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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12.03. 새벽기도회 -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2(출애굽기 88)







본   문 : 출애굽기 23장 14-19절




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 절기에 대해서 짧게 묵상해 보았습니다. 세 절기는 무교절, 맥추절 그리고 수장절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세 개의 절기 중에서 무교절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은 이 무교절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스라엘 백성이 되게 만든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이며, 또한 나머지 두 절기의 은혜가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되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호자, 인도자, 그리고 공급자가 되어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신 일에는 그 뒤에 이어질 일들에 대한 모든 보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를 통과해 가는 내내 인도자와 보호자와 공급자가 되어 주시며 대신 싸워 주시고 승리를 주시겠다는 보장, 그리고 나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겠다는 보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 속에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처음 구원을 받게 되는 그 순간부터 우리가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겠다는 보장이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구원이라고 부르는 것의 풍성함이며 든든함입니다. 구원의 풍성함을 누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렇게 풍성한 구원을 확실히 붙드는 믿음을 가지면 그 믿음을 통해 정말로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서 평안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어제 빼놓은 부분과 18절과 19절을 살펴 볼텐데요. 먼저 15절을 보면 마지막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빈 손으로 내 앞에 오지 말지니라” 이 부분은 무교절 뿐만 아니라 나머지 두 절기를 지키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중요한 원칙이기도 합니다. “빈 손으로 내 앞에 오지 말지니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절기를 지키라고 하시면서 특별하게 반드시 그렇게 해야한다고 당부하신 말씀이라는 것은 아마도 우리에게는 조금 이해하기 힘든 일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이 말씀을 볼 때, 대번에 헌금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 헌금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이미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처음 주셨을 때는 이것이 헌금이 아니라 제물과 예물을 가리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헌신과 감사, 그리고 믿음의 표현이라는 본질에 있어서는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에는 헌금의 개념이 참 많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보기에는 기독교의 헌금이 불교의 시주의 개념을 덧입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시주는 복을 받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독교 신앙의 헌금은 그런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멉니다. 이것부터 분명히 알아야 헌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옛날의 현물이든 아니면 오늘날의 현금이든 그 모든 것은 전부다 삶과 노동의 열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실제 생활을 위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물질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 하더라도 몸을 입고 바깥으로부터 필요한 것을 계속해서 공급받지 않으면 생명조차 유지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물질은 우리들에게는 필수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제물과 예물, 또 헌금을 드린다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고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나의 삶과 노동의 열매, 그리고 나의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 중에서 일부분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우리 인간에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십니다. 그것은 내 노력으로 얻은 것이니 우리가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가장 쉽고, 또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이니 우상처럼 섬기기가 가장 쉽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하나님께서 예물을 요구하신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야 말로 그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그런 것들보다 더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미망인이 동전 두 닢을 헌금궤에 넣는 것을 보시고, 세상에 이 여인보다 더 많이 넣은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 여인은 자기가 가진 전부를 넣음으로서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냈고, 또 자신이 부족한 삶 속에서도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동전 두 닢을 드렸다는 것과 그것이 그 여인의 전 재산이었다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역설 속에서 우리는 헌금에 대한 우리 주님의 가르침을 잘 읽어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물이나 헌금을 통해서 보기를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입니다. 우리가 물질을 대하는 태도를 뒤집으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많으냐 적으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을 드리는 우리의 마음이고 태도입니다. 얼마를 드리든 인색한 마음으로, 또 아까워 하는 마음으로 드려서는 안됩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기쁘게,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기쁘고 넉넉한 마음으로 받으십니다. 


18절과 19절에는 이 절기의 예물을 드릴 때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한 몇 가지 사항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첫째, 제물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면 안됩니다. 무교병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제물이 나중에 화목제로 드려질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고 또 순전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두 가지 주의사항은 15절의 말씀과 그 맥락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절기 제물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 전에 드릴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물로 드려진 짐승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두는 이유는 아깝기 때문입니다. 이미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이니 거기에는 인간의 이런 저런 욕심이나 인색함이 끼어들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제물의 기름은 하루가 가기 전에 모두 태워버려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추수한 것에서 적당히 아무 거나 가져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처음 거둔 것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농사를 지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가장 귀하고 의미있게 여길 수 있는 바로 그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것은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라”는 것인데요. 사실 이 방법이 그 당시에는 가장 고급스럽게 요리를 하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금하셨습니다. 새끼에게 어미의 젖은 양식이며 생명입니다. 그리고 어미에게 젖은 새끼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고 또 생명의 나눔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기쁨의 제사를 드린 후에, 그 기쁨을 함께 나누려고 어미의 젖에 새끼를 삶아 요리한다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너무나 잔인하고 또 탐욕적인 행위였고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을 금하신 것입니다. 


물질, 그러니까 맘몬은 하나님과 경쟁하는 가장 강력한 적수입니다. 물질이 우리의 신앙과 직접 연결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돌보심과 공급하심을 신뢰하면서 감사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물질 중심의 삶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물질은 그저 선물과 도구가 됩니다. 우리의 삶을 채워주시기 위해서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 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됩니다. 우리를 살게 하고 또 우리의 필요를 책임져 주는 것은 이 세상도 아니고 돈도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이 나오는 샘 근원인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고백하고 증명해보이는 아주 중요한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의 헌금이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대한 넉넉하고 부요한 마음과 태도를 잘 유지하셔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들의 온전한 유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