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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4.08.31. 주일오전 -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빌레몬서 2)



20140831SM (#1).mp3.zip


빌레몬서2.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pdf





     본문 : 빌레몬서 1장 8-13절




     지난 주일에는 빌레몬서를 통해서 이 빌레몬서를 쓴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사람으로 변화되었는지를 함께 묵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볼 때, 그 사람들이 원래부터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면서 그 사람을 닮아가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처음부터 본 받을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 사람이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분명히 과정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원래는 굉장히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올바른 일을 위해서 라면 눈 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눈하나 꿈쩍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는 정말 세심하고 따뜻하며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모든 댓가를 지불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마냥 작은 일에만 신경쓰는 그런 사람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복음을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까지 아까워하지 않을 정도의 대범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복음 안에서 얻을 수 있는 변화가 놀라운 이유는 그 변화가 좋은 점은 더 크고 강하게 만들지만 나쁜 점은 약해지고 사라지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함께 지니고 있기 어려운 성품들을 함께 지니게 만들어 주지요. 그 이유는 복음은 우리를 방향 없이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새 생명을 주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빌레몬서에 나오는 나머지 두 사람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 두 사람은 빌레몬과 오네시모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사도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통해서 복음에 합당한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로 변화 되었다는 점에서도 같습니다. 오늘은 이 두 사람을 우리를 위한 거울로 삼으려고 합니다. 오늘 이 두 사람의 모습에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면서 우리 속 사람의 매무새를 가다듬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빌레몬서에 나타난 빌레몬의 모습은 사도 바울이 그에게 하는 말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이 점이 참 안타깝습니다. 빌레몬의 예수 믿기 이전 모습과 그 변화의 과정이 성경에 모두 나타나 있다면 우리가 더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을 텐데 그렇지가 못하니까요. 그렇지만, 빌레몬서에 나타나있는 그의 모습만으로도 예수믿는 사람들의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 그 방향에 대한 교훈을 얻기에는 충분합니다. 


