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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12.10. 새벽예배 -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출애굽기 92)





본   문 : 출애굽기 24장 12-18절




돌기둥 열 두개를 세우고, 번제를 드리고, 제물의 피를 뿌리며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이 피로 맺어진 깨어져서는 안되는 언약이라는 것을 선포하고, 이스라엘의 대표들이 하나님을 뵙고, 평강과 기쁨 속에 넉넉한 언약잔치를 가졌습니다. 이렇게 언약을 맺기 위한 모든 절차가 끝났습니다. 사실 하나님께는 이런 절차들이 전혀 필요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 마음 먹기만 하시면 그것이 영원히 변치 않는 분이시니까요. 이 모든 절차는 모두 다 하나님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잊지 않고 지켜내려면 그런 절차를 행함으로써 그 모든 것들을 단순히 머리가 아니라 몸에 기억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가 행하는 예배와 모든 성례가 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미만 생각한다면 그것이 반복해서 행해질 필요가 없지만,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세례를 행하고 성찬을 행할 때마다 우리는 머리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을 움직여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은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몸에 새기고 행동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꼭 구체적인 것, 그러니까 몸과 관계된 것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몸을 움직여 하나님 앞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그 일을 통해 다시 한 번 몸에 언약을 새기고 은혜를 새겨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온전함'을 가지게 되고 또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모든 절차가 끝난 것 같았지만 아직은 아주 중요한 것 한 가지가 더 남아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사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 모세 사이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어서 직접적으로는 성도들이 아니라 저와 같은 목회자에게 더 풍성한 교훈이 되는 말씀이지만  목회자에게 어떤 일이 중요하다는 것은 곧 그것이 성도들에게도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목회자란 항상 성도들을 향해서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모든 절차를 마치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요구하신 것은 하나님께로 올라와서 하나님과 함께 머무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머물기를 원하셨던 것은 그렇게 머물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율법과 계명이 기록된 돌판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고 또 계명이 기록된 돌판을 받는 것은 그것을 잘 간수하고 보관하기 위해서 아니라, 그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치게 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저는 요즘들어 제 설교와 가르치는 일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 2년에 한 번쯤은 꼭 이런 고민이 생기는 것 같은데요. 그럴 때마다 참 많이 고민되고 제가 가지고 있는 성경교사로서의 능력이나 재능에 대해서 작은 좌절들을 경험하곤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럴 때마다 저에게 은혜와 지혜, 그리고 결단을 주셔서 그런 장벽들을 하나 하나 넘게 하셨는데요. 여전히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그런 은혜 덕분에 지금에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찾아온 고민과 작은 좌절도 저에게는 선한 자극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이런 저런 점에서 분명한 진전을 만들어 내야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 오늘 본문을 보니 오늘 본문말씀이 저에게는 평범치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혼자서 내게 올라와서 거하면서 이스라엘을 가르칠 계명과 율법을 받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올라가서 지낸 시간이 무려 40일입니다. 모세가 그 40일 동안 하나님 앞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 율법을 받는 일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40일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그 기간 동안 모세가 하나님께 율법과 계명을 배워야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40일은 모세의 머리와 영혼 속에 율법과 계명이 새겨지는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40일은 그러기 위해서 꼭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서 저에게 필요한 또 하나의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모세는 아니지만 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면 반드시 홀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가르치는 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지만 사실 제가 우리 교회에 와서 목회를 하면서 그런 시간이 많이 부족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년부터는 홀로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 하겠다는 작은 결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홀로 40일이나 하나님 앞에 거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는 일이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일이 그만큼 중요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이 그만큼 중요했다는 뜻이 됩니다. 가르치는 것은 배우게 하기 위한 것이지 가르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니까요. 


목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홀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묵상하고 연구하는 시간을 꼭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또 그렇게 알게 되고 깨닫게 된 은혜를 성령님의 감동하심 가운데 성도들에게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이 목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이런 일을 잘 하는 사람을 ‘설교를 잘 한다’고 말하며, 성도들은 자신들을 가르치는 목사가 이런 목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당연한 바램이고 또 요구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만약 거기서 끝나면 목사가 아무리 설교를 잘 하고 잘 가르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최고의 연설을 허공에 대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잘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잘 배우는 일, 그리고 그 배움을 통해서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목사의 경건함과 은사, 그리고 실력은 결코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없지만,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여러분이 그 목사를 통해서 더 잘 배우고 더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중요한 40일을 모세에게 따로 떼어놓을 것을 요구하셨고 직접 모세에게 개인교습을 해 주셨던 것입니다. 


교회는 가르치고 배우는 공동체 입니다. 제대로 가르치고 제대로 배우는 일을 통해서 건강하게 세워지고 또 풍성해 질 수 있는 그런 공동체입니다. 항상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목사는 제대로 잘 가르치고, 성도들은 제대로 잘 배워서 모두가 주님 안에서 아름답고 성숙하게 변화되어져 가는 참 하나님 백성의 모임이 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특히 항상 배우는 자로서의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항상 배우고 성장하며 변화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신앙생활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주님 앞에 나올 때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언약백성들인 우리 교회를 제대로 잘 가르치고 제대로 잘 배우는 참 이스라엘이 되게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