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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2.17.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레위기 16-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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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2월 17일 화요일




오늘 읽은 부분은 어쩌면 레위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지도 모릅니다. 특히 16장에서는 대속죄일의 규례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짓거나 자신들 안에서 부정함이 발견되면 항상 제물을 드려서 그 죄를 속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야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 자리로 되돌아 갈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것으로 충분치가 않았습니다. 일년에 한 차례 대속죄일이 되면 그 날은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모여서 백성 전체의 죄를 용서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야 비로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 정결케 되어서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고, 또 다시 일년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죄 뿐만 아니라 이렇게 공동체적으로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는 점은 죄란 결국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집단적이고 그럴 때 더 커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나만 죄짓지 않으면 된다, 나만 깨끗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개인 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적으로도 하나님 앞에 순결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적으로도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쓰고 힘써야 하지만, 교회 전체적으로도 똑같이 그래야 합니다. 그리고, 개인의 죄 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죄를 위해서도 하나님 앞에 그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좀 더 넓게 보면 우리는 우리가 한 나라 전체를 아우르는 교회의 지체이며, 또 전세계를 아우르고 있는 교회의 지체라는 것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 죄가 아니고 우리 교회의 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조국 교회를 살피고 또 온 세상에 흩어진 예수님의 몸된 교회들을 살피면서 그 속에서 죄가 발견될 때, 그 죄를 내 죄로 여기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온 세상의 모든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다시 정결케 되는 은총을 얻는 자리로 가는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몸된 교회에 속한 지체인 우리들의 마땅한 태도입니다. 


대속죄일날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두 마리의 짐승이었습니다. 한 마리는 아사셀 염소라고 불리우는 염소였습니다. 이 염소는 대제사장들이 손을 얹어 안수한 후 광야의 한 구석 도저히 그 염소의 힘으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서 내버리고 오게 됩니다. 손을 얹어서 안수하는 것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죄를 그 염소에게 뒤집어 씌우는 행위인데요. 그렇게 한 후에 이 염소를 광야에 내버리는 것은 이것이 바로 죄인의 운명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원래 그 염소는 바로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됩니까? 어떻게 될 수 밖에 없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저주를 받고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추방됩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도록 내버림을 당합니다. 이것이 죄인의 마땅한 운명입니다. 이 염소란 바로 그렇게 되어야 마땅한 죄인들 대신에 그 죄인의 운명을 뒤집어 쓰고 대신 추방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한 해 동안 하나님 앞에서 내쫓김을 당하지 않고 머물러 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한 마리는 속죄제 염소였습니다. 이 염소는 죽여서 속죄제의 제물로 삼습니다. 그 피를 뿌려서 백성들의 죄를 속합니다. 아사셀 염소가 죄를 뒤집어 쓰고 하나님 앞에서 추방되는 역할을 맡은 염소였다면 나머지 한 마리는 죽음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의 죽음을 대신하는 역할을 맡은 염소였던 것입니다. 이 염소 또한 죄인의 운명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죄인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어 쫓김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내쫓김을 당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는 충분치가 않습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이기 때문에 죄인은 죽음을 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속죄제의 염소는 제물로서 죽음을 당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도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도 이렇게 살아있고, 또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내쫓김을 당하지 않는 것은 죄인인 우리들에게는 전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특별하고 이상한 것입니다. 우리는 내쫓겨야만 하는 운명이고 또 죽음을 당해야만 하는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 앞에 있을 수 있고, 또 죽음을 당하기는 커녕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고 있을까요? 그것은 누군가가 우리를 위한 속죄제 염소가 되어주었고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서 아사셀 어린 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바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대신 저주를 받아 영문 밖으로 쫓겨나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당하셨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있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쫓겨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덧입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잊지않고 기억한다면 우리 영혼은 항상 하나님의 은혜로 촉촉하게 젖어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작은 은혜만으로도 넘치는 감사와 감격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고 또 은혜를 입고 있음을 안다면 우리는 함부로 죄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함부로 그런 죄 때문에 멸망하게 될 세상을 닮고 또 그 세상의 풍습을 닮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괜찮다고 해도 똑같은 길로 가려고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죄를 이기는 것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분명히 그런 노력이 필요하지만 죄를 이기려는 노력은 내가 어떤 은혜로 죄 용서를 받았으며, 나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댓가를 치르셨는지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과 더불어 이루어 질 때,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죄에는 아주 현실적인 부작용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 앞에서 좇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더러워졌고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가 있기 전 주민을 토함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 죄는 우리 영혼을 망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도 망가 뜨립니다. 우리가 땅에서 죄를 지어서 땅을 더럽히게 되면 땅은 결국 자기가 살기 위해서 우리를 토해 버리고 맙니다. 그것은 결국 한 나라가 멸망하거나 혹은 사람들의 삶이 피폐해 지는 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더 편하게 살려고 더 많이 누리고 살려고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단기간에는 더 편하게 살고 더 많이 누리고 살게 됩니다. 그러나, 길게 보면 그런 모든 일들이 땅을 더럽히기 때문에 결국 땅은 그런 사람들을 토해내게 됩니다. 


참 애석한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말해 줘도 이런 사람들은 그렇게 죄악된 삶의 방식이 오히려 자신의 삶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고 계속해서 믿고 살던 대로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점점 더 교회가 이 세상을 닮아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교회가 세상보다 더 세상같을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래서야 교회 때문에 이 세상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을까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오늘은 특히 이 땅의 교회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도들이 죄를 용서해 주시고, 또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해 주시는 은혜를 잊지 말고 거룩한 삶을 살며 이 땅의 교회들이 세상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구별되어 세상을 구하는 역할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구원을 얻고 은혜를 얻는 우리 성도들 덕분에 이 세상에 더욱 더 정결하고 깨끗해져서 더 많은 하나님의 복을 얻는 그런 곳으로 변해 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