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2.03.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출애굽기 32-33장)



20150203D.mp3.zip





설교일 : 2015년 2월 3일 화요일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시내산 위에서 하나님과 모세가 가장 영광스러운 만남을 가지고 가장 영광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그 산 아래에 있던 아론과 백성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들, 그리고 모세가 그 일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1장까지의 내용과 32장의 내용은 완전히 대조가 됩니다. 한 쪽이 빛이라면 나머지 한 쪽은 그림자입니다. 한 쪽이 영광스러운 만큼 뒤 쪽은 그만큼 더 치욕적입니다. 


카메라가 산 위에서 산 아래로 이동하면서 환하던 화면이 완전히 어두워집니다. 산 아래에서는 그야 말로 죄악의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가지고 있던 금을 모아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들의 지도자라는 아론은 그 금송아지가 만들어진 다음 날을 성일로 선포하고, 백성들은 그 금송아지를 향해서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그 앞에서 마음껏 먹고 마시며 방탕해지고…. 정말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걸 아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켜 버리고 모세로 부터 다시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끝까지 하나님을 설득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 성을 위해서 열 번이나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했던 것처럼 그렇게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공통적인 모습이지요. 하나님의 사람들은 ‘죄 지었으니 망해야 한다, 다 망해 버려라, 망해도 싸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들을 위해서 끝까지 기도하고 중재에 나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에 호소하고 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언약에 호소하면서 하나님을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결국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도 이 두 가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언약에 의지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그 기도를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우리 기도가 아직 확정적이지 않은 하나님의 마음을 돌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 중심, 언약 중심의 기도가 가지는 능력입니다. 


산 아래로 내려오는 모세의 귀에 여전히 방탕하게 우상숭배에 빠져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모세는 그 소리를 듣자 화가 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두 돌판을 산 아래로 내동댕이 쳐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금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로 만들어 물에 타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음과 욕심 속에서 나온 우상을 다시 속으로 집어넣게 했습니다. 우상은 사실 우리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상은 항상 그 사람 안에 있습니다. 그 사람의 욕망이 바로 우상입니다. 우상이란 그것이 모양으로 표현된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탐심이 우상숭배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꼭 눈에 보이는 것만이 우상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만 조심하면 된다는 생각은 그래서 무척 위험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욕망과 욕심이라는 이름의 우상,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진짜 우상에 주의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상숭배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모세는 비록 그들이 자신의 동족이지만 그들을 벌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우상숭배에 참여하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있는 레위족속들을 통해 동족들을 징벌했습니다. 아마도 레위족속들은 그 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족속들을 벌 주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 3000명이 목숨을 잃고 그 사건은 일단락 될 수 있었습니다. 죄란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시고 또 불쾌해 하십니까? 


일이 일단락된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제는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하지 못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대신 그저 하나님의 사자만 먼저 보내서 가나안 족속들을 좇아낼테니 그들이 또 범죄하면 그 때는 길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을 몰살시키실지도 모르기 때문에 더 이상 동행할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얼마나 상심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이번에도 모세는 또 다시 하나님을 설득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가시지 않으시면 어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이라는 것을 다른 민족들이 알겠느냐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그 말을 들으셨습니다. 긍휼과 은혜를 베푸셔서 모세의 말대로 따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못하고 불순종에 빠지거나 혹은 자기가 원하는 모습의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면서 믿는 일그러진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은 크게 보면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더디 움직이신다고 여겨지기 때문이고 나머지 한 가지는 신앙과 나의 욕망이 부딛히는데 내 욕심을 포기하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더디 움직이신다고 생각될 때, 그리고 내 욕심이 고개를 들 때, 그 때 조심해야 합니다. 조급함이 하나님 대신 의지하는 것을 만들어 내고, 욕심은 우리를 죄악에 빠지게 하니까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는 모세의 태도에서 교회 안의 다른 지체들의 죄를 바라보고 또 대하는 태도를 보게 됩니다. 모세는 지도자로서 다른 사람들의 죄를 아주 엄정하게 다루었습니다. 그렇지만, 기꺼이 자기 자신을 걸고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위해서 중재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죄는 죄라고 분명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나와 다른 사람이고 내가 멀리해야 할 사람이라고 여기기 보다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시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도록 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인 교회 안에 속한 사람들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이와는 반대의 태도를 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다른 사람의 죄는 나와 상관 없는 일이니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그러면서도 그들을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며 멀리하려고 하는 것 말입니다. 


개인의 죄는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생각보다 더디 움직이신다고 생각될 때, 은근히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내 생각과 내 욕심대로 하고 싶을 때, 그 때 우리는 오히려 우리 생각과 마음의 고삐를 더 단단히 잡고 그 고삐를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죄는 분명히 죄라고 판단하면서도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중재자가 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신을,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를 죄로부터 지킬 수 있고, 또 다시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은 내가 모세로 부터 나 자신의 죄와 공동체 안의 죄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야 하는지 잘 배우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죄를 짓고 혹은 옳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보더라도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또 내 삶에 스며드는 죄들과 싸워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마음과 생각을 잘 다스려서 죄를 짓지 않을 뿐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죄들을 제대로 잘 처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