우선 4절을 보면 바울은 빌레몬에게 인사말을 쓰면서 항상 빌레몬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그 사람으로 인해 행복해 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아마도 바울에게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목회자인 바울 자신에게 가장 힘이 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 분들과 떨어져 있고, 연락도 아주 가끔씩 닿을 뿐이지만, 대화를 나누면 행복해 지고, 전화를 끊고 나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그런 성도들이 몇 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목회자는 왜 있는 사람일까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사람일까요? 목회자는 믿음 안에서의 성도의 아름다운 변화를 돕기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일이 아니라면 저희들처럼 쓸 데 없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들이 가장 힘들 때는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성도들이 전혀 변화되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입니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그렇게 애쓰는 이유를 찾지 못하니까요. 그러나, 몇 명이라도 자신이 돌보는 성도들이 아름답게 변화되어져 가는 것을 보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가장 기뻐하는 것은 우리 교회가 큰 교회가 되고 그런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믿음 안에서, 그리고 말씀 안에서 아름답게 변해가는 여러분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저에게는 그것만큼 행복하고 기쁜 일이 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전혀 그런 열매를 보지 못한다면 저는 그 무엇을 주어도 행복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 부탁이 주님 안에서 여러분을 향한 올바른 권면이라고 생각하며 부탁드립니다. 성도 여러분, 목회자가 여러분을 생각할 때에 목회자가 목회자로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아름다운 변화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고, 얼굴에는 미소가 떠오르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단지 목회자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가장 영광스러워지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목회자들도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성도들이 보시기에 부족함이 많이 보일 것입니다. 때로는 성도들을 가르치면서도 자신을 가르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성도들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고, 부족한 그 대로 성도들의 변화를 위해서 일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목회자들에게는 성도들이 이렇게 변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방향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성도들이 어떻게 변화되어져 가기를 원할까요? 목회자마다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목회자라면 그 바램이 대동소이 할 것입니다. 저는 성도들이 균형잡힌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들 중에는 개인적인 믿음은 참 좋은 것 같은데, 가족과 이웃,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교회 안에서 인간관계는 참 좋은데, 솔직히 그 속에 믿음이 없다고 여겨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둘 다 좋은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균형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들과의 관계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좋다면 그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아름다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빌레몬을 위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하면서 5절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빌레몬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 균형을 이룬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그 뿌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성도들을 향한 사랑으로 이어졌습니다. 바로 여기에 빌레몬의 영적인 성장이 아름답고 바람직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신앙의 고질적인 문제 중의 하나는 자꾸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성도들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따로 떨어진 문제나 혹은 서로 부딛히는 문제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두 가지는 하나입니다. 신앙이란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크게 보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도대체 신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라고 대답하십시오. 그것만큼 좋은 대답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보이는 사람을 향할 때는 사랑이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되어질 때는 믿음을 통한 사랑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는 하나님을 향한 의존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이 그 기초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믿음을 통하지 않고는 표현될 수 없습니다. 믿음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런 점에서 빌레몬은 참된 신앙의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를 믿는 우리 신앙의 취약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의 신앙은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까? 분명히 기본은, 신앙의 뿌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그것만큼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만 있다고 사람을 향한 사랑이 없는 것을 그저 모른 척 해 주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생각할 때, 흐뭇한 미소가 떠오르고 마음이 시원해 지며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모두 주님 안에서 그런 사람들로 변화되어져 가기를 바랍니다. 내 가족이, 한 교회의 성도들이, 주변의 이웃들이 나를 생각할 때 걱정하고 마음 상해 하며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이 아니라, 기뻐하고 감사하며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그런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빌레몬에 대한 더 놀라운 기록은 6절에 있습니다.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빌레몬과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성도들은 믿음과 사랑을 따라 사는 빌레몬의 삶을 보면서 자신들이 믿고 있는 진리가, 자신들이 선한 것이라고 믿고 있는 바로 그것이 틀림이 없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빌레몬의 삶 자체도 바르고 아름다웠지만, 무엇보다도 그러한 빌레몬의 삶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진짜로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리와 선 앞에서 머뭇거리던 성도들은 빌레몬을 보면서 “와, 우리가 믿었던 진리가 진짜구나. 우리 속에 있는 선이 진짜로 악을 이기는 구나. 그것을 따라 살면 하나님께서 정말로 역사하시는 구나!”하며, 힘을 얻어 함께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들이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선한 것인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길을 따르는 일을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은 자기 보다 앞서서 그 길을 가는 사람을 발견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어떤 교회에 갔는데, 그 교회의 성도들은 모두가 다 서로 사랑하며 가진 것을 내어 놓아 이웃을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낸다면, 그 교회에 간 사람은 그렇지 않은 다른 교회에 간 사람보다 훨씬 더 쉽게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또 자기 것을 내어 놓아 이웃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바르고 선하게 살려고 하는 성도에게 자기 보다 앞서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 그 믿음으로 당당하고 아름답게 살며 향기를 발하는 사람 하나를 발견하는 것 보다 더 큰 위로와 격려가 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 성도가 그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 보다 자기가 가려는 길에 대한 더 든든한 확신을 주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진리를 믿고, 그 진리를 자신의 삶으로 녹여 내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 진리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 진리대로 살아서 그 진리가 진실로 능력 있다는 것을 사람들과 세상에 증명할 책임을 우리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세상은 분명히 우리가 신앙을 지켜나가기에 만만치 않은 곳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양심을 지키며, 말씀에 순종하며 살도록 순순히 내버려 두지 않으니까요. 