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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12.17. 새벽예배 - 성막(출애굽기 96)





본   문 : 출애굽기 26장 1-37절





지난 금요일과 어제는 지성소와 성소에 놓아 두어야 할 성전 기물들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성전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려면 전체 성막의 구조를 먼저 말씀해 주시고, 그 다음에 지성소에 있어야 할 것과 성소에 있어야 할 것들을 말씀하신 후에 그 다음에 성막 뜰이라고 불리는 부분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는 것이 순서일 텐데, 지성소와 성소에 놓아두어야 할 것들을 먼저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성막에 대한 설명은 성막의 모양이나 구조가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막에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차례를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증거궤와 진설병, 그리고 등잔대가 하나님께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데요. 이것은 곧 이 세 가지가 상징하는 것,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 앞에 사는 일이 우리에게도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항상 이 세 가지를 기억하시면서 이 세 가지를 꼭 챙기면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드디어 ‘성막’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거하실 집 자체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성막은 흔히 제사가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생각되지만 성막의 근본적인 역할은 하나님의 임시 거처였습니다. 이전까지 하나님께서는 정기적으로 이스라엘을 찾아오시지도 않으셨고 또 그들과 함께 항상 거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항상 함께 하시기로 결정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고, 또 하나님의 법을 자신들의 법으로 받아들여 그렇게 할 준비가 다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여행하는 도중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 거처를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는 이동식 주택으로 만드실 수 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성막이라는 텐트가 하나님의 임시거처로 세워졌던 것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다른 모든 신들은 다들 사람들과 멀어지지 못해서 안달합니다. 가까이 가려는 인간을 멀리 밀쳐내고 감히 근접하지 조차 못하게 만듭니다. 그렇지만 우리 하나님은 정반대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의 왕이 되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우리 와 멀리 떨어져 계시면서 왕입네 하시기 위해서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함께 사시면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왕이 되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 하려고 할 때, 항상 우리를 하나님 곁으로 끌어 당기시고 더 가까이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제가 믿는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하나님을 알고 또 섬기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이런 하나님께로 날마다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와 함께 거하시기를 원하신다면 우리들 또한 우리 삶의 문을 열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마음껏 거하시도록 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그렇게 온전히 연합된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꼭 그렇게 하고 또 그렇게 되는 복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성소와 지성소로 이루어진 안쪽에 있는 성막은 가로가 70미터, 세로가 14미터쯤 되는 크기였습니다. 맨 안쪽에는 금으로 싼 조각목 널판지 기둥으로 만들어진 방이 있었고, 그 방의 3분의 1은 지성소, 그리고 나머지 3분의 2는 성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그룹들이 수놓아진 가는 베실로 된 천, 염소털로 만든 덮게, 붉게 염색한 수양의 털로 만든 덮게, 수달 가죽으로 만든 덮게를 덮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꼭 그대로 만들라고 하셨던 안쪽 성막인데요. 그저 대략 이렇다고 이해하고 계시면 될 듯합니다. 하나 하나의 재료나 색깔에 대한 이런 저런 해석들이 있지만, 거의 모두 다 너무 주관적이어서 이게 이런 뜻이다, 이건 이런 것을 상징한다고 함부로 말씀드리는 힘들 것 같습니다. 


안쪽 성막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당부는 그 성막을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간에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커튼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정교하게 수 놓아서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라고 하셨고, 앞서 말씀하신 증거궤와 진설병상, 그리고 등잔대를 어디다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를 지정해 주셨습니다. 지성소에는 속죄소로 덮인 증거궤가 놓여야 하고, 성소에는 상과 등잔대가 놓여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성소와 성막 뜰을 연결하는 안쪽 성막의 문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짓는 커튼과 재료는 같지만 그룹만 수놓지 않은 커튼으로 만들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지성소, 성소, 성막 뜰…  성막은 이렇게 삼중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막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항상 함께 하시기 위해서 세우신 하나님의 거처요, 또 궁전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 뜰까지 밖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성소는 제사장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지만 지성소는 그 곳에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은혜가 흘러나옴에도 불구하고 일년에 단 한 번만 그것도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게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고 싶어하시는 마음과 이러한 성막의 구조는 사실 서로 모순이 되는데요. 성막이 이런 안타까운 모양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바로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껏 거리낌 없이 항상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나고 싶어하십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날 수 없게 만듭니다. 이스라엘 백성 쪽에서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도 하나님 앞에 나가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막은 언제나 백성들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죄 때문에 마음대로 그렇게 할 수 없는 죄인들의 영적인 현실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막을 통해 이 두 가지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하며, 또한 그것을 방해하는 죄의 악한 영향력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죄를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참 성전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 휘장을 찟어 주셔서 마음껏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는 여전히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심각한 장애물 역할을 합니다. 그 죄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근심하시게 만들어서 그 성령님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친밀한 교제가 방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그러기 위해서 죄를 멀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우리가 언제든지 거리낌 없이 만나 풍성한 교제를 나누는 성막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