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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12.24. 새벽예배 - 제사장 옷의 나머지 부분(출애굽기 100)





본   문 : 출애굽기 28장 31–43절




오늘은 제사장의 옷의 나머지 세세한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거기에는 에봇 받침과 머리의 관에 다는 순금으로 만든 패, 그리고 속옷 등이 포함되는데요.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에봇받침이라고 되어 있는 에봇 바로 밑에 입어야 하는 옷 아래단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금으로 된 방울들이 달려 있었습니다. 35절에 보면 이 금방울의 소리는 제사장의 목숨과 직결되어 있었는데요. 이 방울소리가 나면 제사장은 살 수 있었고, 방울소리가 나지 않으면 제사장은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방울을 달고 또 그 방울소리를 내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일이 제사장에게는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방울소리는 왜 제사장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을만큼 그렇게 중요했던 것일까요? 사실 우리는 그 이유를 명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제사장 옷의 각 부분이 상징하고 또 의미하는 것들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이 방울이 상징하고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아는 것은 더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방울소리가 제사장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데, 그런 제사장의 직분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용서되는 일과 직결되어 있어, 그것이 실제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 앞에서의 살고 죽음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방울이 옷 밑에 달려있기 때문에 제사장이 움직이면 절대로 소리가 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소리가 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 소리가 나지 않게 하셨다는 뜻이고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 제사장과 그가 드리는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린 제사장은 살아남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의 결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고스란히 옮겨지게 됩니다. 그들의 죄도 용서받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 주 시는 백성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살 수도 없고 하나님의 다른 은혜들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에서 사죄의 은총을 받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항상 죄용서를 받는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은혜인지 잊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현실적인 은혜에는 감사하고 감격하면서도 그 모든 은혜들이 내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고 또 지금도 계속해서 용서받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할 때가 많습니다. 제사장은 옷에서 방울소리가 나야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가 나야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받아들여 질 수 있습니다. 제사장이든 백성들이든 하나님의 용서해 주시는 은혜가 없으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제사장 옷깃에서 들려오는 방울소리를 생각하며 다시 기억해야 하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중요한 것은 제사장의 관, 이마에 달려 있는 순금패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항상 제사장의 모자 앞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쓰여진 금패를 달아야 했습니다. 이것은 제사장이 하나님 쪽을 향할 때에는 하나님이 보셨고, 백성들 쪽을 향할 때에는 백성들이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순금패는 특히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성물과 관련된 죄책을 감당하는 일과 관계 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금패를 이마에 달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온 성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그 성물을 드리는 일과 관련되어 있는 불완전함이 제거되어 그 성품이 받아들여 지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것이 그냥 물질에 불과하다면 그것이 아무리 값비싼 것이라고 해도 하나님께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유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성물을 받으시는 것은 그 성물을 통해서 백성들의 참된 헌신을 받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중심과 삶으로부터 우러나온 믿음과 사랑의 고백을 듣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실만큼 완전한 헌신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그 존재도 삶도 하나님에서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삶의 일부인 성물이 완전히 깨끗하지 못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평상시의 삶에서도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리는 일에 있어서도 언제나 죄책의 문제가 따라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 쪽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임시로 그렇게 하시든 아니면 영원히 그렇게 하시든 하나님께서 그 죄책을 제거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도 헌신도 하나님께 받아들여 질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 성결’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이기도 하고 또 백성들의 표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기준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삶은 물론이고 하나님을 향한 특별한 헌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불완전할 수 밖에 없는 우리는 여호와 앞에 성결할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 앞에 성결’이라고 쓰여진 금패를 이마에 붙이고 백성들이 드린 성물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는 제사장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과 하나님의 은혜를 모두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헌신을 기쁘게 받으시는 것은 그것 자체가 훌륭하고 완전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가장 신실한 우리의 헌신 속에 까지 스며들어 있는 뿌리 깊은 죄와 그 죄책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없애 주시고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께 기쁜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성결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우리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서 살아야 하며, 그렇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신실하게 살며 헌신하시다가 힘들고 낙심이 되시거든 언제나 제사장 옷깃에서 나는 방울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우리가 드린 부족한 헌신 속에 스며들어 있는 죄책을 제거해 주시는 하나의 은혜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부족하고 연약해도 항상 하나님 앞에서 성결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은혜가 우리를 살게 하고 또 우리의 삶과 헌신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항상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는 은혜에 의지해서 거룩한 길을 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