성도가 이런 세상을 각개전투로 격파하기란 정말 정말 힘이 듭니다. 특히 우리들처럼 평범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이 세상에 교회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고 서로가 서로에게 선하고 아름다운 일에 본이 되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증인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진리대로 사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 아니 적어도 진리대로, 믿는 바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성도의 삶에 정말로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쉬워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렵기 때문에 부탁드리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좁은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특별한 은혜로 함께 하실 것을 분명히 믿습니다. 생각하는 것처럼 어렵고 고통스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만이, 그렇게 하는 사람만이 특별히 알고 누릴 수 있는 비밀스럽고 풍성한 은혜가 그러한 삶 속에 숨겨져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로 그 길은 오히려 더 당당하고 더 행복한 길이 될 것을 믿습니다. 적어도 하나님께서는 빌레몬에게 그렇게 해 주셨던 것처럼 이런 사람들에게 능력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이 이 은혜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오네시모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오네시모는 주인인 빌레몬으로부터 도망쳐서 바울에게로 갔던 빌레몬의 노예였습니다. 아마도 당시의 수많은 노예들이 그랬던 것처럼 전쟁포로였지만 어느 정도의 학식을 갖춘 그런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오네시모가 바울에게로 왔고, 사도 바울이 그를 받아들였던 것을 보면 사도 바울이 빌레몬의 집에 있을 때, 이미 오네시모를 만났고 그래서 그를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100퍼센트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18절과 19절에서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손해 입힌 것이 있으면 바울이 갚아주겠다고 했던 것으로 보아서 오네시모는 주인인 빌레몬에게 큰 손해를 끼치고 그것을 보상할 길이 없어, 두려움에 바울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바울에게 오기 전에 빌레몬은 아직 신앙인이 아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그에게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말씀으로 그를 양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복음 안에 있는 바울의 모습과 그 안에서 변해가는 주인의 모습을 보아왔던 터라 오네시모는 복음에 대한 거부감이 없이 그 복음을 잘 받아들였겠지요. 그런데 그러면서 오네시모에게도 아주 중요하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자신에게 다시 보내달라고 부탁하면서 오네시모에 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바울이 판단하기에도 오네시모는 과거에 누구에게도 유익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주인인 빌레몬에게 도움이 전혀 안되는 무익한 종이었습니다. 게다가 오네시모가 바울에게 왔을 때, 그는 주인에게 큰 손해를 입히고 도망쳐 온 노예였습니다. 종이라면 주인에게 플러스가 되어야 하는 법인데, 그는 제로가 아니라 아얘 마이너스 노릇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복음 안에 들어와 양육받으면서 변화되었고 이제 바울은 오네시모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못했던 그가 복음 안에서 모두에게 유익한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이제는 누구를 섬기든지 그 주인을 유익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빌레몬에게 돌아간다면 빌레몬에게 꼭 필요한 사람으로 일할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12절에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저는 내 심복이라”고 말합니다. 심복이라는 말은 무슨 조직에서 쓰는 말 같지만, 영어성경에서 찾아보면 이 말을 “my very heart”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 말로 하면 “딱 내 마음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이미 바울에게는 단순한 아랫사람 이상이었습니다. 바울의 마음에 꼭 합하는 사람이었고, 바울의 마음까지 헤아려 그 필요까지 채워주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의 사역에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바울은 그가 빌레몬에게도 유익할 것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오네시모는 이미 바울과 빌레몬에게 뿐만 아니라 이미 하나님에게도 그런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마도 복음 안에서 한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극적이고 아름다운 변화를 달라면 오네시모에게 일어난 변화일 것입니다. 항상 자신의 위치에 불만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손해만 끼치는 무익하고 쓸모없는 사람, 내치자니 그렇고 데리고 있자니 그것도 그런 사람이 바로 오네시모 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오네시모도 복음 안에 제대로 들어와 머물기 시작하자 꼭 필요한 사람, 정말 유익한 다른 사람의 마음의 필요까지 채워줄 수 있는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우리 자신만 들여다 보면 때로는 내가 아름다운 주님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기 힘들 때가 참 많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악함들, 무지함들, 완고함들, 교만함, 그리고 깨어지지 않는 좋지 않은 습관들… 이런 것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올 때, 우리는 그런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나야 말로 참으로 무익한 사람이고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그래서 우리에게는 복음이 필요한 것이고,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결점투성이고 고집불통인 우리들이지만 그런 우리도 영광스럽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복음이며 그 복음의 은혜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복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도 빌레몬도 그리고 오네시모도 복음과 은혜가 변화시킨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오늘도 빌레몬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 이렇게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랬다면, 복음 속에서 그들이 그렇게 아름답고 복되게 변화되었다면 똑같은 복음을 믿는 우리들도 변화될 수 있고 또 변화되어야 합니다. 생각하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고 흐뭇한 미소가 떠 오르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입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원하게 해 주고 평안하게 해 주는 오아시스 같은 사람, 진리의 길에서 낙심한 자에게 자신의 삶을 통해 용기와 힘을 주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꼭 합한 사람, 없어서는 안되는 정말로 유익한 사람……. 저와 여러분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고 또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 안에서 변화되는 것은 정말 정말 복된 것입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세상은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복, 그것이 복음 안에서 우리가 아름다운 우리 예수님의 성품으로 덧 입는 것보다 더 복되고 영광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 안에서 예수님의 형상을 덧입게 될 때, 그제서야 우리는 가장 우리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존재인지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을 걸어다니는 아름다운 주님의 형상이 되어서 이 세상에 아름다운 주님의 향기를 풍기며 예수님의 아름다우심을 선전하는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다듬어져 가는 복을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