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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3.18.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민수기 29-3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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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3월 18일 수요일




28장에서처럼 29장에서도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절기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우선 29장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했던 절기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말고도 굉장히 많았다는 것입니다. 매달 첫 날, 일곱째 달 초하루도 절기에 포함되어 있었으니까요. 절기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특별한 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제사드리는 날이었는데요. 절기가 이렇게 만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항상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즐거워 하며,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항상 기억하는 그런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셨으며 또 그렇게 하되 항상 하나님을 제대로 알며, 또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 있는 그런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물론 절기와 그 절기에 드려지는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살게 하는데 실제적인 효력을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관계가 매마르고 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실제적이고 친밀하며 또 살아있는 관계가 되고 또 그렇게 유지되는데 있었고 그런 하나님의 마음과 관심은 절기를 정해주시는 일로 표현되었던 것입니다. 꼭 그런 절차와 형식이 필요했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인간은 인간입니다. 인간은 결코 무형의 의미만으로는 그 의미를 지켜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에게는 그 의미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형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절기와 절기를 형식을 정확하게 지키는 일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절기는 기쁜 절기와 감사의 절기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29장 7절 이하에는 속죄일이라는 절기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요. 이 절기는 결코 기쁜 절기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절기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아주시면 그 다음에는 더할나위 없는 은혜와 기쁨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 절기를 지키는 태도와 방법만큼은 기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심령을 괴롭게 하여...” 이 날을 지키는 마음은 절대로 가볍고 경망스러워서는 안됩니다. 이 절기만큼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 마음을 의도적으로 무겁고 슬프게 해야 합니다. 이 날만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은 아무런 가망 없는 죄인들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실 이스라엘의 모든 절기가 의미있는 이유는 바로 이 속죄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속죄일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를 받으시고 그들의 죄를 사해주시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고, 마음껏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을 표현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는 하나님과 교제하겠다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30절에 나오는 우리가 흔히 ‘서원’이라고 말하는 자발적인 헌신이 가능했던 이유도 하나님께서 속죄일에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스라엘의 절기의 중심에는 다른 절기들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앞에서 아프고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절기인 속죄일이 놓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속죄일이 없다면 다른 절기들은 있을 수도 없고, 또 있어 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런 날이 될테니까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스라엘의 절기들을 통해서 우리 신앙의 중심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아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놓여 있습니다. 그 은혜가 우리를 다시 하나님 앞에 서게 해 주며, 하나님께 모든 좋은 것들을 기대할 수 있게 만들어 주며, 또 은혜를 받아 누리게 해 주니까요. 또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때 그것이 하나님께 의미있는 것이 되게 하고 또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 되게 하니까요.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의 신앙의 중심에는 죄 용서의 은혜가 놓여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차적인 책임은 목회자들에게 있지요. 목회자들이 말하기 불편하고 듣기 거북하다고 죄에 대해서 자주 말하지 않고, 죄용서를 받는 일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지 않으려고 하니까요. 죄는 그대로 두고 은혜와 복만 이야기하니까요. 이 점에 있어서는 같은 목회자로서 드릴 말씀이 없지만, 그래도 우리 신앙의 중심에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는 은혜가 사라지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원래부터 하나님 앞에서 웃고 즐거워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원래는 슬퍼하고 애통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뻐할 때도 그 마음에 자신의 죄로 인한 슬픔과 애통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도 겸손하고 낮은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며, 또 다시 좋은 것들과 은혜로 우리 삶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대와 기쁨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의 기쁨은 결코 가볍기만한 기쁨이 아닙니다. 성도의 기쁨은 굉장히 역설적인 기쁨인데요. 그것은 성도의 기쁨이란 놀랍게도 자신이 가망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깨달음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며 은혜와 은사들을 주신다는 것을 알고 또 믿기 때문에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절기가 기쁨의 절기와 슬픔의 절기가 섞여 있었고 또 그 절기들 중 중심이 되는 절기는 기쁨의 절기가 아니라 슬픔과 애통함의 절기였고, 그것을 통해서만 참된 기쁨과 은혜, 그리고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 또한 그러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로 기뻐하고 감사하면서도 그 마음에는 자신의 죄인됨으로 인한 슬픔과 애통함을 잃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그렇게 자신의 죄인됨 때문에 슬퍼하고 절망스러울 때도 항상 우리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실 뿐만 아니라 은혜로 우리 삶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과 감사가 사라지지 않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의 믿음 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은혜와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동시에 또한 가볍고 경망스러워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애통함과 기쁨을 함께 지니고 있을 수 있는,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는 제물이 될 수 있으며,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이 우리의 공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언제나 우리 모두의 삶이 기쁨과 슬픔의 절기를 함께 주신 하나님의 마음과 같아져서 영광스럽고 겸손한 신앙의 순간들로 채워져 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