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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12.12. 새벽예배 - 조각목으로 궤를 짜되(출애굽기 94)






본   문 : 출애굽기 25장 10-22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지을 예물을 가져오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귀한 것들로만 요구하셨고 직접 그것을 재료로 사용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성막과 그 안의 기물들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체적인 헌신과 섬김, 그리고 순종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거하실 성막을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중심에서 나온 헌신과 섬김으로 지으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만들 것을 요구하신 것은 증거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장막을 지으라고 하시면서 장막을 만드는 방법부터 말씀하시지 않은 것은 성막과 그 안의 모든 것 중에서 증거궤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궤가 바로 하나님께서 직접 임하시는 성막의 핵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그 궤를 나무로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조각목은 특별한 나무가 아닙니다. 싯딤이라고 부르는 아카시아 나무인데요. 이 나무는 광야 어디서건 건조한 곳에서도 무성하게 자라는 나무입니다. 그 지역에서는 6-7미터나 자라는 나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를 여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하기 어려운 것을 사용해서 증거궤를 만들라고 하지 않으시고, 광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없는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드리기 어려울 수는 있어도 드릴 수 없는 것을 달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증거궤는 네모난 상자인데 가로는 65-77센티미터쯤되고 세로는 115-125센티미터쯤 되는 크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증거궤의 안팎을 완전히 금으로 둘러싸게 하셨습니다. 금은 애굽에서 많이 가지고 나왔으니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것도 귀한 것이기는 하지만 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닌데요. 하나님께서 증거궤를 온통 금으로 둘러싸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번쩍 거리는 것을 좋아하시는 허영이 많은 분이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금이 영광을 상징하며 영원한 것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금처럼 하나님을 잘 상징할 수 있는 것이 없고, 또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직접 임하시는 증거궤를 금으로 둘러싸게 하신 것입니다. 나머지 운반을 위한 채도 조각목으로 만들어 둘러싸야 했고 나 그 채를 꿰는 고리도 금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 속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증거판을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제 그 상자를 덮을 뚜껑을 만들 차례인데요. 하나님께서는 그 뚜껑을 증거궤의 뚜껑이라고 부르지 않으시고 이상하게도 속죄소라고 부르셨습니다. 이 속죄소의 크기는 정확하게 증거궤의 윗면의 크기가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양쪽에 그룹천사 둘이 날개를 활짝 펴서 그 뚜껑을 덮게 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그 뚜껑을 가리는 것처럼 말이죠. 하나님께서 증거궤를 그런 모양으로 만들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22절에서 증거궤 만드는 방법을 다 설명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이를 네게 이르리라” 


이제 이 증거궤의 용도가 밝혀지지요? 이 증거궤는 그 안에 증거판이 담기는 것도 그렇고 또 그 이름이 증거궤라는 것도 그렇고 분명히 증거판을 담기 위해서 만드는 상자입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리고 특히 그 뚜껑을 보면 이 증거궤가 단지 증거판을 담는 역할 말고도 그것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룹은 언제나 하나님을 시종들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천사들입니다. 그들이 날개를 펴서 증거궤 뚜껑인 속죄소를 덮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뚜껑의 의미는 분명해 집니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입니다. 그러니까 그 곳을 그룹이 날개로 가리게 함으로써 누구도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증거궤는 땅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가 되는 셈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데요. 하나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내게 명령할 모든 일을 이르리라” 이것은 분명히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증거궤가 결국 이렇게 땅 위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의 역할을 하게 된다면, 결국 이 증거궤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증거판이 담깁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합니다. 22절의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그것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시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 증거궤의 뚜껑은 속죄소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그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통치하시는 것은 말씀과 은혜를 통해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크게 보아서 두 가지를 통해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돌판에 새겨지듯이 이 성경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무나 분명하고 명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 이미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으로 우리를 다스리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인도하심을 받는 방법은 이미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을 잘 깨달아 순종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보좌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해도 여전히 부족하며 때로는 불순종하게 됩니다. 그럴 때는 항상 우리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속죄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다스리심에 순종할 기회와 힘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 은혜… 이 둘 중의 하나라도 그 분의 보좌에서 흘러나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광스럽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 증거판이 담기고 속죄소라는 뚜껑으로 덮인 증거궤를 땅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로 삼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1장 14절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에게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언제나 풍성하게 흘러나왔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겼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예수님 덕분에 더욱더 분명해지고 풍성해진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함께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거기 순종하려고 애써야 하며, 그러다가 넘어지고 불순종하게 될 때는 빨리 은혜의 보좌로 달려나가 속죄의 은총을 받아 또 다시 믿음의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힘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언제나 이 두 가지 은혜를 함께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은혜의 능력으로 우리의 삶이 날마다 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