신을 지켜내려고 하건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왜 우리만 꼭 주일에도 쉬지 않고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려야 하며, 또 교회와 하나님을 섬기는 날로 드려야 합니까? 우리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든데, 왜 우리만 우리의 삶의 일부분을 다른 사람들과 이 세상을 섬기기 위해서 나누어야 합니까? 왜 유독 우리만 그렇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인 우리들이 그저 그렇게 적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사는 사람들로 머물러 있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만큼은 원래 지음받은 그대로의 모습을 회복해 가면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사람들로 살아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적당히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편하게만 살고 싶은 욕망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욕망들이 내려놓아야 할 욕망이며 마땅히 포기되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예수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절대로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과정이란 하나님의 자녀다워지고 하나님의 백성다워지는 과정인데, 그런 욕망이 떨쳐 버려야 할 장애물이라는 것 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과정을 거치는 내내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 믿는 일의 본질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길을 걷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는 하나 하나 그저 편하고자 하는 욕망들을 내려놓을 때마다 얼마나 즐겁고 자유로워지는지 모릅니다. 그 것이 결코 쉬운 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길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 길에서 얻는 것은 그것을 얻기 위해서 내려놓아야 할 것과는 서로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년과 안식일에 대한 율법을 말씀하시고 나서 절기에 관한 율법으로 넘어가기 전에 굉장히 뜬금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하지 말지니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미 일러준 것들을 모두 잘 지키라는 말씀은 당연히 하실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갑자기 다른 신들은 그 이름도 부르지 말고 입 밖에 내지도 말아서 내가 그 이름조차 듣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분명히 앞뒤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씀입니다. 물론 모든 율법들보다, 그러니까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나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는 것보다 이것이 비교도 안되게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강조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도 있겠지만 저는 여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흔쾌히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고 하고서 이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시시콜콜한 율법들, 그리고 다른 나라 백성들은 생각조차 할 필요 없는 이런 과도한 법들을 여기까지 들었다면 그들의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 끼어들기 시작했을까요? 우리가 자녀를 키우다 보면 자녀들이 부모의 요구에 반발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레파토리가 “내 친구네 집은 안 그래!”라는 말입니다. 물론 사실일 것입니다. 그 친구네 집은 안 그렇겠지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집이 그 집을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가정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철학이 다르고 또 가풍이 다르니까요. 그래서 그럴 때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럼 그 집 가서 살아! 네가 아빠의 보호 아래 있는 동안에는 아빠를 따라야지.”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갑작스럽게 “내가 네게 이른 모든 모든 일을 삼가 지키며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하지 말지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 때쯤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속에 불만이 생길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애굽 신들은 안 그렇던데요? 바알신은 안 그런다고 하던데요? 왜 우리만 유독 그렇게 하죠?”라는 말이 그들의 목구멍 까지 올라와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딴 집 신들은 말도 하지 마라. 너희는 나를 믿고 섬기는 백성들이다. 그러니 너희는 내가 말하는 것을 다 최선을 다해서 지켜야 한다”고 말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것은 다른 신들을 섬기거나 혹은 다른 종교를 믿는 것보다 매우 매우 까다롭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그런 종교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기 때문입니다. 수준 높으신 하나님께서 그 분의 자녀인 우리도 그 분처럼 수준 높은 존재와 삶을 지니게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우리를 향한 그 기대와 요구가 바로 우리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려면 그런 요구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거나 피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할 때 못하더라도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만큼 우리가 영광스럽고 빛나는 존재가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하나님 나라의 가족으로서 그 나라의 수준에 맞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 애쓰고 힘써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나를 향한 요구 속에서 하나님의 기대와 사랑을 읽어냄으로써 항상 즐겁게 이 거룩한 길을 가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