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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2.04.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출애굽기 34-3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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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2월 4일 수요일




오늘 함께 읽은 부분은 이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두 번째 돌판을 주시고, 다시 언약을 세우시고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짓기 시작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참 안타까운 마음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이 사람들이 어차피 가야 할 길을 항상 너무 멀리 돌아가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는 가야할 길, 그리고 정해진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이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에 어차피 가야 할 길을 너무나 오래 걸려서 멀리 돌아가는 선택을 합니다. 첫번째 돌판을 받았을 때, 모세가 산에서 내려올 때까지 잘 기다렸으면 아무 일 없었을 텐데, 그 새를 못기다리고 우상숭배에 빠져 3000명이라는 사람이 목숨을 잃고서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이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분’이시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특별한 기회이고 은혜였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이런 과정은 전혀 필요 없는 과정이었습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위안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니까요. 그렇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와 이스라엘 백성은 전혀 영적인 상황과 위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온 세상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받은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 안에 성령님께서 늘 계시고 함께 하시고 또 충만히 계시는 특권을 얻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속에 늘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시고 그 뜻을 행할 수 있는 마음과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비록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보이는 부족한 모습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였던 모습들보다는 크고 악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더 심각한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큰 은혜는 우리에게 커다란 특권과 위로를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큼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져야 커다란 책임도 함께 생겨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특별대우 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엄격한 요구를 하시는 것 또한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이기 때문이지요. 특권과 책임은 함께 가는 것이지 하나만 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대상이 되면 스스로 하나님 백성답게 하나님만 섬기며 하나님께만 순종하며 사는 삶도 함께 받아들여야 합니다. 34장에서 하나님께서 다시 언약을 세우시면서 하신 말씀들은 바로 이유로 주어진 것입니다. 언약은 절대로 느슨하지 않습니다. 굉장히 타이트합니다. 우선 하나님과의 언약은 배타적입니다. 그 언약 속에 그 언약관계를 망가뜨릴 수 있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 끼어들지 못하게 할 의무와 책임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이 ‘질투’라고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배타적인 관계이고, 그만큼 하나님께서 그 관계를 중하게 생각하신다는 의미이며,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하나님의 자리에 가져다 놓을 때 하나님께서 그만큼 민감하게 반응하신다는 뜻입니다. 사랑만 하시고 질투는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눈을 팔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그것은 절대로 죄없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34장 중간에 절기에 대한 말씀을 주신 것과 35장으로 넘어와서 성막에 대한 말씀을 주시기 전에 안식일을 반드시 지키라고 하신 이유도 맥락이 같습니다. 절기의 특징은 일년에 세 번 모든 남자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그 얼굴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특징은 일주일에 한 번 하루 종일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렇게 하나님 앞에 나와 서고 또 하나님을 생각하는 일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누구인지,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에게 어떤 분이신지를 다시 기억하고 또 그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언약을 맺으시고 절기에 대한 법을 주시고, 안식일에 대한 법을 주신 후에 비로소 모세를 통해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거처가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은 사람들의 손으로 지어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은 성막을 지을 때, 원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온 재료로, 하나님께서 감동시키시고 자원하는 모든 자들의 손으로 지어지게 하신 것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절대로 형식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피의 언약으로 맺어진 끊어질래야 끊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시고 있는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관계 안에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끼어드는 것을 전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만 섬겨야 하며 또 하나님만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것 또한 억지가 되면 안됩니다. 우리가 진심과 기쁨을 가득 담아 기꺼이 행할 수 있는 거룩한 의무로 생각해야 합니다. 마치 자녀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랑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백성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다른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도록 정해진 다른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기쁨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와 복들을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가시고, 은혜와 함께 받아들인 우리에게 주어진 거룩한 짐들을 기꺼이 지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나의 신앙생활, 그리고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결코 가까운 길을 멀리 돌아가는 안타깝고 어리석은 모양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거룩한 언약 안에 사랑과 기쁨으로 거하며 주님의 뒤를 좇아 가면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며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분별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로 지어져 가게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